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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그림들/한국의화가 작품

김환기의 ‘무제(19-06-71)’ 등 점화(點畵)시리즈

김환기의 ‘무제(19-06-71)’ 등 점화(點畵)시리즈




김환기의 ‘무제(19-06-71)’, 1971, 코튼에 유채, 203 x 254cm

    

  봄이 무르익은 탓인지 야트막한 앞산 신록의 숲속에선 뻐꾸기 소리가 매우 청아하게 들린다. 밤이면 소쩍새의 맑은 울음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 같은 뻐꾸기,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의 푸른 별이 된 것인가. 우주 천체의 거대한 회전축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는 수많은 푸른 별의 행렬이 띠를 이룬다. 작은 푸른 별들로 화폭의 온 바탕이 은하수가 아닌 ‘청하수(靑河水)’를 이루고 있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우주의 질서가 내재되어 있다. 작은 별들이 무리를 이루기도 하고, 같은 푸른 별무리라 하더라도 농담이 달라 코스모스와 하모니를 느낄 수 있다.  
 
  화폭에 더 가깝게 눈을 갖다 대면, 이 작은 별들의 행렬은 푸른 점과, 이 점을 네모꼴로 여러 번 둘러 싼 작은 공간들이 연결되어 띠를 이루고 있다. 이 띠는 백열구의 필라멘트 같은 선조(線條)를 연상시킨다. 또는 고궁의 돌담 벽면의 네모 난 화강암 가장자리에 회(灰)로 메운 자리(4각 공간)들이 이어져 사다리 띠를 만들고, 이것들이 사방으로 연결되어 다시 만든 촘촘한 그물 형상 같기도 하다.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가 만년의 뉴욕시대로 분류되는 1971년에 그린 추상화 <무제(19-06-71), 코튼에 유채, 203 x 254cm>라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또한 무변광대한 우주의 모습을 우주 공간에 유영하면서 바라보는 느낌도 받는다. 수화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지난 2004년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는 <김환기 30주기展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가 열렸다. 1부에서 다룬 수화의 1950년대 달, 항아리, 산, 하늘, 새, 사슴의 형상을 소재로 그린 한국의 아름다운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그림들도 좋았지만, 2부의 70년대 전면점화(全面點畵)가 너무 좋았다. 이들 그림 앞에 서면 아련한 추억들이 서정의 강물로 흐르고, 순간과 영원, 유한과 무한이 교차하는 의미를 알 것만 같다.

  수화의 전면점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무렵이던 1970년 6월, 그는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캔버스에 유채, 205 X 153cm>로 대상을 받는다. 그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주제로 작품을 그렸고, 제목도 이 시의 마지막 절을 그대로 따서 붙였다. 수화는 수상 소식을 전해온 친구의 편지 가운데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는 구절을 읽고,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고 술회했다. 뻐꾸기든 소쩍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고향을 그리는 향수, 그리움으로 고된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수화가 작품의 주제로 삼은 시 ‘저녁에’의 전문은 이렇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누구나 다 경험한다. 수화도 어쩌면 모내기가 끝난 초여름, 마을 뒷산의 뻐꾸기 소리가 정겹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색점을 찍어 나갔을 것이다. 한 여름 밤,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누워서 강냉이를 먹으며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헤던 소년 시절의 고향(전남 신안군 안좌도) 추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었겠는가. 비록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뉴욕에서 고난의 작업을 하는 그였지만, 그의 화폭은 이처럼 고향의 뻐꾸기 노래, 밤하늘 별들과 대화, 인간사에서 맺어진 온갖 인연, 저마다 간직한 꿈을 생각하며, 계속 점찍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이후 제작된 많은 점화들도 이처럼 인간과 우주의 관계, 한국적 서정성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이런 제목은 더 이상 붙이지 않고 <5-Ⅵ-74 #335>와 같이, 서술적인 제목 없이 숫자와 기호로만 제목을 표시했다.
 


김환기의 ‘무제(27-11-70)’, 1970, 면에 유채, 147 x 215.9cm


  그의 무제 시리즈 가운데서도 <무제(27-11-70), 1970년, 면에 유채, 147 x 215.9cm, 미국 워싱턴 필립컬렉션 소장>은 더욱 다양한 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맑은 여름날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형형색색의 별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수화의 점화 가운데는 프러시안블루, 코발트블루의 푸른 별이 단연 많지만, 붉은 별, 노란 별, 녹색 별, 회색 별(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은 바탕 점화의 색조를 말함)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검은 밤하늘에 파랑, 노랑, 주홍, 녹색의 크고 작은 별들이 섞여 있어 더욱 화려해 보인다. 야간에 여객기가 착륙할 때, 창가에서 내려다 본 대도시의 수많은 작은 불빛들을 연상시킨다. 서로 다른 빛을 발하는, 서로 밝기가 다른 수많은 별들이 친근하게 다가와 동화를 들려주는 것 같다.    

  
 김환기의 점화(點畵)는 기본적으로 바탕과 색점과 색띠와 같은 여러 조형요소에 의해 이뤄지고 있지만, 때로는 화면의 상단 부분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색점의 띠를 넣기도 하고, 색면을 V 자 형이나 가느다란 선으로 분할해 다른 색면과 교차시키기도 한다. 화폭을 단순히 색점으로 처리한 것도 있고, 바탕을 만들어 그 위에 색점을 얹거나 색점을 찍고 주위를 다시 네모꼴로 둘러싸는 테두리를 만드는 방법 등을 병행해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점을 찍는 방법이다. 천 위에 점을 찍지만, 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적확한 표현이 아니다. 차라리 물들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천의 올 사이로 안료가 스며들어 마치 화선지에 묵화를 그릴 때 나타나는 번짐을 구사한다. 그래서 일정하게 묽은 농도의 물감을 일정한 거리에서 살짝 떨어뜨릴 때 얻을 수 있는 선염(渲染)의 효과를 꾀한다. 서양 재료를 쓰면서도 점을 찍을 때 두 번 붓질을 하지 않는다. 그는 뉴욕 시절인 1965년 1월 일기에서 “점은 두 번 붓이 안 가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림은 첫 번 붓질로 성공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점 하나를 찍고는 네모꼴로 둘러싸는 것을 서너번씩 한다. 그러는 동안에 물감이 번지면서 색깔이 겹쳐진다. 이렇게 점을 찍고, 네모를 싸는 것을 수 천 번, 수 만 번 반복해야 한다.

  이런 인내와 치열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나는 그것이 그리움 때문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화의 뉴욕 시절(1963~1974)은 사실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각박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점화를 집중적으로 그리던 1970년부터 작고하기까지 불과 4년여 동안에도 크게 나아진 것은 없었다. 그가 둥근 달과 백자 항아리를 즐겨 그렸을 때도 얘기된 것이지만, 우리의 고유한 정서를 조형화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마찬가지로 점화도 비록 차갑고 내면화가 더 이뤄졌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적 정서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조형화한 것이다. 그것은 서양 미술의 현장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때문에  치열한 작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파리 체류 시절(1956~1959)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푸른 하늘에 흰 손수건을 담그면 금방 파란 물이 들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남의 작은 섬에서 자란 그의 뇌리엔 늘 파란 가을 하늘과 한여름 밤에 쏟아질 듯한 별무리에 대한 그리움이 그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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