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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수필.기타

육탁




배한봉 <육탁(肉鐸)>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이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육탁/육신의 목탁





신석정의 "들길에 서서"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넘어져 본 사람은


이준관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무릎에

빨갛게 피 맺혀 본 사람은 안다.

땅에는 돌이 박혀 있다고

마음에도 돌이 박혀 있다고

그 박힌 돌이 넘어지게 한다고.



그러나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일어서게 한다고.





비에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네덜란드 격언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질 때는

조금이라도 젖을까 봐 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온몸이 젖으면 더 이상 비가 두렵지 않습니다.

어릴 적, 젖은 채로 빗속을 즐겁게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비에 젖으면 비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희망에 젖으면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에 젖으면 사랑이 두렵지 않습니다.


일에 젖으면 일이 두렵지 않고, 삶에 젖으면 삶이 두렵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나를 그곳에 다 던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거기에 온몸을 던지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삶이 자유로워집니다.


사랑 앞에서 주저하고 있습니까?

새로운 일 때문에 두렵습니까?

완전히 뛰어들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 정용철의 씨앗 주머니 중에서 -





"땅에서 넘어진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라

땅을 떠나 일어서려 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 마음이 미혹하여 번뇌를 일으킨 자가 바로 중생이요

그 마음을 깨달아 무한한 신통묘용을 발휘한 이는 곧 부처다.


미혹함과 깨달음은 비록 다르지만

이는 모두 일심에서 나왔으므로

마음을 떠나 엉뚱한 곳에서 부처를 구하는 자는

역시 땅을 떠나 일어서려는 자와 같다.

(보조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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