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저도 촌놈이면서

조용한ㅁ 2015. 6. 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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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촌놈이면서

                                 -최 재 경(낭송:서상철)

     

     

    즈이 집구석 일 할 때는

    식전 해 뜨자마자 설치고 위세를 떨던 놈이

    내 논에 모 심어 준다고 일찍 나오라고 해서

    서둘러 아침 대충 거르고 나갔더니

    새참 때가 되어서 택시를 타고 끄적거리고 와서는 하는 말이,

    참 내

    어제 먹은 술이 과하여 속이 쓰리고 허니,

    션한 맥주 한잔 마시고 심어야 겄다는 거여

    50씨시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로 냅다 달려가서

    션한 느홉들이 OB맥주 두 어병에

    안주까지 사 들고 왔더니,

    논두렁 그늘에서 이 놈이 잠이 들어버린거여

    간신히 깨우고 달래서 속풀이 시켜놨더니,

    밍기적 이앙기 시동을 걸더라고

    그라더니 말여,

    시발유가 떨어졌다는 둥,

    지놈이 먹는 맥주는 CROWN이라는 둥

    오늘은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하루 쉬고,

    천상 냘 심어준다고 하며 보똘에 손을 씻고는

    마침 내려오는 택시를 타고 후다닥 내빼버리는거여

     

    그놈 맥이려고 집사람이 들깨 갈아 데직하게 삶아 온 머위나물에

    미지근한 소주를 병째로 마셨어 

    두 병을 마셔버렸어,

    구부러진 논두렁이 말라 비틀어진 지렁이 같았어

    한나절이 가고 있었어,

    누워서 하늘을 보니 새털구름도 있고 비구름도 지나갔어

    보리는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데,

    내일 심어도 괜찮다고 뻐꾸기가 오늘은 쑥국쑥국 울었어

    들판에는 말여 지천으로 개망초가 피어나고 있었어.

      

     

       
      밭에서 일을 하다가 뻐꾸기소리가 나면
      아내는 저절로 호미를 놓는다
      또 도질병 났구나 생각하며
      “저 소리가 뭐가 좋아” 하고 물으면
      “그냥 쓸쓸해서 좋아” 그런다
      나는
      “새벽에 우는 휘파람새 소리가 참 좋아” 그러면
      “그 소리는 너무 외로워서 싫어” 그런다
      “그럼, 비는 어떤 비가 좋아” 물으니 대답을 안한다
      “눈은?”
      호미질을 하다가 나를 쳐다보고 그런다
      “우리 참 나이 어지간히 먹었지?” 그랬다
      수리봉에서 뻐꾸기가
      뻐꾹 뻐꾹 한나절을 울다가 갔다

      -‘뻐꾸기소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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