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 Rothko
American Artist Abstract expression!ism (1903.9.25.~1970.2.25.)
Title : 3/13 1949
Oil on canvas
MOMA(Museum of Mordern Art) New York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작품 속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대중에게 설명해주는 어떤 글이라도 나올까봐 걱정하고 있다. 이는 얼핏 보면 친절하고 유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고와 상상력을 마비시키고 예술가를 너무 일찍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무언가를 꼭 믿어야 한다면, 나는 관습적인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감상자의 섬세한 영혼을 믿는다. 그들이라면 어떤 정신적 열망을 위해 그 그림들을 이용할지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정신과 열망이 모두 있다면 진정한 교류가 있기 마련이므로.” 나의 가슴을 사뭇 고동치게 하고 더 좋아하게 만든 Rothko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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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White Center 1950
Oil on canvas
150cm×200cm
2007년 5월 15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인
7,280만 달러(약 673억원)에 팔린 작품.
"어떤 화가들은 모든 것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말을 적게 할수록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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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Untitled 1949년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나는 추상예술가는 아니다.
나는 색, 형태, 또는 어느 것과의 관계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오로지 기본적인 인간의 감성들을 표현할 따름이며 비극, 희열, 운명들을 표현한다.”
Title : No.5 1949
Oil on canvas
색채는 단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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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No.10 1950
Oil on canvas
MOMA(Museum of Mordern Art) New York
관람자와 내 작품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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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Untitled 194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우리는 복잡한 사상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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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에 어떠한 설명을 달아서는 안된다
내 작품 앞에서는 침묵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대신 보는 방법을 이렇게 말한다.
조명은 어두워야하고 관객과 작픔과의 거리는 45cm
떨어진 거리에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색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고 새로운 자유를 느낄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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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Untitled 1948
Oil on canvas
“이해와 이해 너머의 경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사랑은 대답, 어떤 획득을
갈망한다. 말은 떨리고, 불확실하며… 우리가 적게 안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영원하고 신비에 쌓인 진리가 우리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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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색의 관계에만 끌린다면, 당신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거다.
나는 보다 깊은 감정에 관심을 가진다. 비극, 엑스터시, 파멸 혹은 비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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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조형적 표현 언어를 사용해
예술가가 생각하는 리얼리티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과학자보다 철학자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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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친근한 실체(독자성)는 확고한 연상체계를 파괴하기 위해
분쇄되어야만 한다. 그것으로 사회는 점점 우리 주변의 모든 측면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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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Untitled 194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색채는 단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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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작업이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여행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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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은 관객에게 직접적인 호소력이 있지요.
그것은 관객을 그 속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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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No.5 1950
Oil on canvas
MOMA(Museum of Mordern Art)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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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No.7 1960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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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No. 15 1949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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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Untitled 1953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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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Blue, Orange, Red 1961
Oil on canvas
그의 작업의 재료는
'내면의 삶' 이었으며 '내면의 체험'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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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Untitled (Blue, Green and Brown)
Oil on canvas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는 영혼을 빨아드리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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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No.15 1957
Oil on canvas
Rothko는 미술 작품을 통해 감성적이고 종교적인 감흥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런 신념을 화폭에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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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격변의 시기에
세계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몰려든 아방가르드적 화가들과 패기 넘치는 미국 화가들이 섞이면서
뉴욕이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뉴욕에 정착한 화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다는
야망과 신념에 사로 잡혔고 이를 통해 태어난 운동이 추상표현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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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태생의 미국화가.
예일대에서 철학, 심리학, 경제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했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장학금을 받지 못해
가난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이주.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하였다.
렘브란트의 그림, 모짜르트의 음악, 니체의 철학이
Rothko사상에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Rothko는 자연에 관심이 많았지만, 중기부터 추상화에만 전념했고 오늘날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색면 화가라고도 하듯이
작품의 주제는 색과 빛이라 하겠다.
큰 화면위에, 강렬한 색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깊고 풍요로운 색의 단면들을
올려놓음으로써 여러 색면들의 대비효과가 주는 빛과 깊이 감, 유일, 무한 등....
정신과 연관된 주제를 연상하게 하면서
그림에서 실제로 빛이 발산하는 것 같다.
그저 단순히 생각한다면 단지 벽에 걸린 색칠한 캠퍼스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그림에는 사람들의 생각, 감정, 문화...등을 모두 함축한 듯한 단조로운 색면으로
그의 희망과 환희 같은 밝은 색들로 가득한 색면들은 매우 큰 힘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어떤 그림들은 색면이 무게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고 투명하게 떠다니며
색들은 밝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반면
때로는 마치 웅장한 감정들이 내재되어있는 것 같은 색면들.
나 뿐 아니라 많은 관람자들이
그 팽팽한 색의 유혹 앞에 멈춰 서게 하는 건 또 다른 하나,
모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단순한 형태의 색면이 주는
‘보편성’같은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선 그의 큰 그림 앞에서면 뭉클하게 솟는 경탄과 감동에
한껏 열린 마음으로 설레며 빨려들듯 말을 잃고 숭고함이랄까 경건함 마저 들게 한다.
“그림은 사람과 교감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감성적인 감상자에 의해 확장되고 생성된다.”
바로, 그래! 이거야!
내가 이토록 쓰고 싶게 한 거!
나의 자유로운 영혼은
Mark Rothko 그림 앞에서... 빛나는 그의 영혼 속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듯
꿈틀 대며 생동하는 감동과 설렘의 큰 나래로
푸르른 하늘 끝
무한의 세계를 마음껏 날고, 또 날아본다.
2011.10.30. 편집 하늘 새
평소에 현대작가 중 제일 좋아하던 Mark Rothko였는데
막상 내가 그의 작품을 다룬다는 생각을 하니 우선 가슴부터 뛰었다.
어떻게 할지 확신도 없이 그냥 해보고 싶은 의욕이 먼저 나를 앞선 것이다.
이 음악정원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감동으로 설레며 지내온 나날 속에서
마침내 망설이고 망설이다 이렇게 큰 용기를 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채....
Mark Rothko의 그림이랑 그에 관한 걸 수집하다 보니
미처 내가 느끼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사실에 사뭇 경건한 마음마저 든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지금,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적시하기 보다는
그의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중기 작품들만 옮겨보았다.
말기 작품들은 훗날로 미루고...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아름답게 꾸밀 줄도 모르고 부족한 게 많긴 하지만
어찌됐든 감사한다, 이렇게 해 냈으니....
그저 큰 벽면에 그의 멋진 그림 하나만 타악! 걸어놓고
그냥 그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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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on maroon 1959
Oil on Canvas
‘비극적 서사의 예술적 승화’
바로 그의 삶이자 예술이 아닐까 한다.
‘ 비극이라는 감정은 그림을 그릴 때 늘 나와 함께 했다’
그는 그의 고백과 함께 그가 느끼는 비극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앞에 서면 할 말을 잃게 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색면,
관람자를 흥분시키며 감동으로 몰아가는,
모든 감성을 압도하듯 깊고 무거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방식대로, 고집스럽고 집요하게, 괴팍하고
비상식적으로 풀어나간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자존심 Mark Rothko.
고뇌 속에서 치열하게 온 열정을 쏟아 부었던 그의 작품들.
그의 작품 앞에서면
어둡고 단순한 색의 요동치는 생명력과 거스를 수 없는 숭고함에
경건해 지는 내 마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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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darks in Red 1958
Oil on Canvas
1950년경 마크 로스코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여
‘단순한 표현 속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여 ‘색면 예술’이 시작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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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on Maroon 1958
Oil on Canvas
Mark Rothko는 잭슨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되어 왔으며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화가로 자리매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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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58
Oil on Canvas
Kawamura Memorial Museum of Art Japan
Mark Rothko는 추상 이미지가 인간사의 근원적 속성을 직접 반영할 수 있고,
회화가 비극, 환희, 숭고함과 같은 영원한 주제들과도
때로는 맥을 같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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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on Maroon 1959
Oil on Canvas
그는 그림의 제목을 붙이는데 있어 숫자나 색깔로 작품을 표시했는데,
그 이유는 단어의 의미가 관객의 마음과 상상을 마비시키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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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9 1958
Oil on Canvas
MOMA(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붓 자국이 거의 없는 그의 작품은 어떤 주제를 표현하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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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6 (Red, Brown and Black) 1958
Oil on Canvas
Mark Rothko는 그의 그림앞에 서는 모든 감상자에게 자신을 몰입시켜
몰아의 경지에 들어서고 신비적 공허와 숭고를 체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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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and Green
Mark Rothko의 작품은 1950년대 후반부터 상당히 어두워졌다.
1958년 무렵에는 화려한 색상 대신
붉은색, 갈색, 고동색, 검은색 등 어두운 색을 선택하여 사용하였고,
특히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몰두했던 벽화작업에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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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Green and Brown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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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4
Oil on Canvas
한 비평가가 그의 작품을 혹평을 한데 대해
“나는 내 작품에 관하여 변호할 의도가 없다. 내 작품은 스스로를 방어한다.”
Mark Rothko는 그의 작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았기에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작품이 스스로 이야기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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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58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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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enda and Mullberry 1959
Oil on Canvas
Mark Rothko의 Seagram 사건
1958년 Rothko는 뉴욕의 Park Avenue에 있는
주류회사에서 새롭게 지은 Seagram Biulding에 장식할 벽화를 35000달라에 주문 받았다.
지금의 250만달라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그 당시 최고의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최고급의 빌딩에 걸맞게
최고의 화가였던 그에게 의뢰한 것이다.
자신의 그림을 많은 사람에게 경험을 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Rothko는
모든 열정을 쏟아 부으며 열심히 작업을 하여 30점을 완성했지만
호화판 레스토랑 ‘Four Season'에 오는 많은 손님들의 허영심이
자기 그림을 가치 없게 만들 거라는 염려 때문에 결국 계약을 파기했다.
250만 달라의 큰돈도 그의 예술 속에서는 전혀 유혹이 될 수 없었다.
Rothko는 자기 작품의 순결성을 지키고, 영합을 마다함으로써
화가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작품의 가치는 더욱 치솟게 되었고
Rothko 작품은 작품이 구매자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더욱 유명해진 ‘Seagram Mural(씨그램 벽화) Seri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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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Black on Maroon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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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Series 1959
Oil and mixed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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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1959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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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Section 3
Black on Mar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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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Section 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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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Section 3
Black on Maroon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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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for End Wall Untitled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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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Section 1
Untit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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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Section 4
Red on Maroon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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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ral
No.6 (Black on Maroon)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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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ram Mural Section 4
Red on Maroon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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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on Dark Sienna on Purple 1960
"만일 내 그림 앞에서 감정을 터뜨리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그림을 매개로 그들과 소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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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 (Bright Blue, Brown, Dark Blue on Wine)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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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8 Gray, Orange on Maroon 1960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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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2
Leeum Gallery of Art Seoul
이작품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즈음의 Rothko는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건강상 문제 등으로 인한 심한 우울증으로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다.
Rothko의 작품은 말년으로 갈수록 화면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암울하고 사색적이며 절제된 작품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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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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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 1964
많은 사람들이 나의 그림을 보고 울거나 나약해지는 것은
나의 인간적 감성이 그들에게 전해진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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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0 Brown Black Sienna on Dark Wine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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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4 Horizontal White over Darks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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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 1964
Rothko의 회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실존의 비극과 이것을 이겨내는 숭고한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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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4 1960
굉장히 큰 그림을 주로 그렸던 그의 그림은
압도하는 깊고 경건한 감동에 그 어떤 종교벽화를 못지않은 숭고미가 느껴지게 한다.
그가 말년에 심적 고통과 함께 파고들었던 예술세계가 함축된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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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Form
색면의 경계에 서서 또 다른 경계를 바라보는 경험
그것이 Rothko와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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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8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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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Red and Black 1968
붓 대신 스펀지를 사용하기도 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유화 900여점, 파악된 종이 작품만 2천500여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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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9
Private Collection
1969년 작 "무제"를 비롯하여 Rothko가 생애 마지막에 그린 그림들은
고동색 혹은 검은색과 회색의 색면으로 거의 이루어져 있다.
내면에서 요동치는 우울, 고립...고독이 표현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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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9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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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9
Tate Modern Art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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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9
Tate Modern Art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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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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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9
그는 인간의 감성문제, 즉 인간적 고뇌나 비극, 희열, 그리고 운명 등을
그의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했으며,
사람들과 함께 종교적 체험까지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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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8
Oil Acrylic and Mixed Media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종교적 경험을 하는 사람들로서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런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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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Brown and Gray) 1969
말년의 Rothko는
가족에 대한 애착, 불안과 신경쇠약, 우울...심적 고통으로
명예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경쟁 심리의 질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자살이라는 절박한 수단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그 후 그는 더 유명해져
로스코의 작품에 대해 "초월적 힘을 가진 색채"라고 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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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Rothko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자신의 회화를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실존과 마주하며 현세의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절대적인 영원에 도달하는 체험을 제공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세계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숭고의 예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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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8 Black form paintings 1964
많은 사람들이 Rothko 예배당에 앉아 그의 작품을 한없이 들여다보다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Mark Rothko Chapel
Rothko는 ‘명상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작업실에서 본 Seagram Builing을 위한 벽화에 매료되었던 두 사람,
즉 휴스턴의 미술품 수집가와 세인트 토마스 가톨릭 대학교 미술대학장이
1965년 초 Rothko에게 대학교의 예배당을 위한 작품으로
커다란 벽화연작을 25만 달러를 내 놓으며 주문하였다.
Rothko는 신도들이 벽화로 둘러싸이게 되도록 성당 모양과 비슷한 팔각형의 토대로 하고
성당 전면에 자신의 그림을 배치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구조고
성당 중앙의 천장으로부터 은은하게 빛이 떨어지도록 했다.
어두운 색조의 세 점의 3면화와 다섯 점의 개별 작품으로 이루어진
14점의 대형 그림이 걸린 예배당.
그 결과 그 예배당 안에는 종교적 상징물 대신
그의 그림이 걸려 있는 독특한 예배당이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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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예배당은 Rothko가 자살한지 약 1년 후에 공개 되었다.
휴스턴 예배당 작품의 절반은 단색처리하고 나머지 절반은
윤곽선이 선명한 검은색 사각형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전에 작업했던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Rothko는 생의 마지막 2년 동안 이 어두운 색채실험을 계속했는데
예배당벽화의 음울한 분위기는
Rothko 말년의 심각한 우울증과 외로움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미술사가 바바라 로즈는 Rothko 예배당을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과 니스 생폴 드 방스의 마티스 성당에 견주며
“이들 성당에서는 그림들이 내부로부터 신비스럽게 빛을 발하고 있는 듯 보인다”라고 했다.
성당 봉헌식에는 각계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에서 추기경이 교황대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려 할 때마다
진정한 예술작품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감춰져 있으며,
고집과 용기에 의해서만 화가는 위대해 진다”
세인트 토마스 가톨릭 대학교 미술대학장의 봉헌사이다.
Mark Rothko는 고집과 용기로 영원한 예술의 안식처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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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태생의 미국 화가.
예일대에서 철학, 심리학, 경제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했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학자금이 지원되지 않아
가난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이주하여
독학으로 그림 작업을 하면서 색면 추상의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 낸다.
큐레이터 캐서린 커의 글을 인용하면,
Mark Rothko는 가족에 대한 애착, 불안과 신경쇠약, 우울...
명예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질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최고의 찬사를 받던 앤디 워홀이나 잭슨 폴록 같은 동시대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생의 50년간의 힘겨웠던 가난함도 끝난 말년에
최고의 명성과 부도 얻은 그였지만
67세의 원숙한 시기에 결국 자신의 손목을 그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했다.
그 슬픔의 깊이는 이리도 어두웠을까. 그의 검정은 깊고...깊고...또 깊다.
캔버스의 화면을 모두 검정으로 서걱서걱 채워 넣었을 때의 그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심적 고통 때문에 더 치열하게 매달려서 그렸을 듯한 후기 작품들과 함께
그 많은 양의 작품과 대 걸작을 남긴 한 화가의 삶.
죽음과 무를 향했기에 그의 삶과 죽음은 처절하고 슬프고 어둡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가 종교적인 인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 역시 종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Rothko의 작품은 깊고 무언가 가득 찬 충만감 같은 것,
쉽게 범접하지 못할 경건하고 영원한 침묵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숭고하고...그래서 예배당과 어울리는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필히 가서 그 교회 한 가운데 앉아
그의 영원한 침묵의 깊은 영혼에 빠져 들고 싶다.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의 이 가득한 마음도 함께....!
그래도 무언가 내가 해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솟구친다.
하지만 지난 번 작품을 올리던 고동치던 설레임과는 다른,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이다.
엄숙하고 경건함으로 나를 압도 시키는 그 깊이와 무게.
할 말을 잃고 기도하듯 진정한 마음으로
그의 영혼에게 깊은 존경과 함께
더 가까이 닥아 간 희열과 설레임을 가득 전하고 싶다.
그는 영원히 내안에서 빛을 발하며 살아 숨 쉴 것이다.
참 행복하다.
한 위대한 영혼과의 대화 같았던 많은 시간들.
혼자 진지하고, 혼자 뜨거웠고... 마구 설레었다.
그럴 수 있었음에 더욱 행복하고 감사하다.
<편집자 하늘새의 말 201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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