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마종기

길 / 마종기

조용한ㅁ 2016. 7. 8. 11:09

                



Jean Crotti (1878-1958) - WOMAN WITH BOAT


        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거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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