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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송(梅花頌) - 조지훈

조용한ㅁ 2015. 3. 27. 02:30

 

 

 

 

 

조지훈의 시 ‘매화송(梅花頌)’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원
  매화꽃 다 진 밤에 / 호젓이 달이 밝다. // 구부러진 가지 하나 / 영창에 비취나니 // 아리따운 사람을 / 멀리 보내고 // 빈 방에 내 홀로 / 눈을 감아라. // 비단옷 감기듯이 / 사늘한 바람결에 // 떠도는 맑은 향기 / 암암한 옛 양자라 // 아리따운 사람이 / 다시 오는 듯 // 보내고 그리는 정도 / 싫지 않다 하더라. 
(‘梅花頌’)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다. 그의 고향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 가면 생가 ‘호은종택(壺隱宗宅)이 남아 있다. ’호은(壺隱)‘은 주실 조씨들의 시조이자 1629년(인조 7년) 주실에 처음 들어와 이 동네를 일군 사람의 호로서 이 ’호은종택‘에는 370여 년 동안 내려온 가훈이 있다고 한다. 바로 ‘삼불차(三不借)’라는 것이다. 즉 세 가지를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첫째는 ‘재불차(財不借)’로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서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불차(人不借)’로 사람을 빌리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문불차(文不借)’인데,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삼불차’는 호은 할아버지 대부터 현재까지 계속 지켜 왔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매화에 대한 시조에서는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지훈의 시 ‘매화송’에서는 매화가 ‘아리따운 사람’으로 표현되면서 사랑의 욕망과 절제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주는 눈 속에 피는 꽃으로 유명하다. 사군자의 으뜸인 매화의 그림을 보면 작고 하얀 (혹은 붉은) 매화꽃과 달리 매화 등걸은 두껍고 묵직한 껍질로 싸여진 나무의 형상으로 굽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진홍이에게 그려 준 매화 그림을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두꺼운 매화 가지와 조그맣고 하얀 매화꽃의 불균형은 매화가 회춘(回春)을 상징한다는 말에서 약간 이해가 된다. 즉 겨울의 매화는 죽은 용의 형상인데, 여기에서 꽃이 피어남은 늙은 몸에서 정력이 되살아나는 회춘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매화를 집 안에서 가꾸는 것만으로도 춘정(春情)을 북돋운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는 춘정과 양기를 북돋우는 매화꽃이 다 진 달밤에 시작한다. 매화꽃이 핀 때로 시를 시작하지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도 잠깐 들지만, 시 속에서 말하는 이가 달빛에 홀로 빈방에 앉아 있자니 영창에 비치는 매화 가지가 꽃을 잃고 홀로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비쳐 보인다. 시 속에서 말하는 이도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방에 호젓이 남아 있던 차이다. 영창을 사이에 두고 마당의 매화 나무와 방안의 말하는 이는 같은 공간에서 이미지를 통해 같은 처지를 나누고 있다. 
  눈을 감자 ‘사늘한’ 바람이 불면서 매화 가지와 말하는 이를 동시에 스친다. 이미 떠난 아리따운 사람이 말하는 이의 몸에 감기듯 사늘한 바람이 스친다. 촉감적 표현이다. 사늘한 바람결은 비단옷에 감긴 여인의 살갗이 닿듯 스치는 짜릿한 상상을 하게 한다. 바람이 매화 가지에 스치자 매화 향기가 떠돈다. 그것은 말하는 이에게 눈 앞에 아른거리는 여인의 향기로 느껴진다. ‘암암한(기억에 남은 것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옛 양자(樣子: 얼굴의 생긴 모양, 樣姿: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나 모습)’란 표현에서 촉각과 후각을 통해서 떠나간 사람을 가깝게 느끼게 된다. 눈을 감고 기억 속의 아리따운 사람을 촉각과 후각으로 느끼며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황홀감에 잠긴다. 
  그러나 말하는 이는 이미지를 통해 만나는 환상의 한계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보내고 그리는 정도/ 싫지 않다 하더라’라는 황진이류의 시조 종장과 유사한 구절이 나타난다.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에서는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였지만 조지훈의 시에서는 ‘보내고 그리는 정도 싫지 않다 하더라’ 로서 앞부분은 같은데, 뒷부분이 약간 다르다. 황진이의 시조에서는 스스로의 결단으로 아리따운 사람을 떠나보낸 뒤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정이 흘러넘치는 반면 조지훈의 시에서는 중심을 잡고 절제하는 선비의 기품이 느껴진다. 어떤 쪽이 솔직한 자기 표현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조지훈은 ‘매화송’을 통해서 매화가 다음 해 봄에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듯이 아리따운 이에 대한 자기 절제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인과의 관계를 한 순간의 열정에 충실하느냐, 아니면 내년 봄을 기약하듯이 절제하고 감정을 추스르느냐 하는 욕망에 대한 충실성과 절제에 대한 고민과 선택을 보여주면서 ‘절제의 미학’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사랑에 대한 절제의 미학은 사군자 중의 으뜸인 매화에 대한 심미감에서 그리고 동양적이고도 한국적인 미적 거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