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꽃이 졌다는 편지 - 장석남

조용한ㅁ 2010. 7. 14. 02:04


꽃이 졌다는 편지 -  장석남  
1.
이 세상에서 
살구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복숭아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꽃이 만들던 그 섭섭한 그늘 자리엔 
야윈 햇살이 들다가 만다고 쓰고 
꽃 진 자리마다엔 또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살구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복숭아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그러니까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써야 할까 
내 마음 속에서 
진 꽃자리엔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달이 뜨면 
누군가 아이를 갖겠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고 
그대로 써야 할까 
2. 
꽃 진 자리에 나는 
한 꽃 진 사람을 보내어 
내게 편지를 쓰게 하네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잘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그 바람에 
뺨을 기대어 보기도 한다고 
나는 오지도 않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앉아서 
꽃 진 자리마다 
애기들 눈동자를 읽듯 
읽어 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