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나무
오규원
가을이 되어
종일
맑은 하늘을 날다가
마을에 내려와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만나면
새도
잘 익은 열매처럼
가지에
달랑
매달려 본다
다리를 오그리고
배를 부풀리고
목을 가슴쪽으로 당겨
몸을 동그랗게 하고
매달려 본다
그러면
나뭇가지도
철렁철렁
새 열매를 달고
몇 번
몸을 흔들어 본다.
묵묵히 강을 따라가는 길에 서서 한 사내
끝을 지우는 길 하나를 보고 있다
끝을 숨기는 길 하나를 보고 있다
끝을 몸 안으로 말아 넣는 길 하나를 보고 있다
끝을 몸 안으로 말아 넣은 길 하나가
몸을 저녁 밑자락에 묻는 것을 보고 있다
-「강과 사내」전문(全文)
어제는 펑펑 흰 눈이 내려 눈부셨고
오늘은 여전히 하얗게 쌓여 있어 눈부시다
뜰에서는 박새 한 마리가
자기가 찍은 발자국의 깊이를
보고 있다
깊이를 보고 있는 박새가
깊이보다 먼저 눈부시다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 앞서 가던
박새 한 마리 눈 위에 붙어 있는
자기의 그림자를 뜯어내어 몸에 붙이고
불쑥 날아오른다 그리고
허공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지워버린다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허공은 눈부시다
-「발자국과 깊이」전문(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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