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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천변일기>의 구보 박태원에겐 두 명의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술 친구이기도 하고, 경성을 쏘다니는 길 동무이기도 했고, 술값도 댈 수 있는 스폰서이기도 했다. 김해경이 본명인 시인 '이상'의 사진에는 유독 박태원이 자주 등장한다. 검은 수염을 한 이상과는 달리 박태원은 더벅 머리에 검은 둥근테 안경을 쓴 순진 소년처럼 등장한다. 또 다른 친구는 곱사등을 한 화가 구본웅이다. 어릴 때 사고로 다친 구본웅은 이상과 박태원에 끌려다니다시피 하거나 뒷돈을 대야 했지만 그리 싦은 내색없이 스폰서 역할을 했던 듯 하다. (사진 왼쪽 부터 이상, 박태원, 김소운)

이상 시인이 차린 제비 다방은 지금의 청진동 해장국 골목 입구 오른편 코너에 있었던 듯 하다. 이상은 금홍을 얼굴 마담으로 앉혀두었다. 벌이는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박태원은 종로를 들러 일본계 번화가로 들리면서 자주 구본웅의 화실에 들렀는데 그 화실은 지금의 플라자 호텔 뒷편 북창동 쪽이었던 것 같다. 자주 어울리던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서로 이승에서 저승에서 얽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상 시인에게는 알려진 로맨스가 몇 번이 있다. 금홍이와의 로맨스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권영희와의 로맨스는 대체로 권영희의 일방적 짝사랑이었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러나 로맨스는 로맨스, 빠뜨릴 수는 없다. 또 다른 로맨스는 이상의 주검까지 수습했던 김향안과의 사랑이다. 권영희는 이상 시인과 구보 박태원이 친했던 소설가 정인택과 결혼한다. 정인택이 권영희를 못잊어 죽네 사네하며 음독 자살까지 꾀한 결과다. 둘은 한국 전쟁 통에 월북한다. 일본에서 새로운 꿈을 모색하던 이상 시인이 죽었을 때 이상의 마지막 연인 김향안은 몇날 며칠 동안의 여행을 거쳐 동경으로 가서 이상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여성과 관련해서는 이상이 복이 많은 남자였는지 모르겠다. (사진은 구본웅이 그린 이상)

화가 구본웅은 불구의 처지인지라 여성들과의 로맨스는 그리 눈에 띠지 않았던 듯 하다. 하지만 작가들의 이야기 중간 중간에 그의 모델에 되어 주었던 여인들의 이름들이 들리고, 구본웅이 누구보다도 인간적으로 그녀들을 대해주었다는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구본웅의 여인의 그림들에서 구본웅의 격정을 느끼고, 여인들의 얼굴에서 여인들이 느꼈던 그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지 모르겠다.

구보 박태원은 해방전에 결혼을 해서 성북동 싸리집에 살 때는 이미 2남 3녀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구보도 늘 병약한 탓에 자신감을 많이 갖지 못했던 것 같고 그래서인지 친구인 이상과는 달리 여성과의 잦은 접촉은 없었던 듯 하다. 모던 보이들이 보여주는 것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모더니즘 시인인 구보가 한국 전쟁 당시에 북한으로 넘어간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놀랐다. 그는 경향작가도 아니고, 카프의 멤버도 아니었다. 구인회에 속했던 그가 북한으로 가다니. 그것도 아내, 2남 3녀를 두고 말이다.

구보 박태원은 월북한 후 1955년 홀로 사는 아품을 달래려 했는지 결혼을 한다. 상대편은 정인택과 결혼하고, 월북했던, 이상을 짝사랑했던 그녀 권영희(권순옥)다. 그녀는 박태원이 말년에 시력을 상실하고 구술로 작품할 때 같이 공동작업을 하면서 구보씨의 마지막을 지켜본다. 정인택과 사별한 권영희는 정인택과 두 딸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구보 박태원의 영향인지 북한에서 작가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보 박태원의 큰 딸과 작은 아들이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

이상 시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고 시신을 수습했던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이다. 김향안은 이상의 죽음 이후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화가라고 생각했던 홀애비 김환기와 결혼을 한다. 김향안은 김환기를 프랑스 유학으로 이끌고, 김환기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김환기의 사후에는 환기 미술관을 운영해나간다. 김향안 즉 변동림은 이상, 박태원이 그렇게도 같이 뒹굴며 술값으로 괴롭히던 화가 구본웅의 계모인 변동숙의 이복 동생이다. 여기에 살짝 요즘 이야기를 보태면 구본웅의 딸 구근모가 낳은 딸, 다시 말해 구본웅의 외손녀 중 하나가 이름난 발레리라 강수진이다.

박태원은 북쪽에서도 아이를 낳고, 손주들을 많이 본 모양이다. 그 손주들 이름에는 서울에 남겨 두었던 자식들의 이름을 한자 씩 박아두었다고 한다. 북쪽 아이들을 보면서 남쪽 아이들을 떠올리는 작가의 영리함에는 눈물이 묻어난다. 구보 박태원의 둘째딸 박소영씨의 아들은 요즘 잘나가는 봉준호 감독이다. 봉감독이 구보 박태원의 외손자가 되는 셈이다. 구보 박태원이 북한에서 1987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하니 우리는 비교적 오랫동안 같은 시간을 살은 셈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조건들 탓에 구보는 여전히 해방전 구보로만 받아들여진다. 적어도 내 맘 속에서는 그렇다.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구보 박태원, 이상 김해경, 화가 구본웅이 남겼을 발자욱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망라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은 넘치고 넘친다. 그들이 찾았던 낙랑 파라의 모습을 보고 싶고, 그곳을 운영했고 월북후 북한의 인민배우였던 김연실을 보고 싶고, 그들의 든든한 문학 후원자였던 이태준을 만나고 싶고, 그들의 친구 최서해도 보고 싶다. 구보씨의 글 선생이었던 양건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상, 박태원과 함께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김소운은 어떤 시인이었을까. 화가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의 아내 김향안, 변동림이 이런 우리 맘을 헤아리고 헤아려서 환기 화가에게 넌지시 알려준 결과는 아닐까. 
 
 
 
 
 
 
 
 
 
 
 
-원용진의 미디어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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