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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그냥 흐르게 두라 / 김용택
봄이 왔다. 봄바람과 봄 햇살 속에 세상의 모든 풀과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운다. 살을 엘 것 같은 추운 겨울을 견딘 실가지 끝에서 피어나는 꽃과 잎은 경이로움, 설렘, 고마움 그 자체다. 수억 년을 흘러 왔어도 자연은 저렇게 세상과의 어김없는 약속을 지켜 왔다. 저 장구함에 비하면 몇 십 년을 사는 나의 삶은 그 얼마나 짧고 초라한가. 나의 짧은 삶은 저 허공에서 깜박 꺼지는 한낱 티끌이리라.
어떤 학자는 지구가 생긴 이래 가장 짧게 사는 종 가운데 하나가 인간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들이 사는 이 지상에서 인간이 지구를 가장 빨리 파괴해서 자멸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들이 사는 모양을 보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내 머리 위에 드리워진 그 말의 불안한 그림자를 지우지 못한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나는 참담함과 부끄러움에 치를 떤다. 작은 강과 다정다감한 산의 모양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들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뚫고 가로질러 가는 저 엄청난 크기의 도로, 남의 집 모양이나 크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파렴치한 건물들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난다.
나는 요즘 섬진강을 자주 오르내린다. 아 진짜 나는 눈을 감고 싶다. 외면하고 싶고, 강 앞에 앉아 목을 놓아 통곡하고 싶다. 이 땅에 사는 것이 창피스럽고도 한스럽다. 수 천년을 흐르며 스스로 자기 모양을 만들어온 강들을 저렇게나 처참하게 뜯어고쳐서 어쩌자는 것인가. 강 언덕과 강을 파 뒤집는 붉은 포클레인이 보이면 나는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다.
강의 크기, 강의 모양, 그 강가에 있는 마을과 들과 산의 모양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저 오만스러운 다리들은 자연에 대한 폭력이다. 미친 짓이다. 야만이다. 모욕이다. 다리를 놓기 위해 강물에 박은 교각으로 다리 아래 희고 고운 모래는 큰 물살에 자취를 감춰 버렸고, 흉물스러운 큰 다리 모양은 강물의 굽이와 유장함을 난도질해 버렸다.
강물이 생긴 이래로 강물이 제 스스로 만들어 가는, 아름답고 소박해서 그래서 눈물겨운 서정을 자랑하는 강 언덕을 어쩌자고 저렇게 돌과 시멘트로 반듯반듯 쌓아버리는가. 말 없는 물이라고, 말 못하는 산이라고 우리들 마음대로 부수고 쌓고 허물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흉측하게 뜯어고쳐 가는 국토에 대한 모든 폭력을 거두어라. 저렇게 땅을 처참하게 파헤쳐 놓고 우리들이 잘 살면 어떻게 잘 산다는 말인가. 개발과 발전의 모델이 부수고 뜯어고치는 게 전부인가.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이 개발이라는 것도 나라가 보여 달라.
나는 국토를 돌아다니며, 이 나라가 진정 정부가 있는 나라인지 의심한다. 국가가 우리들의 국토를 관리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무지하고 무식하게 땅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전 국토의 그림을 다시 그려라. 작은 마을에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 아무렇지도 않게 흐르는 작은 실개천 하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강가의 큰 바위 하나, 고향 마을을 작은 뒷동산 하나라도 새로 그림을 그려 대통령이 관리하라.
정치는 잘못되면 온 국민이 나서서 고치면 된다. 보아라! 저 얼토당토 않은 대통령 탄핵이 민주주의를 죽였다고 우리 모두 떨치고 일어나 펄펄 살려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교각 때문에, 시멘트로 잘못 쌓은 강 둔치 때문에 사라진 고운 모래밭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에 맡겨 둔 국토는 지금 몸살을 앓으며 거지 같이 너덜거린다. 전 국토를 값싸고 천박하게 관광지화하려는 저 무모하고 치욕스러운 개발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 어떻게든지 관광객을 불러들여 돈을 벌려고 애 쓰는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호소한다. 땅이 죽고, 강이 죽으면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박한 산천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오지, 시커멓게 죽은 강물을 누가 찾겠는가. 자연의 완벽한 보존이 개발임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이대로 한도 끝도 없이 자연을 파괴한다면 우리가 머지 않아 엄청난 죄값을 치르는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축조물들이 자연 앞에 겸손하게 하라. 나는 세상을 뜯어고칠 아무런 힘이 없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진정 사랑한다. 울먹이는 심정으로 부탁한다. 흐르는 강물은 강물이 알아서 흐르게 그냥 두자.
- 김용택 / 시인 문화일보기사 게재 일자 2004/03/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