본문 바로가기

좋은그림들/한국의화가 작품

김창열

 

 

물방울 작가

/ 김창열

 

 

 

 

 

 

 

 

 

 

 

 

 

 

 

 

 

 

 

 

 

 

 

 

 

 

 

 

 

 

 

 

 

 

 

 

 

 

 

x-text/html; charset=iso-8859-1" face="바탕" color="#dffeaa">
  Rubinstein Adagios (Mozart ~ Chopin)

 

김창열 작 품



<물방울> 1983
182 × 227cm
마포에 유채
<휘가로지> 1976
64 × 42cm
신문지에 수채
<회귀> 1992
162 × 130cm
마포에 유채


 
<회귀> 1991
50 × 162cm
라이스지위에 먹과아크릴
1993
45 × 74 × 76cm
돌, 유리, 물
 

x-text/html; charset=iso-8859-1">  작가소개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 (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 (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에고 ego'의 신장을 바라고 있으나, 나는 에고의 소멸을 바라고 있으며, 나는 에고의 소멸을 지향하여 그 표현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1988, 11, 일본 동경화랑 개인전 때 쓴 '때때로 생각하는 일' 중에

 

뉴욕에서 파리까지-물방울을 향하여

김창열은 1966년부터 뉴욕에서 유학하였고 1971년부터 현재까지 파리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작가로 수 차례에 걸쳐 시카고아트페어, 바젤아트페어 등 국제적인 아트페어에 참여하였다. 그가 처음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72년경부터로 그 이전에는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적인 성향의 작품을 하였다.

1965년부터 1971년까지의 그의 작품들을 작가 자신이 '서정적 추상' 이라고 부른 바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반복되는 형태들의 배열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작가는 이를 '추상적이고 기계론적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의 화면에서 보여지는 형태들은 기하학적인 형체들 혹은 일반적인 대상들의 두 가지 모두로 해석된다.1965년의'제사'연작 중 몇몇 작품들에서 캔버스에 구멍이 뚫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때부터 화면의 구성과 기존의 화면 구성양식을 해체하는데 대한 작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1971년에 이르러 작가는 파리 행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방울이나 공처럼 생긴 형태들이 단순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화가는 이러한 그림들을 '내장들의 그림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언뜻 보이는 형태들이 내장들의 횡단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시기에 하나 혹은 다수의 점액 같은 어떤 거대한 방울들이 출현한다.

1972년부터 여러 그림들에서 단일한 모티브인 물방울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하나의 거대한 물방울이 검거나 흰 바탕 위에 그려진다. 이 물방울들은 마치 뿌연 전구처럼 희고 불투명한 상태로 그림의 한 가운데나 오른쪽 위 혹은 왼쪽의 밑에 그려졌다. 이로써 그의 조그만 물방울들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방울은 그림인가, 오브제인가?

작가는 물방울을 밑 칠을 하지 않은 마포(麻布)로 된 생지화면에 그려낸다. 이러한 바탕은 그려진 물방울을 실제 물방울이 가진 물질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드는데, 마대의 거친 표면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물체의 즉물성(卽物性)을 살린 화폭 위에 실제로는 그러한 모습으로 맺힐 수 없는 물방울들이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새겨짐으로써 바탕화면의 질감과 대비되어 비 물질화 되는 것이다.
그는 주로 마대 위에 물방울을 그리지만 때로는 모래흙의 패널 또는 합판, 조립된 판자에 그리는 경우도 있다. 즉, 그는 밑 칠이 된 특정 캔버스 위가 아닌 마대나 판자와 같은 오브제 위에다 직접 물방울을 그림으로써 오브제도 그림도 아닌, 또는 오브제이기도 그림이기도 한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 물방울을 더 강조하면 그림이고, 마대나 그 재료성을 더 강조하면 오브제가 되는 것은, 물체성이 강한 마대 등의 화폭을 사용한 것 외에도 때로 붓이 아닌 스프레이를 이용해 비개성적이고 관념성이 풍부한 물방울을 만들어내는데 기인한다.

 

천자문과 물방울

그의 그림속에 한자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86년으로 천자문이 활자체나 서예체의 형태로 화면의 바탕으로서 물방울과 조화를 이룬다. 물방울들은 문자들 위에 영롱하게 맺히면서 허(虛)와 실(實), 음과 양 또는 무한과 유한이라는 동양적 발상의 바탕하에 문자의 획들은 때로 운치있는 공간을 자아낸다.

 

회귀recurrence

회귀recurrence라는 표제로 등장하는 그의 90년대 작품들에서는 영롱하게 맺히던 물방울이 변화되어 때로는 지워지기도 또 때로는 흐를 듯하게 나타난다. 작가의 오랜 기간 동안의 타국 생활은 고향, 뿌리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했는데, 이러한 감정을 어린 시절 할아버지 앞에서 신문지가 까맣게 되도록 쓰고 또 쓰던 한자와 물방울을 통해 과거로의 회귀를 이루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먼 과거로서 되살아나는 천자문위에 물방울을 겹쳐 놓음으로써 시공을 초월하도록 우리의 의식을 이끄는 것이 아닐까

 

철학적인 물방울

1973년 6월 파리에서의 "물방울"의 첫 전시회는 알랭보스께를 비롯한 많은 미술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의 물방울에 담겨 있는 정신성과 텅 빈 캔버스에 작은 물방울을 하나하나 그려 가는 동안의 인내심, 그리고 선을 행하듯 하는 물방울 그리기 외에는 시간이나 자신마저도 망각하는 화가의 태도는 거의 종교적인 것이다. 작가가 처음부터 물방울의 철학적 의미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려놓은 물방울들을 마주하여 명상하는 동안 자연과 자연스러운 모든 것을 찬양한 반문명적인 노자의 '무언의 가르침'에 눈을 뜰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거친 것을 다스린다. 가장 사소한 것만이 아무 흠 없는 것 속에 끼어들 수 있다. 그 속에서 나는 無爲의 효율을 본다.'


-물에 대하여(노자)-

물방울은 세계의 사물들 중에서 가장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 모르나 번잡스런 생활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바 로서의 김창열의 물방울은 순수하고 평화롭다. 그것은 무색, 무취이며 투명하고 무미한 액체로서의 순수한 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