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 - 안도현
내 사는 마을 쪽에
쥐똥같은 불빛 멀리 가물거리거든
사랑이여
이 밤에도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마음인 줄 알아라
우리가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헤어져
남남으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듯
서로 다른 길이 되어 가더라도
어둠은 또 이불이 되어 우리를 덮고
슬픔도 가려주리라
그대 진정 나를 사랑하거든
사랑했었다는 그 말은 하지 말라
그대가 뜨락에 혼자 서 있더라도
등 뒤로 지는 잎들을 내게 보여주지는 말고
잠들지 못하는 밤 그대의 외딴집 창문이 덜컹댄다 해도
행여 내가 바람되어 두드리는 소리로 여기지 말라
모든 것을 내주고도
알 수 없는 그윽한 기쁨에
돌아앉아 몸을 떠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이제 이 세상을 나누어 껴안고
우리는 괴로워하리라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말라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대가 길이 되어 가거라
'아름다운글 > 안도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닷가 우체국 (0) | 2017.09.27 |
---|---|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0) | 2014.06.08 |
가을의 소원 ... 안도현 (0) | 2011.10.07 |
외롭고 높고 쓸쓸한 (0) | 2010.07.13 |
땅 (0) | 2010.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