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글/수필.기타

덜 가지고 더 존재하는 집- 일월암

 



일월암 객실 = 頂 · 房, 김희준, 스튜디오 a+m, 한국 강원도 진부 소재의 객실로 연면적 17.92㎡, 높이 5.8m로 지어진 단층 규모의 작은 건축물이다. ⓒ김용관

럭셔리의 반대는 빈곤이 아니라 천박함이다.

명품의 대명사가 된 ‘샤넬’은 백화점의 가장 좋은 자리에 ‘C’자가 서로 교차하는 모양의 라벨을 반짝이고 있다. 이 상표를 만든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은 20세기 여성 패션에 혁신을 가져온 복식 디자이너다. 그녀의 인생을 주제로 한 영화가 지난 8월 한국에서 개봉됐다. 여성의 억압을 상징하는 코르셋에서 그들을 해방시켰으며, ‘체인 숄더백’(shoulder bag,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과 ‘리틀 블랙드레스’, 그리고 30초에 1병씩 팔렸다는 향수의 대명사 ‘샤넬 No.5’ 등으로 기억되는 코코 샤넬(‘코코’는 그녀의 애칭)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다.
그녀는 ‘럭셔리의 반대는 빈곤이 아니라 천박함’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건축에서도 유효하다.
럭셔리(luxury)라는 단어는 보기에 값비싸고 호화로움을 뜻하는 신어(新語)로, 일상적으로 고급스럽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오늘날 럭셔리한 건축은 상대적으로 규모의 우위(優位)를 가지며, 좋은 위치에 값비싼 재료로 지어진다. 분양이나 매도를 목적으로 계획된 경우에 ‘럭셔리’는 마케팅의 기본전략으로 사용되며, 최신 가전제품이나 고급 소품으로 가득 채우기 마련이다.

좋은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답변은 언제나 궁색하지만, 적어도 규모가 크거나 호화로운 재료의 사용이 답은 아닌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빈곤하더라도 천박하지 않는 럭셔리한 공간이 있다.

소로우의 오두막

미국 매사추세츠 주(州) 콩코드의 월든(Walden)이라는 호숫가에는 작은 오두막이 복원돼 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여덟의 나이에 홀연히 숲으로 들어가 실천적 삶을 살은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소로우의 집이다. 그는 1845년 봄부터 2년 동안 숲속 호숫가에서 지내며, ‘최소한의 물질로 최대한의 삶’을 고민하며 살았다.
소로우의 오두막,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월든 호숫가 위치하며 복원된 것이다.


그의 저서에는 이 오두막을 짓기 위해 사용한 자재의 명세서가 상세히 기록돼 있으며, 그 합계는 28불 12.5센트다. 당시 하버드 대학의 1년 기숙사 비용이 30불임을 밝히고, 학교 교육에 대해 꼬집고 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것은 가로 4.6m, 세로 3m, 높이 2.4m 크기로 지어진 14㎡(약 4.2평) 면적의 오두막였으며, 그 안에는 나무로 만든 침대와 의자, 벽난로와 창가의 책상 정도가 전부였다.
이 꾸밈새 없고 소박하기 짝이 없는 오두막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소로 지어진 집’의 전형적 건축이다. 자신이 머물 집을 손수 지어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해 사색하며 독서에 열중했던 지식인의 은둔자적 공간은 수도승의 공간과 많이 닮았다.
소로우의 오두막 내부 투상도, 나카무라 요시후미(Nakamura Yoshifumi) 스케치

일월암 객실

강원도에 있는 일월암은 큰스님이 가끔씩 오대산에서 내려오셔서, 객(客)을 맞이하거나 머무는 곳이다. 전기도, 화장실도, 부엌도 없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암자다. 편찮으신 스님을 시봉(侍奉)하고, 간혹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해 다담(茶談)을 나눌 수 있는 현대식 암자가 필요하여 일월암 아래에 객실을 만들었다.

“스님은 컨테이너 상자나 갖다 놓으라고 하셨는데......” 라며 건축가는 이 건물이 지나치게 화려하다고 말한다.

객실은 나무로 마감된 한 칸짜리 사각형 집이다. 흔히, 아주 보잘것없는 세 칸짜리 초가집이라는 ‘초가삼간’ 보다도 작은 집으로, 이 작은집 보다 더 작은 공간이 머리위에 얹어졌다.

단층으로 지어진 암자는 툇마루를 조심히 달아내어 자연을 보고 있다. 숲속에 가부좌(跏趺坐)를 틀고서,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듯 불빛은 은은히 새어 나온다.
침묵하듯 조용히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절집의 석등(石燈)이다.
일월암 객실 전경, 소나무 사이로 조용히 새어 나오는 빛으로 존재를 나타낸다. ⓒ김용관

객실은 2.7m × 2.7m의 정사각형 방을 중심으로 주변부에 최소한의 기능만을 갖추고 있다. 객을 위해 찻상(茶床)을 볼 공간과 세안(洗顔) 장소 정도만 추가됐으며, 가끔 기거(起居)할 때 필요한 이불장이 하나 있다.
작은 집에 필요한 만큼의 크기들만 있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힘의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일월암 객실 평면도, 김희준, 스튜디오 a+m

집의 중심을 차지하는 공간을 달랑 방 하나라고 하기에는 그 공간의 깊이는 남다르다. 숲속에 고립해 기도하는 방, 그 위에는 비어있는 작은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면적상 같은 공간이지만 굳이 두 개의 공간으로 보는 까닭은, 사방의 자연을 유입하는 건축가의 재치가 돋보여서다.
자연과 호흡하는 작디작은 공간에, 지혜가 배어 있는 집임을 알 수 있다.
일월암 객실 단면도, 김희준, 스튜디오 a+m

덜 가지고 더 존재하는 집

툇마루에 올라 내부를 살짝 엿보면 정제된 공간에 집 밖의 자연이 한줄 들어온다.
정비례에 맞춘 두 개의 흰 창호 넘어 숲속의 소리가 들려으는 듯 하다. 창호를 열고나서면 뒷편에 툇마루가 있음을 암시한다.
일월암 객실, 툇마루에서 문을 열면 비례 좋게 잘 정리된 공간이 나온다. ⓒ김용관


내부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지와 삼베로 마감했다. 그저 검소하고 소박한 느낌이다.
사면에서 들어오는 자연의 빛으로 밝고 청량한 공간이 됐다.
저곳에서 스님과 다담을 나누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한차례 눈이라도 오면 절정이다.
일월암 객실 내부, 한지를 통해 은은히 스며드는 빛과 상부에서 퍼지는 빛이 공간을 밝히고 있다. ⓒ김용관

“사교장에서 제일 예쁘게 보이게 해줘”라며 한껏 가꾸고 온 여자들에게 샤넬은 “너무 화려한 장식은 당신을 가린다”고 조언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동서를 막론하고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은가 보다. 시원하게 문을 열면 자연과 통할뿐, 방안에는 그 흔한 가구 하나가 없다.
일월암 객실, 툇마루의 문을 활짝 열면 자연과의 어떠한 경계도 없다. ⓒ김용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은 무엇인가? 작은 공간에 억류되는 인생이 아닌 삶을 영위한다는 전제하에서 답을 구한 이들이 있다. 집이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거주만 하면 된다는 가치보다 그 속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내일이면 12월, 도시가 화려해지는 연말이 온다. 모두가 사상가나 수도자의 삶을 살수는 없지만, 덜 가지고 더 존재하는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 봄직하다.

 

글 양승렬 


사진 출처
소로우의 오두막 : 나카무라 요시후미(Nakamura Yoshifumi)
일월암 객실 : 김희준, 스튜디오 a+m, ⓒ김용관

 

'아름다운글 > 수필.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  (0) 2011.10.06
[아버지의 추억] 마종기  (0) 2011.10.03
[스크랩] 20 : 9,980 / 김규항  (0) 2011.10.03
대상에 대한 표현  (0) 2011.09.07
가로림만 풍경  (0) 201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