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글/시화

머슴새/이형권

 

머슴새  -  이형권


늙은 머슴이 만대산에 묻히고
이 새가 울었다 한다

스무날 달 그늘에도 하얗게
하얗게 새벽빛이 되도록
앞 다랑치 뒷 다랑치 소몰이 하던
소 처럼 눈이 컸던 머슴.

늦바람이 정자나무에 머리채를 푸는 밤
만대산에 올라 대퉁소를 불고
밤이슬이 닳도록 산속을 헤매며
노랫가락을 뽑던 종가댁 상머슴.

뱀물린 장단지에 쑥뜸을 하여주던
제재소 뒤뜰에서 쇠좆매를 맞고 죽은
나를 도련님이라 부르던 머슴.

그 뒤로 쯧쯧쯧 이 새가 울었다고 한다.
초저녁서 신새벽 그 긴 한밤을
쯧쯧쯧 쯧쯧쯧 뒷골 마을 텃논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속속이 우는새.

골샘물도 마르는 가뭄이 닥쳐오면
천서방이라 부르던 머슴이야기를 했다.
당골네 제 애미 아들생각에
총총히 솔잎 모아 먼 갯물 적셔
사시장철 더운 날에 비 뿌려 주신다던
천서방의 진혼곡을 되뇌이곤 했다
비가 올 것이라고
하지 해가 질꼿으니 비가 올 것이라고
비가 올 것이라고 모를 내야 한다고
가뭄을 못 이긴 사람들은 밤봇짐을 싸는데
하늘지기 천수답 산다랑치 논에도
모를 내야 한다고 면서기가 연설하는 밤에도
쯧쯧쯧 쯧쯧쯧 물갈이 마른갈이 휘몰아쳐
빈들의 어둠을 갈아 엎으는
천서방의 쟁기 모는 소리만 들었다
달빛 젖은 만대산이 조금씩 움직이는 밤
대퉁소를 불어주던 천서방 생각에
주인 잃은 조선낫을 숫돌에 뉘여
시퍼러이 시퍼러이 날을 세웠다.  

 




봄이 오는 소리展 작품소개 / 머슴새, 김명조 作 / 물질이 전해주는 설화의 세계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모두 강진을 대상으로 한 시를 현대미술의 형식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인데,
그 재료나 표현방식, 시를 해석하는 것 등에 이르기까지 작가들마다 다양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세 번째로 김명조의 머슴새(흙/석고/시멘트 혼합, 120cm×가로/가변크기)를 소개한다.

[머슴새]는 올해 나이 쉬운 셋의 해남 마산면 외호리가 고향인 이형권이 80년 광주 5.18이 ‘진압’된 바로 뒤,
도시를 감싸던 암울함과 침묵의 시기에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 쓴 시다.
내용은 하지 무렵 밤, 뒷산(만대산)에서 새가 우는데, 그 소리를 듣고 시인은
'밤이슬이 닿도록 산속을 헤매며 노랫가락을 뽑던', '뱀 물린 장단지에 쑥뜸을 하여주던',
'제재소 뒤뜰에서 쇠좃매를 맞고 죽은', '나를 도련님이라 부르던' 그를 생각한다.
시는 시종일관 독자의 숨을 몰아 설화의 세계로 끌고 간다.

김명조는 이 언어적 방식을 물질적 형식으로 다시 읽어냈다.
그가 사용한 재료는 흙과 석고, 시멘트 혼합물이다.
셋의 비율에 따라 각각의 느낌은 다른데. 이 셋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질감은
눕거나 비스듬히 세워진 세 머슴의 형상으로 승화돼,
보는 이들을 현실과 꿈의 세계를 섞은 아득한 설화의 세계로 끌고 간다.
형상들은 마치 운주사의 석불이나 와불을 보는 듯 한데,
그 작고, 아담하고, 못생기고, 뭉툭하고, 얼그러진 얼글, 뭉게진 팔, 낮은 키의 그들은
소담함의 극점으로 보는 이를 데려간다.
후미진 어느 낮은 야산 자락에나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이들 셋 중 제일 큰 하나는 누워 있다.
땅속일까? 그 영혼은 엇비스듬한 또 하나의 형상으로 흘러가고,
역삼각형의 또 다른 한쪽에 문득 비슷한 친구가 서 있다. 

시와 미술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언어라는 비물질과 물질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물질이 아닌 것은 형태가 없는 어떤 것, 즉 관념이나 상상, 이상, 꿈, 사랑과 미움 같은 것들이다.
물질은 우리의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들이다.
형태가 없기 때문에 시적 표현과 물성으로서의 형상적 표현방식은 대체로 일치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런데, 김명조의 이 작업은 시를 곁에 두고 읽지 않아도 관객이 시와 유사한 느낌을 갖게 할 정도로
형상화의 방식에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설화는 한 사회집단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근간이다.
좀 복잡하지만, 이즈음의 돈이라는 것, 세계화, 문화, 민족이나, 통일 같은 용어들은
모두 이 설화라는 것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너와 나라는 각각의 개체를 이어주는 그 어떤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5.18이 끝난 뒤 고3이던 이형권이 이런 시를 썼고, 그것이 출판되진 못했지만,
마치 구전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잠겨 있었다면, 그것은 그 어떤 공감할 만한 요소가 강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것을 형상언어로 해석해냈다.
그런 과정을 다시 글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혹시 시간이 나서 전시장에 들르거든 형체들 곁을 서성이며 자세히 들여다보고,
곰곰 생각해보기를 당부 드린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절을 살았던 우리 동네 머슴들과, 머슴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 부모형제, 일가친척들을 생각하면서.

글 윤정현, 강진아트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