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나도 바람이고 싶다/여행2

[스크랩] 앵강만의 포구마을과 해안도로-드므개마을에서 해라우지마을까지

조용한ㅁ 2012. 1. 9. 19:05

날이 밝아 다시 찾은 드므개마을.

전날 어둠속에서 본 포구 정경과는 사뭇 달랐다.

따스한  햇살과 은빛 물결 그리고 작은 어선들

평화로운 노도 섬마을과 드므개마을 고개를 넘기 전에

 푸른연꽃을 닮은 벽련마을 선착장에 서서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동백이 지천인 남해의 고도 노도에서

유배객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섬사람들은 허구한 날 빈둥거리며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서포를 일러 '노자묵자할배'라 하였다

 

아득한 섬들은 구름이 내려앉은 바다 건너에 있고

방장봉래봉은 가까이 있도다.

육친인 형제 숙질과는 떨어져 홀로 외롭게 살건만

남들은 나를 신선으로 알겠구나.

                                                             ------- 김만중

 

벽련마을과 노도 김만중은 노도에서 산 3년 동안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지었다. 벽련마을의 다랭이논도 정겹다.

 

 마을에서 금산 부소바위 오르는 길목에는 서불이 지나가며 남겼다는 '서불과차'의 바위글씨가 있다.

'큰 항아리처럼 담긴 바닷가'라는 뜻의 드므개마을은

우리나라 유일의 4계 성씨촌 마을이다.

마을 윗쪽은 박씨촌, 아래쪽은 손씨촌, 송림 윗쪽은 김씨촌, 아래쪽은 정씨촌으로

씨족간으로 이루어진 집단마을이다.

 

드므개(두모)마을 앞에는 조그마한 백사장이 있다. 진한 연두 빛깔의 파래가 해변 몽돌을 덮고 있어 갯내와 더불어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조금은 좁은 듯한 백사장은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하였다.

점점 떠 있는 어선과 봄내음 물씬 풍기는 싱싱한 파래,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물 위에 둥둥 뜬 새떼들이

이 한적한 백사장의 전부였다.

 

 

드므개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앵강만에 들어선다.

육지 깊숙이 들어와 남해섬의 잘록한 허리를 만드는 앵강만,

넓은 백사장과 푸른 마늘논이 여행자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앵강만과 화계마을 마을 앞바다에 목단꽃 같은 섬이 있어 화계라 한다. 

탁트인 앵강만과 점점 떠 있는 섬들이 한적한 포구마을과 잘 어울러 그림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마을 바닷가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의 잎이 한꺼번에 피면 비가 때 맞추어 와서 풍년이 들고,

 나누어 피면 풍년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앵강만 만 이름이 왜 앵강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앵강만에서 길은 1024번 지방도로 나누어진다.

16번 군도가 섬이 많아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면

이 해안도로는 깊은 바다와 해수욕장, 다랭이논이 잘 어우러져 빼어난 해안절경을 자랑한다..

 

몽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월포해수욕장 옆에는 꼭두방해변이 있다.

바다 위로 솟은 거대한 바위에는 소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파도소리만 밀려드는 해안 모래밭은 연인들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의 경치는 가히 일품이다.

 

꼭두방해변 맷돌의 손잡이처럼 불쑥 튀어나와 꼭두라 칭했던지 아니면 정수리나 꼭대기라는 의미에서 나온 이름이 아닐까 싶다.

 

남해섬은 산지지형이라 곳곳에 다랭이논이 보인다.

가천 다랭이마을이 규모가 커서 유명하지만

푸른연꽃(벽련)마을이나 이곳 홍현리 해라우지마을의 다랭이논도 정겹기 그지 없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소라가 많이 잡히어 '소라 螺'자를 써 라라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 말 행정구역 개편 때 무지개 고개가 있다고 하여 홍현으로 마을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200여 년 전에 바다에 돌담을 쌓아 고기를 잡는 석방렴을 앵강만에서 최초로 하였다고 한다.

 

  옛날 이곳 무지개 골짜기에는 금실 좋기로 이름난 부부가 살았다.
어느날 남편이 무지개를 따라간 뒤 돌아오지 않자 딸아이와 함께 기다리던 아내는

무지개가 뜨면 남편을 부르며 무지개를 향해 걷다 쓰러지곤 하였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자 산신령이 나타나 남편이 간 방향을 일러 주었다.

그러나 가도가도 길은 끝이 없고 결국 남편도 찾지 못한채 무지개를 타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후부터 무지개골의 이름을 따 홍현마을로 불렀다는 안타깝고 서러운 이야기가 전해 온다.

 

홍현리 해라우지마을과 다랭이논

 

3일에 걸쳐 계속되었던 남해여행도 이제 서서히 정리해야겠다.

아직 용문사, 화방사 사찰도 가 보지 않았고 남해 본섬에 딸린 섬에도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아 아름다운 섬을 단번에 알겠다는 욕심은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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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천령의 바람흔적
글쓴이 : 김천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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