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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수필.기타

눈 속의 대나무숲

[오마이뉴스 이규현 기자]

▲ 눈내린 대숲에 바람이 불어 눈이 흩날립니다.
ⓒ2005 이규현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치고는 너무도 과분하게 폭설이 내려 학교 임시 휴교령까지 내렸다고 마을이장이 새벽부터 방송합니다. 눈도 내렸거니와 학교에까지 가지 않으니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나는 판입니다.

요즘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조금만 날씨가 이상해도 걱정이 앞섭니다. 이거 또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이네요. 기상이변이란 걸 몰랐을 때는 그냥 눈이 많이 오면 많이 오는구나, 비가 많이 내리면 비가 많이 오는구나 하는 정도로 즐겼는데 지금은 걱정이 앞서게 되니 이 또한 제 머리카락을 빠지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고 원망해야 하는지 그런 상상조차도 머리 아픈 일입니다. 어떻든 그런저런 방송뉴스를 접하면서도 눈이 흠뻑 내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좋기만 합니다. 하얀 솜털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듯 우리는 모두 눈만 오면 좋아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저 강아지들처럼 함께 거리로 숲으로 나가게 됩니다.

벌써 아이들은 언덕배기에서 비닐장판이나 비료포대를 가지고 미끄럼을 탑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스스로 썰매 하나씩은 만들어서 뻘건 연탄난로에 쇠꼬쟁이를 달궈 나무막대기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못대가리를 제거하고 못을 박아 스틱을 만들었습니다.

일부러 물을 가둔 논은 꽁꽁 얼어붙어 훌륭한 썰매장이 되고 거기에서 별의별 묘기 대행진이 벌어지는데 요즘엔 눈썰매장이 생기고 스키장이 있어서 그러한 추억을 누리기엔 시대는 너무도 멀리 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멀리 와 버린 시대를 한탄할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강요되는 일상들을 그저 살아가고만 있을 따름입니다. 안타깝지만 그 속에서 벗어나게 되면 불편을 강요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진정한 나는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철저하게 강요되는 나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 내리는 날에 미친 듯이 뛰쳐나와 나를 찾아 떠나보는 즐거움은 어디에 비견할 게 못됩니다.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덮어버리는 듯 저 하얀 눈은 온 세상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습니다. 조만간 눈이 녹아내리면 그 상처가 더 크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은 너무도 좋습니다.

▲ 눈 속의 대나무숲
ⓒ2005 이규현



▲ 대숲 가득히 저렇게 눈이 내렸습니다.
ⓒ2005 이규현

그런 가운데 눈 내린 대숲에 오릅니다. 저번부터 눈 오면 꼭 오리라던 대숲이 이렇게 지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너무나도 머나 먼 거리였습니다. 앞서 말한 나 자신을 살지 못하고 강요된 삶을 살아가는 덕택이죠. 오늘은 그러한 길에서 벗어나 있으니 마치 신선이 된 듯합니다.

대숲에 들어서니 역시 선인들이 대를 즐겨하고 항상 대를 닮고자 했던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세한을 저렇게 늘 푸른 이파리로 우뚝 서있는 대의 장엄한 모습은 우리에게 경외감과 함께 너희도 나를 따라 이렇게 살아봐 하는 묵언의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 눈은 바람결에 따라 이렇듯 대나무의 한 편에만 쌓여서 대의 푸르름을 더욱 빛내주고 있습니다.
ⓒ2005 이규현



▲ 오래된 대나무(노죽)에도 눈이 내려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대나무는 오래될수록 줄기에 노란색깔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2005 이규현

대나무에 쌓인 눈을 바라보니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습니다. 사군자 중 하나로 우리 선인들이 즐겨 치던 묵죽(墨竹)의 다양한 종류 중에서도 설죽이 갖는 느낌들이 더 좋았는데 이렇게 직접 눈 맞은 대를 보니 확연히 드러납니다.

거기에 바람 살포시 불어와 고요한 대숲을 깨우니 눈발이 흩날리는 게 안개처럼 마치 선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고요한 이 세상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인 듯 둘러싸인 대숲은 세속을 넘나드는 경계가 됩니다. 여기에 어디선가 대금산조 한 가락 들려온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한데 아쉬움이 있어야 여운이 깊은 법이라는 어떤 친구의 말을 새기며 과욕으로 향하는 나를 깨웁니다.

엄청난 눈들을 감당하지 못한 대숲은 밤새 쩌~억 쩌~억 울어 댔습니다. 얼마나 아픈 울음인지 대숲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밤새 잠을 못 이뤘을 것입니다.

대나무는 휘어져 통이 쪼개어지면서도 울음소리를 내며 결코 부러지지 않으니 그래서 지조와 절의의 상징으로 지금까지도 자리하고 있는가 봅니다.

"대는 겨울에도 사는 풀이다. 그런 까닭으로 죽(竹)이라는 글자는 초(艹)자를 거꾸로 놓은 모양을 따랐다."(竹冬生草也 故字從倒草)

대에 관한 어원을 논하면서 중국의 한나라 때 허신이라는 사람이 쓴 설문해자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떻든 이렇게 대숲 가득히 눈이 내리니 이러한 모습들은 좋은 화제로 선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하여 대나무를 그리는 데도 다양한 모습들이 있었으니 ①설월죽(雪月竹), ②풍죽(風竹), ③노죽(露竹), ④우죽(雨竹), ⑤추순(抽荀)-죽순을 말함, ⑥치죽(穉竹)-어린 대나무, ⑦노죽(老竹), ⑧고죽(枯竹)-마른 대나무, ⑨절죽(折竹)-꺾인 대나무, ⑩고죽(孤竹)로 다양하게 주제를 잡고 묵죽을 치거나 노래합니다.

그 중에서 퇴계 선생이 읊은 설월죽을 보면 달관의 경지에 이른 선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설월죽(雪月竹)

구슬가루 무더기로 쌓인 위를

달빛이 부서진 듯 내려 비칠 때

전부터 절개가 굳은 줄은 알았지만

빈 마음 조촐한 줄은 이제야 안다네

퇴계 이황


나도 하얗게 뒤덮인 눈 속에서 고고하게 푸름을 갖고 있는 저 대나무의 비어 있는 속마음을 배우면서 발길을 돌립니다. 나 또한 대나무를 닮고자 노력하지만 아직도 스스로 비워내지 못하고 이렇듯 세속에 묻혀 아등바등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시금 죽사 이응로 선생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대나무 사랑의 마음은 예술의 근본이다."

너무도 가까이 있기에 우리에겐 귀한 보석이 되지 못하고 있는 대나무! 이제 하얀 겨울에 떠나는 늘 푸른 대나무 여행을 자주 해볼 일입니다.

강물마저 할 말을 잃어 얼어붙어 있는 지금은 그저 모두 침묵 속에 안으로 안으로만 흘러야 하는 것임을 공유하는 듯 사위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그 속에 뭔가를 남기려는 쓸데없는 욕심만이 앞서는 우리의 행위들은 아무도 발자국 내기 두려운 눈밭에 벌렁 나자빠진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 또한 한 순간의 추억이라면야 할 말이 없겠지만 사뭇 밤새 울음 내며 아파했던 대나무의 모습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농민들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아픔인양 제 마음속에 계속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너무도 서럽게…. 너무도 안타깝게….

/이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