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우스 - 신상옥과 형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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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루가 24, 13-35)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 원선오 신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성가 한 구절을 유행가 부르듯 흥얼거리게 만든 주인공은 누굴까. 성가집에서 우리는 '원선오'라는 이름을 종종 대하게 된다. 이떤 이는 우리나라에 이런 작곡가가 있구나 하는 흐뭇함에 젖기도 한다는데, 바로 그 주인공은 국적을 말하기 힘든 원선오(68. 빈첸시오 도나티) 신부다.
원 신부는 1928년 이탈리아 중부 해변 도시 파노에서 태어났다. 워낙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소년기에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외삼촌이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였던 관계로 토리노 발도꼬의 오라또리오에 오게 되면서부터 살레시오와 직접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다. 15살이 되던 해에 첫서원을 하고 몇 년간 사목실습을 한 다음 1950년에 일본 선교사로 파견된다. '54년 일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활동하다 8년 후인 1962년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20년 생활 중 대림동에서 산 1년을 제외하고 나머지 19년 동안 광주 살레시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냈다. 그후 1982년 당시 총장 신부였던 돈 비가노의 아프리카 프로젝트에 대한 호소를 듣고 홀연히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다. 그 때 원 신부의 나이 55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을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염려와는 달리 정작 자신은 별걱정을 하지 않고 일단 가고 보 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그 곳에도 엄청나게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 을 보고 즉시 만족할 수 있었다. 케냐에서 2년, 그리고 다시 수단으로 … . 원 신부는 '편하게 머무르고 싶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생각까지도 배제한 채 주님이 이끄시는대로 보다 험준한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원 신부가 처음 일본으로 와서 그 곳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한국으로 올 때, 그 당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막 전쟁을 치룬 혼란한 상황이었고, 아프리카에서도 역시 비교적 평온한 케냐에 안주하지 않고 전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휘말려 있는 수단으로 간 것이다. "돈보스꼬의 생각, 돈보스꼬의 정신만이 저를 지탱하여 주는 지주입니다. 어느 나라든 어떤 상 황이든 돈보스꼬와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가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 그빛을 더 발한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그가 존재했다. 바로 살레시오의 생명인 청소년 가운데의 현존, 즉 아씨스텐자를 철저히 실천했던 것이다.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는 성무감실에 머물지 않고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놀거나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청소 시간에도 아이들과 함께 청소하면서 생활 속의 작은 일들이 얼마나중요한 의 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심어주었다. 이것은 학생과 같이 호흡하며 생활하는 돈보스꼬의 교육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누구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하기 위해서 꼭 무슨 말을 하거나 무엇 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이를 이해하기 위한, 다른 이를 사랑하기 위한 매우 간단한 방법은 그들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원 신부는 '주님이 우리 가운데 내려와 함께 생활하셨듯이 선생님도 아이들 가운데서 함께 생활해야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이는 자신의 옛 선생님들이 자기에게 교육했던 것을 그냥 따라하는 것일 뿐이라고 겸양되이 말한다.
원 신부는 그의 교육비법인 친절함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는데 인간인 이상 때때로 인내심을 잃어버렸던 적도 있다. 그 때 원신부는 자신의 허약한 모습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만일 다른 사람 앞에서 인내심을 잃었다면 그 즉시 사과하고 용서를 청했다. 이런 모습을 다른 이들은 겸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최고의 수단이라는게 원 신부의 생각이다. 인간 가운데서 인간이 되는 것을 원하는 그의 모습이 아마도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 지 않았나 싶다. 원 신부가 한국에 처음 와서 눈을 뜬 새벽, 제일 먼저 들은 소리는 교회 종소리였다고 한다. 이것은 원신부에게 있어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8년간 일본에 있으면서 한 번도 접할 수 없었던 반가운 것으로 마치 이탈리아 그의 고향 마을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원 신부는 믿는 이들의 땅으로 자신을 이끈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활기찬 첫 햇살을 맞아들였다. 이런 한국인의 믿음의 심성을 더욱 불태우기 위해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살려 성가곡을 작곡 한다. 당시의 성가들은 모두 어른들의 기준에서 만들어진 것들 뿐이었기에, 젊은이들의 영성을 깨울 수 있는 곳을 학생들의 기호에 맞게 만들고 여기에 성서 구절의 가사를 넣으므로 젊은이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기존의 성가들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기 좋은(?) 박자인데 반해 원 신부의 '우리와 함께 주여', '사랑이 없으면', '엠마우스' 등의 노래는 학생들이 즐겁게 부르면서 성서 내용을 음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원 신부의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학생들은 노래를 불렀고 그 가사 내용이 자연스레 학생들의 심성으로 녹아들었던 것이다. 노래 '임 쓰신 가시관'으로 잘 알려진 신상옥씨는
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따분해 하는 종교시간을 음악적 영성으로 채우고, 한국인이 아니면서 누구보다도 한국을 이해한 사람이다. 원 신부의 노래는 부르는 흥겨움 뒤에 그 목적이 야무지게 드러난다. 그것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그것은 결국 원 신부의 학생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원 신부의 음악적 영성을 통한 종교 시간은 아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과 관심이 함축적으로 어우러지는 사랑의 송가이다. 원 신부는 생활 자체로도 학생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줬는데, 그건 바로 청빈의 삶이다. 한번은 광주 수도원 원 신부 방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도둑은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방 구석 구석을 뒤져봤지만 훔칠 만한 값비싼 물건이 없자 방주인만 원망하며 나가다 붙잡혔다고 한다. 원 신부의 가난한 삶이 빚은 불쌍한(?) 도둑 이야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계란 꾸러미나 속 내의 같은 선물이 들어오면 원 신부는 수도원 옆 판자집을 찾아가 모두 나눠줬다. 또 지금은 다이어트한다고 안먹는 청소년들이 있는데 원 신부가 가르칠 당시엔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 때는 학생들의 여린 가슴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학생들을 조용히 식당으로 데 려가 함께 식사를 하였다.
이것은 원 신부의 청빈에 대한 지론이다. 지금은 사랑에 목말라하는 수단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있는 원 신부는 살레시오회가 운영하 는 '성요한 기술학교'에서 청소년들의 자립의 길을 도와주고 있다.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 (Khartoum) 인근에 몰려있는 약 2백만 명의 난민들은 보통 이틀에 한 번 옥수수나 단감자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성 요한 기술학교의 난민촌 학생들에게도 학교에서 주는 점심 한 그릇이 유일한 하루 식사다. 끊임없이 도움을 줘야 설 수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원 신부는 느낀 점이 많다.
지난 10월 4일 다시 아프리카로 향하는 원 신부의 바람은 많은 동문들이 진정한 살레시안으로 살면서 살레시오 일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졸업생들은 살레시오의 귀중한 일꾼들이고, 세상 곳 곳에서 지속적으로 돈보스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밀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평신도인 살레시오 가족을 기르는 데는 학교만큼 유리한 것이 없다. 살레시오 복음전파는 교육과 함께 수행하는 것인데 한국에는 살레시오 남녀 중고등학교가 단 하나씩밖에 없어 아쉬움이 많다. 케냐의 경우 순전히 졸업생들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살레시오 학교가 4군데나 있다면서 원 신부는 아프리카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한국에서도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살레시오 학교를 세우고 운영할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나쁜 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한 물음에
며 고개를 흔든다. 이런 원 신부의 삶은 하느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삶과 같이, 하느님이란 목표를 향하면서 주님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나의 도구가 되어 가는 데도 어디론가 다시 떠나야 된다면 기꺼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는 쉼없는 열정을 뿜어낸다. 아프리카에서 남은 여생 가득히 돈보스꼬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갈 원 신부의 훈훈함이 한국의 가을을 물들인다. 글 / 김미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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