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천도 복숭아
님자 상이, 우리 구상이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
향우 이중섭이 이승을 달랑달랑 다할 무렵이었다.
나는 그래도 검은 장미빛 피를 몇 양푼이나 토하고 시신처럼 가만히 누워 지내야만 했다.
하루는 그가 불쑥 나타나서 애들 도화지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애호박만큼 큰 복숭아 한 개가 그려져 있고 그 한가운데 싸 대신 조그만 머슴애가 기차를 향해 만세!를 부르는 그런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받으며
<이건 또 자네의 바보짓인가? 도깨비 놀음인가>
하고 픽 웃었더니 그도 따라서 씩 웃으며
<복숭아, 천도 복숭아
님자 상이, 우리 구상이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
흥얼거리더니 휙 돌쳐서 나갔다.
구상 시선,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고려원, 1986년 재판. 97쪽. '비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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