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 류시화

조용한ㅁ 2009. 10. 28. 10:26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 류시화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 류시화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 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 때 이곳을 울려 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던 흰 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 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This Majestic Land - Michael Hoppe
 
 

'아름다운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사랑/도 종환  (0) 2009.10.28
빈 산이 젖고 있다 / 이성선   (0) 2009.10.28
외롭지 않기 위하여 / 최 승자  (0) 2009.10.28
詩 최 승자  (0) 2009.10.28
생의 노래/ 이기철-   (0) 200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