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오규원

조용한ㅁ 2014. 6. 24. 09:38

 

새와 나무

오규원

 

가을이 되어

종일

맑은 하늘을 날다가

마을에 내려와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만나면

 

새도

잘 익은 열매처럼

가지에

달랑

매달려 본다

 

다리를 오그리고

배를 부풀리고

목을 가슴쪽으로 당겨

몸을 동그랗게 하고

매달려 본다

 

그러면

나뭇가지도

철렁철렁

새 열매를 달고

몇 번

몸을 흔들어 본다.

묵묵히 강을 따라가는 길에 서서 사내

 

끝을 지우는 하나를 보고 있다

 

끝을 숨기는 하나를 보고 있다

 

끝을 안으로 말아 넣는 하나를 보고 있다

 

끝을 안으로 말아 넣은 하나가

 

몸을 저녁 밑자락에 묻는 것을 보고 있다

 

-강과 사내」전문(全文)

 

 

어제는 펑펑 눈이 내려 눈부셨고

오늘은 여전히 하얗게 쌓여 있어 눈부시다

뜰에서는 박새 마리가

자기가 찍은 발자국의 깊이를

보고 있다

깊이를 보고 있는 박새가

깊이보다 먼저 눈부시다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 앞서 가던

박새 마리 위에 붙어 있는

자기의 그림자를 뜯어내어 몸에 붙이고

불쑥 날아오른다 그리고

허공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지워버린다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허공은 눈부시다

-발자국과 깊이」전문(全文)

 

 

'아름다운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물 나호열  (0) 2014.07.01
[스크랩] 소곡(小曲)1~8 / 황동규  (0) 2014.06.28
새와 나무 / 오규원  (0) 2014.06.24
따뜻한 편지 . . . . . . . . . 곽재구  (0) 2014.06.24
아직도 / 나태주  (0) 2014.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