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그 여름의 끝

조용한ㅁ 2016. 8. 29. 23:43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1990>



'아름다운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지내고 있어요 - 목필균   (0) 2016.09.05
눈물 /김현승  (0) 2016.08.30
[스크랩] 시를 읽는다 - 박완서  (0) 2016.08.27
여름에는 저녁을 - 오규원   (0) 2016.07.27
나를 지우고 .../오세영   (0) 201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