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만큼 치열한 여성의 삶을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녀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고 본인이 암 투병을 하면서도 삶의 빛과 그림자를 독자들에게 담담하게 전해왔다. 그녀의 탁월한 감수성은 질곡의 세월에서도 반짝였다. 상실감에 빠져 있거나 분노를 참지 못하는 당신에게 신달자가 말한다.
출산과 육아에‘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당신에게
어느 해 「타임」지가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제일 높은 비율을 보인 것은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육아를 하고 있는 여성들 중 행복하다고 대답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모순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로부터 인생의 행복을 얻을지라도 육아의 긴 시간 내내 행복했다고 말하는 여성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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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첫아이가 밤낮이 거꾸로 돼 무척 힘들었다. ‘누가 좀 집어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시어머니와 남편이 바라는 아들을 낳으려다 딸 셋을 낳았다. 그때만 해도 딸을 낳는 것이 내 결핍처럼 느껴지기도 하던 때여서 아마도 셋째를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셋째 역시 딸이었고 딸 셋은 그 시절 나에게 현실적으로 과도한 숫자였다. 현실은 암담했고 아이들은 나에게 던져버릴 수도 없는 짐이었다. 혼자라면, 혼자라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후배들에게조차 아이 낳는 것을 말렸다. 일하는 여성으로 살려면 아이들은 짐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른다섯에 가장이 되면서 집안을 꾸려가야 할 때 막내는 겨우 세 살이었다. 그때 그 아이가 없었더라면 과연 내가 그 시절을 견디며 살 수 있었을까. 물방울 같은 혀를 내밀며 뽀뽀를 하고, 잠을 잘 때 내 귀를 잡아 흔드는 세 살짜리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 불행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 아이가 내게 힘이 됐을지라도 그 아이를 기르고 책임지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다 괴롭고 힘든 일이니까.
아이들은 다 자라 어른이 되면서 내 보호자가 됐다. 아니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됐다.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을 그런 친구. 지금도 셋째는 매일 아침마다 안부 전화를 한다.
‘저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혈육이란 건 계산이 없다. 우리는 가족의 이름으로 위로받으며 누구나 무거운 인생을 들고 걷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출산과 육아에 힘들더라도 조금만 인내해주길 바란다. 모든 황홀감 속에는 상실이 있는 법. 언젠가 지금의 상실감은 사라지고 그 아이는 당신의 영원한 연인, 영원한 친구가 돼줄 것이다. 얼마나 든든한가.
남편을 향한 화를 참을 수 없는 당신에게
젊은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기억이다. 남편은 새봄만 되면 이상하게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옷을 찾아내라고 성화를 냈다. 아무래도 너무 낡아 필요 없다는 이유로 가을에 버린 것 같기도 한데, 그 기억마저 희미한 그 옷을 빨리 찾아내라고 등 뒤를 따라다니며 “빨리! 빨리!” 하고 윽박을 지르는 것이다.
내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 옷을 찾느라 장롱이니 서랍이니 닥치는 대로 열어 뒤적거리고 있으면 다시 등 뒤에서 “그거 하나도 못 찾아! 살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연이어 “빨리 찾아, 빨리 찾아!”라곤 했었다.
죄인이 따로 없었다. 나는 그때 왜 그렇게 못났었을까. 왜 발딱 일어나서 “그럼 당신이 찾아, 당신 옷이잖아!” 하면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커피 한 잔을 타서 마시든가 담배라도 하나 꼬나물고는 “별꼴이야 정말, 흥흥” 하면서 배짱 한 번 부릴 수 없었을까.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 마치 몸종처럼 설설 기면서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왜 밖으로 휙 나가지 못했을까. 하늘이 부끄러웠을까. 세상이 귀찮았던 것이다. 그냥 그대로 탁 눈감고만 싶었다.
나는 나에게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누구 부럽지 않게 키운 부모님 밑에서 자라 대학까지 나오고 시인이라는 직함까지 가진 년이 허구한 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기만 하려고 했으니. 게다가 그 우울증의 주인은 삶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럴 때 다만 몇 시간이라도 집을 훌쩍 벗어나 서점도 가고 시내라도 돌아다니고 그랬더라면 내가 사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젊은 날에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일어나라, 움직여라
지금 나같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여성이 있다면, 남편이 미워서 남편 보라고 밥도 굶고 누워 있는 여성이 있다면 발딱 일어나라. 그것은 못난 짓이다.
늠름히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얼굴에 크림도 바르고 머리도 예쁘게 하고 오히려 남편의 좋은 점 하나를 찾아 “글쎄, 당신은 이런 것을 이렇게 잘하는데 말이지 나도 좀 잘해야겠어요. 오늘부터 나도 뭘 좀 하겠으니 그렇게 알아요”라고 말하라.
미국 유타대학의 분노 스트레스 전문 심리학자 전겸구 교수는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리고 화를 다스리는 사람이 성공한다”라고 했다.
1 분노는 나의 선택이다 분노를 발생시키는 외부 자극을 파괴적인 방향으로 대응할 것이냐, 건설적인 방향으로 대응할 것이냐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이다. 물이 홍수를 내기도 하지만 수력발전의 힘이 될 수도 있다.
2 분노가 우리를 죽인다 암, 뇌졸중, 심장병, 당뇨병 등 현대인이 경험하는 질병의 90%가 스트레스, 분노와 관련돼 있다.
3 분노는 초기에 제압하라 일단 30초만 참아라. 눈을 감고 깊은 숨을 한 번 내쉬면서 화가 빠져나간다고 상상해보라. 습관이 되면 아주 쉬워진다.
전 교수의 말이 옳지만 남편이 등 뒤에서 그것도 못 찾느냐고 힐난하고 살림은 발로 하느냐고 떠들고 있는데 화를 참느라 깊은 숨을 내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남편을 타이르듯 “조금만 참아요. 버리지 않았으면 있겠죠. 또 없으면 어때요. 더 좋은 거 삽시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삶에 지친 여성들에게 ‘인생에는 면제가 없다’
“뭐든 꼬이기만 해요.”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없어요.”
“세상이 꽉 막혔어요.”
살다 보면 이런 소리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꽉 막혀서 도무지 앞이 안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지나가고 보면 그 막힘마저도 헛된 것이 아니었다. 내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막힘의 시간도 결국 이루어지는 그 시간 속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지나가고 나니 보인다. 막혔을 때는 그것만 보인다.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나도 그 막막한 현실에서는 꿈이 이루어지는 시간 속에 내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만 저주받고 나만 버림받고 나만 내던져지고 나만 불덩이 속에 있고 나만 비극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누가 나에게 천벌을 내렸느냐고 하늘에 대고 따지고 싶었다.
누군가 아니라고 곧 빛이 올 거라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그딴 소리 집어치워!” 하고 화를 냈다. 비틀어져 옳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화를 냈으므로 그렇게 저주받았다고 외쳤으므로 내게 오고 있는 ‘운’과 ‘행’을 바라볼 수 없었다.
어떤 현실에서도 이것만 지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참고 견디면 반드시 행운은 온다.
꿈이란 늘 시간이 걸린다. 그 꿈이 오는 시간을 어떤 자세로 기다리는가에 따라 현실의 괴로운 시간이 줄기도 하고 더 길어지기도 한다.
괴롭지만 할 일을 순조롭게 하면서 고통을 견디며 얼음 위를 걷고 있다면 반드시 꿈은 조금 더 일찍 올 것이다. 인생에는 면제가 없다.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오고야 만다.
지금 견디기가 너무 어렵다면 다리 건너기라고 생각하라. 그 다리를 건너야 행운을 만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