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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그림들/한국의화가 작품

[스크랩] 수화 김환기



 작 품



<론도> 1938 '현대문학' 표지화
1955년 8월호
<피난열차>
1951


<항아리와 매화 가지> 1956 <영원의 노래> 1957 <아침의 메아리> 1965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16-IV-70, #166
<하늘과 땅> 1973
24-IX-73 #320

<무제>
27-X-74 #333

 

 

 

 작가소개 

수화 김환기는 30년대 우리 화단에 추상미술을 처음 도입한 선구자며, 50년대 이후로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한 국제적 작가이다. 수화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 결과 수화는 한 앙케트 조사에서 작고 작가 중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 1위로 뽑혔으며, 평론가들이 평문을 쓰고 싶은 작가 1위로 뽑히기도 하였다. 수화의 작품세계는 시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듭했으나, 그 내면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정서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는 바로 자연의 아름다움 을 서정적으로 노래하였다는 점이다. 초기의 향토적 소재에서부터 중기의 항아리, 달, 산, 매화, 사슴 등 문인화적 소재, 그리고 말년의 추상적 점에 이르기까지 수화는 한국의 자연미를 나타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초기작업, 문학과의 만남, 전쟁과 피난민

초기작업

많은 미술인과 미술애호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김환기는 1913년 전라도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33년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 입학하면서 작가로서의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일본에 유학하는 기간 중에 수화는 고향 기좌도와 한국의 향토적 풍경을 그리움에 사무쳐 자주 그렸다. 당시 작품으로는 <종달새 노래할 때>, <섬의 이야기>, <장독>, <론도> 등이 유명하다. 1937년에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수화는 40년 서울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잠시 작품을 중단했던 그는 48년 '신사실파'가 결성되면서 활발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해방 이후 일제 잔재에 대한 청산과 민족문화를 건설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수화의 작품은 여백의 미를 살리고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는 동양화적 정서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문학과의 만남

수화는 일생동안 많은 문인들과 교류를 가졌으며, 문학으로부터 작업의 영감을 얻었다. 또한 그는 <<해방문학선집>>,<<학풍>>, <<현대문학>> 등 문학 잡지의 표지, 삽화를 일생 동안 계속 그렸다. 이러한 잡지 디자인 작업을 통해 수화는 문인과의 친분관계나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기회로 삼은듯 하다.

전쟁과 피난민

6.25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했던 수화는 주변
피난민의 삶을 소재로 그림을 계속 그렸다. 이때의 작품은 다른 시기들과 달리 현실에 대한 체험이 엿보이는데 <판자집>과 <피난 열차>이 대표적이다. 특히 <피난 열차>는 화물차에 피난민들이 시루에 담긴 콩나물처럼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광경을 평면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누가 누구인지 구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 데 얽혀 피난 가는 비극적 상황을 단순하게, 그러나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다.

문인화적 소재: 조선 백자, 달, 산, 매화, 사슴

50년대 수화는 항아리, 달, 산, 매화, 사슴 등 문인화적인 소재를 자주 그렸다. 그는 특히 조선시대 백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집안을 온통 항아리들로 가득 채우기도 하였다."내 뜰에는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꽃나무를 배경으로 삼는 수도 있고 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때가 있다. 몸이 둥근데다 굽이 아가리보다 좁기 때문에 놓여 있는 것 같지 않고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희고 맑은 살에 구름이 떠가도 그늘이 지고 시시각각 태양의 농도에 따라 청백자 항아리는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한아름 되는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로되 다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 조선 백자의 넉넉하고 풍만한 형태는 여인, 달과 함께 화면에 자주 등장하였다. 수화는 한국의 자연과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백자, 여인, 달 등의 소재를 택했다.
백자 등의 문인화적 소재를 이용한 경향은 1956년 파리로 가서 더욱 심화되었다. 영원시리즈 중 하나인 <영원의 노래>는 문인화적 소재가 모두 등장하는 작품이다. 수화는 항아리 뿐 아니라 사슴, 산, 달, 나무, 새, 꽃 등 십장생 모티브까지를 모두 평면적으로 표현해 그 장식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1959년 파리에서 귀국한 수화는 홍익대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출품 작가 겸 커미셔너로 참석하였던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뉴욕으로 갔다. 이후 수화는 7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뉴욕에서 머물면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추구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점

뉴욕으로 건너간 63년경, 수화의 나이는 이미 50세를 넘기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고국에서 이미 기성작가로 대접받았으며, 작품에 있어서는 원숙기에 접어들 때였다. 그런 수화가 뉴욕에서 보내온 그림은 한국 미술계에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이미 원로화가인 수화가 공모전에 출품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뉴욕에서 변화된 그의 작품 세계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김광섭의 시 한 구절을 따서 제목으로 삼은 이 작품에는 과거에 보이던 문인화적 소재는 모두 사라지고 무수하게 찍힌 점만이 나타난다. 화면 가득히 찍힌 푸른 점들은 캔버스 천에 스며들고 번져,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신비로운 별들을 연상케 하고 있다. 수화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 가는 점. 어쩌면 내 맘속을 잘 말해주는 것일까.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생각한다면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생각뿐이다. "

이러한 추상화로의 변화는 수화가 처음 뉴욕에 도착하면서 부터 서서히 진행되었다. 뉴욕시기 초기에 제작된 <아침의 메아리>는 그 변화의 과정을 잘 드러내준다. 화면에는 과거에 자주 등장했던 달을 연상케 하는 반원이 커다랗게 배치된다. 아울러 나중에 주된 소재로 사용할 파란색, 빨간색, 녹색 점들이 일렬로 줄지어 등장하고 있다. 이 같은 점에서 <아침의 메아리>는 문인화적 소재로부터 점화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 수화는 점을 화면 가득 메우는 추상 작업에 열중하였다. 이 점들은 수화가 고향의 밤하늘에 뜬 별을 그리워하며 찍은 듯이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담뿍 담고 있다. 따라서 무수히 찍힌 점들에는 자연에 대한 서정성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1974년에 이르러 과거의 맑고 청명하던 푸른 점들은 잿빛을 띤 암청색 점들로 우울하게 변한다. 작품<무제27Ⅹ-74 #333>은 이러한 경향을 잘 드러낸다. 마치 햇살이 쏟아지듯 몇 가닥의 선들이 화면을 가로지르지만, 주변의 점들은 우울한 회청색이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듯이. 수화는 그 해 7월 디스크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뇌일혈로 세상을 뜨고 만다.

'점'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

수화가 뉴욕 시기에 그린 점화는 보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구체적인 이미지가 사라지고 화면 전체에는 은은히 번지는 점들이 무수히 찍혀 신비롭고 무한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점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적어 보았다. 그러나 어쩌면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무한히 열려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점화가 가진 특색이다.
.......... 점은 고향의 밤하늘에 뜬 별들이다.
수화는 점을 찍으면서 이렇게 읊는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까지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 만큼이나 했을까." 어쩌면 수화는 고향의 밤하늘에 뜬 별들을 연상하며 점을 찍은 게 아닐까.
..........점은 뉴욕 시내의 빌딩 숲이 뿜어내는 화려한 불빛이다.
수화는 작업실 창문에서 뉴욕 시내가 만들어내는 빌딩의 무수한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점을 소재로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점에는 헤어진 친구들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수화는 뉴욕에 살면서 헤어진 친구들과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지니고 있었다. 그 애환을 점 하나 하나에 담아 찍었을 수도 있다.
..........점은 울림이다.
캔버스 천에 은은하게 퍼지는 점들은 일정한 밀도를 가져서 화면 전체로 울려 퍼지는 미세한 떨림을 가진다.
..........점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점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캔버스 천에 스며들면서, 각자의 개성을 가진 영롱한 생명체로 태어난다.
..........점은 신비로운 우주 공간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점들은 군집하여 선, 원, 소용돌이의 형태를 이루면서 무한한 우주 공간을 연상시킨다.
..........점은 빗방울의 흔적이다.
화면에 닿아 번지는 점들은 마치 거센 빗방울이 진흙땅에 부딪치고 번지면서 만들어낸 흔적과도 같다.
..........점은 넥타이의 무늬이다.
수화는 한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넥타이 공장에서 점무늬를 찍는 부업을 하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점화 작업이 바로 넥타이의 무늬에서 비롯된다고 보기도 한다.

 

 

어디서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김환기는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된 주제의식을 갖고 작품을 했지만,

그 기법면에서는

마치 동양의 피카소라 할 정도로 다양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고국을 떠나 있었기에 우리 시대를 대표하면서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화가 김환기,

 김환기가 조선백자 마니아였다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래서 인지 그의 그림에선

 서양화에서  여백을 느낄수 있는,

  수묵화의 분위기를 맛볼수 있다.

 

1970년 한국일보 주체 "한국 미술 대상전"에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로 대상을 받았다.

 

 

무제

 

 

무제

 

 

매화와 항아리

 

 

산월

 

 김환기 Kim Whan Ki, 무제 Untitled, 1972,
유화 Oil on Canvas, 264×209㎝


1970년대 김환기가 시도한 방법은 화면에 반복적으로 점을 찍고

그것을 네모꼴로 둘러싸 나가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균일하면서도 무한히 변화하는

화면이 드러나게 되었다. 
  흔히 밤하늘, 우주, 밤의 도시 등에 비유되는

그의 작품은 보편적인 무한의 세계를 표상하고 있다. 
  끊임없이 점을 찍어가는 작업을 통하여 작가는

수도자와 같은 선적인 경지를 경험하게 되며, 
 보는 이 또한 명상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3-12-72

 

백자와 꽃

 

출처 : 내안의 부자를 깨워라
글쓴이 : 비너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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