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나도 바람이고 싶다/여행2

겨울바다, 로망의 공간을 태안에서 만난다

조용한ㅁ 2011. 12. 21. 19:20

 

바다·바람·눈발·솔향…‘날 것의 청량함’과 함께 걷다
충남 태안 ‘세밑 여행’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입력 2011.12.21 14:01
# 겨울바다, 로망의 공간을 태안에서 만난다.

'겨울바다의 낭만'을 로망처럼 가슴에 담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 만나는 겨울바다는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한 겨울의 바다는 찬 바람이 지배한다. 여민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든다. 낭만은커녕 어찌나 추운지 눈물마저 찔끔 날 정도다. 텅 빈 해안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 혼자 딛는 백사장의 발자국, 허공을 가르는 갈매기, 여기다 향긋한 커피향 따위를 더한 풍경쯤으로 겨울바다를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진짜 겨울바다는 여간해서는 그냥 서 있기 조차 힘들다. 겨울이면 억센 이빨을 드러내며 거칠어지는 동해 바다가 특히 더 그렇다.

↑ 태안의 해변길은 줄곧 해안선을 따라가는데, 백사장 대신 해변 옆으로 난 송림 사이의 오솔길을 걷는 맛도 좋다. 소나무 숲에 들어서면 차가운 대기 속에서 뿜어내는 향긋한 솔향을 맡을 수 있다.

↑ 태안의 해변길 5코스의 두여전망대에 올랐을 때, 마침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쏟아졌다. 썰물로 바다가 멀리 밀려간 해변 위로 눈발이 아우성처럼 흩날리는 모습이 또 다른 정취를 빚어낸다. 그 정취에 반했는지 한 관광객이 해변길을 걷다가 두여해변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충남 태안 쪽의 서해는 좀 다르다. 복잡하게 들고나는 해안을 이룬 이쪽의 바다는 한결 순하고, 썰물 때 바다가 멀리 물러가면서 드러나는 백사장은 부드럽다. 해안 뒤편으로는 어김없이 한가운데로 오솔길이 지나는 솔 향기 짙은 곰솔숲이 있으며, 바다에 잇닿아 있는 포구의 마을들은 정겹다. 매운바람도, 거친 파도도 드무니 겨울의 바다여행으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 게다가 이맘때면 태안 일대에는 눈이 잦다.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 위로 꽃송이처럼 눈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색다른 정취를 보태준다.

뭐니뭐니해도 겨울 태안으로의 여정의 정점은 낙조다. 서해안의 해넘이야 언제든 볼 수 있지만, 한 해 중에서 대기가 청명해지는 겨울철의 낙조가 가장 색이 붉고 화려하다. 게다가 지금처럼 세밑이라면 한 해를 보내는 감상이 겹쳐져 일몰의 풍경이 더욱 장엄해진다. 묵은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새해의 첫날을 맞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서해로 떠나볼 일이다. 인파가 몰리는 동해안의 명소에서 떠들썩하게 마주하는 일출도 새로 맞는 해의 두근거림과 희망을 안겨주지만, 서해안에서 차분하게 묵은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저마다 가슴 속에서 작은 희망 하나를 꺼내보는 일도 소중한 추억이 될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 투박해서 더 아름다운 바닷가 오솔길…솔향기

충남 태안의 바닷가에 두 개의 '걷는 길'이 놓였다. '솔향기길'과 '해변길'이란 이름의 두 개의 길이다. 겨울에, 그것도 바람이 찬 바닷가에서 웬 걷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태안의 서해안을 따라 놓여진 길은 다른 계절도 물론 그렇지만, 겨울철에 걷기에도 딱 좋은 길이다.

태안의 해안 길 두 곳 중 먼저 만들어진 것이 솔향기길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4년 전 유조선의 원유 유출사고로 일대의 바다가 기름 범벅이 됐을 때, 태안에는 130여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아왔다. 그때 주민들은 팔을 걷어붙인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가파른 언덕에 줄을 매주고 비탈진 숲길에 발 디딜 자리를 파 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의 정취에 반한 마을 주민이 길과 길을 이었고, 그게 그대로 빼어난 해안 트레킹코스 '솔향기길'이 됐다.

솔향기길은 태안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북쪽 해안가에 있다. 솔향기길의 매력은 그곳이 '본래 그대로'의 서해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손수 만든 투박한 해안길은 자연스럽기 그지없고, 그 길에서 만나는 어촌마을도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태안 최북단 만대포구에서 출발해 허리춤에 바다를 끼고 걷는 솔향기 길은 총연장 길이가 40㎞가 넘는다. 한번에 다 걷기란 불가능한 거리다. 그래서 길을 10㎞ 내외로 쪼개 모두 4개의 코스로 나누어 놓았다. 4개 코스 중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코스가 만대포구에서 꾸지나무해변까지 이어지는 제1코스 10.2㎞ 구간이다.

길은 줄곧 해안을 따라간다. 하나의 해안이 끝나면 고개를 넘어 다음 해안으로 내려서며 이어진다. 말이 고개이지 높이가 자그마한 둔덕 정도에 불과하니 코스 중간쯤에 있는 악너머고개를 빼고는 여간해서는 숨이 찰 일도 없다. 도투매기 둔덕을 넘으면 큰어리골이 나오고, 와랑창 둔덕을 넘으면 여섬과 차돌백이 해안이 나오는 식으로 길이 계속된다. 솔잎이 깔린 숲길과 폭신한 백사장, 짜그락거리는 해안의 자갈길을 교대로 걷다 보면 해안에서 두꺼비바위와 용난굴, 칼바위, 삼형제바위 같은 소박한 풍광들을 만나게 된다. 탄성을 내지를 정도의 절경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걷던 발길을 멈추게 할 정도의 풍경은 된다.

1코스가 바다의 풍경에 집중하는 길이라면 2코스와 3코스는 해안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더해지는 길이다. 이 두 코스의 명소라면 2코스의 구멍바위와 3코스의 소코뚜레바위를 꼽을 수 있겠다. 두 곳 모두 파도와 바람이 해안가의 바위에 구멍을 뚫어놓은 곳인데, 구태여 걷지 않더라도 이곳만을 썰물 때에 맞춰 목적지 삼아 다녀와도 좋을 곳이다. 3코스의 이원방조제도 빼놓지 말아야 할 곳. 방조제 외벽에는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의 절망을 딛고 자원봉사자의 헌신으로 바다를 되살려낸데 대한 감사의 뜻과 환경의 소중함을 담아 손도장으로 그린 벽화가 있다.

# 해안길의 두여전망대에 올라 용의 지느러미를 보다

태안의 두 번째 길은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가 태안의 서해안을 따라 내고 있는 '해안길'이다. '해안길'은 태안의 학암포 해변에서 시작해 몽산포를 거쳐 굽이굽이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안면도의 최남단인 영목항까지를 잇는다. 총연장 120㎞에 달하는 긴 트레일 코스다. 전체 구간을 6개의 코스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조성하고 있는데, 태안의 몽산포해변부터 안면도가 마주 보이는 드르니항까지의 4코스(솔모래길 구간)와 안면도 백사장 항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의 5코스(노을길 구간)의 조성이 우선 마무리됐다. 나머지 만리포에서 몽대항을 잇는 1, 2, 3코스는 내년 중에, 꽃지해변에서 영목항까지의 6코스는 내후년에 조성을 끝낼 계획이다.

조성을 마친 4코스와 5코스는 둘 다 나무랄 데 없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즈음에 딱 맞는 곳을 꼽으라면 5코스 노을길을 들 수 있겠다. 이 길은 부드러운 백사장이 펼쳐진 해안과 솔향기 무성한 해변의 오솔길을 교대로 걷는 길이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따스하게 비출 무렵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백사장에 발자국을 찍으며 걷다가 바람이 차면 해안 뒤편 송림의 오솔길로 들고, 그래도 춥다면 걷다가 도보코스와 나란히 지나는 내륙 쪽 도로로 나와서 털털거리며 포구마을을 느리게 들러가는 버스를 타도 좋다. 한번 시작했다면 꼼짝없이 끝까지 걸어야 하는 내륙의 길과는 걷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5코스 노을길 구간을 걷자면 북쪽의 백사장항이나 남쪽의 꽃지해변 양쪽에서 다 출발할 수 있지만, 낙조시간에 맞춰 꽃지해변에 당도하도록 일정을 짜는 것이 낫다. 그러니 출발지점은 자연스럽게 백사장항이 된다. 백사장항의 횟집인 '대우수산'과 '미미수산'의 사잇길에서 5코스는 시작된다. 길은 곧 삼봉해안 뒤편의 울창한 송림 숲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해안길'에서는 굳이 이정표를 따라가지 않아도 좋다. 썰물 때라면 바닷물이 멀리 밀려가면서 드러난 백사장에 발자국을 꾹꾹 딛으며 걷는 편이 더 운치 있겠고, 밀물 때나 바람이 거셀 때면 청량한 솔향이 은은한 송림 숲을 걷는 편이 더 낫겠다.

이쪽 길에서 최고의 경치를 꼽으라면 단연 두여해변이다. 두여해변은 해수욕장으로는 그다지 이름이 나있지 않지만 썰물 때면 드러나는 물결모양의 습곡이 해안가에 용의 등지느러미처럼 드러난다. 그 모습을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두여해변에서 밧개 해변 쪽으로 넘어가는 언덕의 두여전망대다. 이곳에 서면 시선의 높이만으로 주위의 풍광이 이렇듯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두여해변을 지나서 길은 밧개와 두에기, 방포를 지나 꽃지해변까지 이어진다. 방포에서 꽃다리를 건너 꽃지해안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할미, 할아비바위 쪽으로 넘어가는 장엄한 낙조를 만날 수 있다. 맑은 날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수면으로 풍덩 떨어지는 낙조풍경을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해가 구름에 살짝 가린 날에도 낙조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덜하지 않다. 구름이 해를 살짝 가린 날, 붉은 기운이 구름의 한쪽 끝을 물들이며 빛이 번져가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다 저릿저릿해지니 말이다.

태안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해(日)가 진다, 해(海)로 진다, 해(年)도 진다

가는 길, 묵을 곳 & 먹을 것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가는 길, 묵을 곳 & 먹을 것
  요즘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가는 길 = 솔향기길을 목적지로 삼는다면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나들목에서 나와 태안읍내까지 간 뒤 32번 국도(만리포, 천리포)를 타거나, 원북면소재지와 이원면소재지를 지나는 603번 지방도(꾸지나무골, 학암포, 구례포)를 타면 된다. 해변길이 있는 안면도 쪽으로 가려면 홍성나들목에서 나와 96번 지방도를 따라 원청삼거리까지 가서 77번 국도로 갈아타면 된다. 이쪽 길에는 간월호와 부남호를 안면도 쪽으로 향하는 길은 이정표가 워낙 잘 돼 있어 찾아가기 쉽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안면도 일대에는 펜션들이 즐비하다. 제법 이름난 해변 주위에는 한 집 걸러 펜션이 하나씩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세밑에 조용한 휴식을 원한다면 번잡스러운 명소보다는 호젓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펜션을 골라 찾아가는 것이 낫겠다. 솔향기길이 이어지는 태안반도의 북단 만대쪽 해안쪽에는 아담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펜션 5, 6곳이 몰려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 평소에도 단골들만 묵고 가는 곳이다. 가장 고급스러운 펜션으로 꼽히는 곳이 자드락(041-675-9908). 바다를 끼고 들어앉은 입지나 펜션의 조경 등이 수준급이다.

태안의 겨울철 먹거리라면 굴이 으뜸이다. 굴밥을 내는 함바위굴밥집(041-674-0567)과 돌솥굴밥으로 유명한 해성굴밥(041-675-4036) 등이 유명하다. 꾸덕꾸덕 말린 우럭으로 끓여내는 우럭젓국도 겨울철 태안의 별미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