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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그림들/한국의화가 작품

전광영

 

250cm diameter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2006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2005 

 

350cm(diameter)

 

 

25 x 290 x 355cm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2009 

 

 

 

 

작가 전광영을 보면 어떤 열정이 느껴진다.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정열을 품지 않겠냐 마는 그에게서 풍겨나오는 그 열기는 독특한 색깔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색깔은 작가의 개인적 기질에서 연유하는 듯 하다. 작가도 희로애락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인지라 그가 쏟아내는 작업의 내밀한 곳에는 분명 오랜 시간 가슴에 묻어둔 그만의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순간순간 기억의 편린으로 자리잡아 그의 기나긴 작업의 여정 속에서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해 왔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은 90년대 이후 정리되기 시작한 한지 오브제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최근까지 계속 변화 발전하고 있고 그에게 작가적 성공과 명성을 안겨준 작업이기도 하다. 이 작업에서 보여주는 한지의 개성적 표현은 한국인 특유의 감수성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할 것이다. 화판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옛 서적으로 포장된 덩어리들을 보면서 처음 느꼈던 신선함이 새삼 떠오른다. 이 작업은 삼각형 모양의 스티로폴 덩어리를 한지로 싸서 일일이 꼬아서 만든 종이끈으로 묶어 화판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초기 작업은 미묘한 빛깔의 변조를 띠는 빛의 탐구라 할 만한 작업들이다. 이런 초기 작업으로부터 현재의 한지오브제 작업에 이르는 그의 작업의 변화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질 법도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일관된 맥락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바라보며 그 맥락을 추적해 보는 일, 이제 그런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본디 한국인에게 한지라는 것은 일상이었다. 지금은 각양각색의 빛깔 좋고 질 좋은 종이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50대 말에 이른 작가의 삶의 기억 속에서 한지란 더없이 친숙하고 다정한 매재였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훨씬 후배세대의 필자에게도 어린시절 시골집에서 보았던 나무격자 문에 발려진 한지창호, 닭울음 소리와 신선한 시골냄새와 함께 그 창호로 스며들던 아스라한 아침햇살, 한번 걸러지면서 원색적이지 않은 은은한 느낌으로 얼굴에 와 닫던 그 기분 좋은 느낌, 그런 햇살의 기억이 있음에야, 하물며 강원도 홍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에게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또한 그의 한지 오브제 작품은 ‘한방의 종이로 포장되어 천정에 빼곡이 매달린 약봉지’에 대한 연상을 넘어 옛사람들의 생계를 위한 지혜로까지 나아간다. 비단 한지뿐 만 아니라 시골집의 지붕아래 꼬인 새끼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메주라든가, 말린 산나물이라든가, 장날 구입한 생선이라든가 하는 모든 일상의 생필품들은 새끼에 묶어 지부에 매달아 두어 냉장고나 다른 기계장치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용할 양식을 보존하던 생활의 지혜들도 옛사람들에게는 일상으로 숨쉬고 있었다. 이렇게 한지와 그 은은한 빛과 주렁주렁 매달린 덩어리의 기억은 우리네 삶의 모습 바로 그 것이었던 것이다. 이런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의 기억 속 편린들이 작품 속으로 녹아들면서 작품이 된다.

전광영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빛’에 대한 탐구였다. 80년대의 작품들은 길다란 막대들의 연속으로 가득 찬 화면에 그 단위마다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색 띠의 울림으로 가득한데, 유년기 그가 홍천에 살던 시절 경험한 계절의 기억들, 즉 계절에 따라 변호하는 색감들을 더듬으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이것은 그의 마음의 필터를 통해서 본 고향의 서정시오 내면의식의 회고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초기 ‘빛’에의 탐구는 90년대 초 <코발트의 정>에 이르면 전체적으로 더욱 조밀한 폭과 깊이의 막대들이 은은하고 투명한 블루 톤으로 드러나는데 여기에서 표현되는 빛은 미묘한 톤의 변화를 통해 종교적인 빛의 분위기처럼 엄숙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지 오브제로 된 근작들에서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는 색을 만들어 내는 데도 탁월한 솜씨를 지닌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전광영의 이런 초기 빛 시리즈의 작품들에서 보이듯 서로 중첩되고 맞물리면서 미묘한 색채로 드러나는 색 띠들의 효과는 알타프리마(altaplima)기법이라고 하는 그만의 특수한 작업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아연화를 바르지 않은 순수한 천에다 마스킹 테이프나 작고 길쭉한 띠모양의 페이퍼들을 흩뿌린 위에다 날염안료나 화공약품을 혼합한 유성물감을 드리핑한 후 페이퍼들을 떼어 내는 방법을 일회이상 반복하고 중첩함으로써 빛의 영롱함을 자유자재로 변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색띠들이 어떻게 포개지고 연결되는냐에 따라 표정과 자태가 전체 화면 속에서 달라지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그의 평면유화작업도 일반적 회화작업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여느 화가의 그리기 작업과는 다르게 상당히 수공적이고 테크니컬한 공정과 치밀한 계산이 내재된 제작과정을 지닌다. 이 과정에서 발현되는 오묘한 색의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근대이후 낭만적 개념의 예술가 상으로 치장되면서 많이 잊혀졌지만, 본디 ‘예술art’은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네techne’에서 유래되었던 어원을 생각해 보면, 치밀한 기술적 공정을 통해 정신성을 드러내고 형이상학적 분위기를 만들어 낼 줄 알았던 그는 탁월한 예술가인 것 같다. 그리고 굳이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자면 그는 화가로서 기질보다는 무언가 기술적으로 만드는 공예가나 조각가 같은 기질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런 기질은 후기 작업에서 본격적으로 발현된다.

94년부터 이런 <빛>시리즈의 작품들에 이어 한지 오브제작품인 <집합>시리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전광영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이제부터 평면에 실제 오브제들이 부착됨으로써 부조적 공간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조적 공간은 그의 초기 유화작품에서 이미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는데, 빛시리즈 작품에서 보여준 길쭉한 색 띠들을 중첩해서 작업함으로써 빛과 공간의 표현을 의식한 작업들이 바로 그것이다. 평면작품에서 보여진 길쭉한 색띠들과 공간적 중첩은 실제 삼각형 오브제의 모서리 부분의 중첩과 실제 공간의 창출로 그대로 옮겨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의 회화작품도 상당히 조각적이고 구축적인 작업이었고 작가 속에 내재한 그런 구축적 성향이 자연스럽게 한지 오브제 작업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했던 것 같다..


집합시리즈들은 삼각형으로 자른 스티로폼 덩어리들을 한지로 싸서 화판에 매다는 방식인데, 초기 <집합>시리즈의 작업들은 옛 서적, 신문지, 부적, 청색, 노란색으로 물들인 한지 등 종이의 질과 색감의 변화를 시험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똑 같은 한지라 하더라도 거기에 쓰여진 글씨의 밀도, 명암, 오래된 정도에 따라 종이의 색상은 미묘한 변주가 가능하다. 그리고 약간은 의도적 실험으로 느껴지는 염색에 의한 색상변화는 그가 <빛> 시리즈에서 마음껏 발휘한 색채에의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런 색채실험은 후기로 갈수록 정련되고 미니멀한 천연의 종이색으로 정착된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매재는 고서적들인데 그의 작품에서 요구되는 방대한 양의 종이를 고서적이라는 명백히 희소가치를 지닌 종이만으로 채울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라. 그가 고안한 방법은 고유의 한지에 고서적을 인쇄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리하여 근자의 작품들에서는 은은한 한지색에 고서적의 글씨가 인쇄된 그런 종이로 삼각형의 스티로폼 덩어리를 꼼꼼하게 포장하여 빼곡히 화판에 붙여 작품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이 방법은 여러 가지 변주가 가능하여 어떤 것은 옆으로 뉘여서 붙이고 어떤 것은 모로 세워서 붙임으로써 같은 덩어리로도 평평한 면과 오돌토돌한 돌기가 있는 면이 두드러져 그의 작품이 가진 부조적 평면 위에서도 독특한 마티에르가 나타나 전체 화면 구성 내에서도 입체와 평면의 조화롭고 재미있는 리듬감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표면의 효과는 무척 다양하여 어떤 작품에서는 단순한 격자선이나 원형의 선만 나타나는 대단히 미니멀한 평면작품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죽비죽한 모를 화면 전면에 부각시켜 외부의 조명과 함께 그림자의 효과가 함께 강조됨으로써 새로운 공간이 창조되기도 한다. 이들이 자유자재로 뒤섞여 파도를 타듯 유연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 이제 그의 한지 오브제 작품들은 최고조조 정련된 상태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러한 그의 한지오브제 작업은 한국성 뿐만 아니라 세계성도 담보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이미 외국에서도 상당히 주목을 받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이 한지라는 매재를 통하여 독특한 동양적 정서와 서양의 현대적 조형논리를 함께 소화해내면서 한지 오브제를 통한 미니멀리즘이라는 그만의 창조적 형상화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작품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반영하든 표현하든 간에 그 나름의 방법으로 세계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소통언어라고 할 때, 지역적 한계를 넘어선 세계성의 담보라는 것은 가장 고유한 자기만의 것을 모든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표상방식을 획득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광영의 한지오브제 작품은 가장 동양적인 정서를 세계적으로 통용되면서 동시에 독특한 조형언어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모범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광영이라는 작가가 오랜 시간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홀로 무명의 작가생활을 하며서 체험한 수많은 외로움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그 속에서 들끓었던 작가적 욕망의 흔적들이 이제 그만의 독특한 조형적 소통방식으로 표출된 것이라 생각된다. 미국에서 배운 서양의 회화논리들과 다양한 시도들, 그 속에 담겨진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빛깔들, 그리움이 크면 사소한 티끌하나도 새록 새록 가슴속에서 더욱 커지는 법이 아니던가. 오랜 외국 생활과 그의 천성적 기질 탓에 은연중에 학맥과 인맥으로 엮어지는 고국의 화단과 절연된 채 오랜 외로움과 그리움의 시간을 보낸 그에게 돌아온 작가적 성취는 단연 그가 감내하고 품어 내었던 인내와 노력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의 대가인 것이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전을 계기로 그는 또 한번의 자기 변화를 시도한다. 이번 전시에 주조는 다양한 변주로 탄생되는 한지 오브제 작품들이다. 이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는 빛시리즈의 초기 평면회화 작품들도 몇 점 선보이게 될 것이며 그가 여러 가지 사정상 시도해 보지 못했던 대작이나 거대한 입체 설치작업도 시도된다. 이 전시를 위해 그가 들이는 의지와 열망과 노력을 주변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 전광영의 40년 화업의 정리작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도 청년처럼 불타오르는 작가 전광영의 예술적 열정을 체감하고 그 열정에 감염될 수 있는 그런 장이 되리라 확신하고 기대한다.


김연희/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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