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치자꽃 설화/박 규리

조용한ㅁ 2009. 5. 18. 00:18

치자꽃 설화/박 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슬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은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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