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함께 읽는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Orphe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등장인물 가운데 최고의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오르페우스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 앞서 고대 세계에서 이미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았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선물 받은 현악기의 일종인 리라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는데, 그가 리라를 타며 노래를 부르면 신과 인간은 물론 만물이 감동했다. 동물들과 초목들, 심지어 무생물인 돌멩이까지 자신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매료되었던 것이다. 오르페우스의 이러한 천부적인 재능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오르페우스의 어머니는 아홉 명의 무사이 여신 중 한 명인 칼리오페이다.
여기서 잠깐 무사이 여신들에 대해 알아보자. 티탄(거인) 신족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올림포스가 안정을 찾자 제우스는 신들의 나라와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후대에 노래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를 찾아가 아흐레 밤을 동침한다. 그로부터 열 달이 지나 므네모시네는 아홉 자매를 낳았는데, 이들이 바로 기억을 통해서 신들의 나라와 인간 세상의 온갖 문예와 학문 분야를 담당하게 되는 무사이(Mousai, 단수는 Mousa) 여신들이다. 이 여신들을 영어로는 뮤즈(Muse)라 하고, 뮤직과 뮤지엄도 여기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무사이 여신들은 음악뿐 아니라 각자 시, 무용, 역사, 수학, 천문학, 비극과 희극 등을 맡아보았는데, 말하자면 음악과 문학, 과학과 인문학의 원조라 하겠다. 무사이 아홉 자매 중 칼리오페는 가장 격이 높았고 현악기와 서사시를 관장했다.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아폴론과 칼리오페 사이에서 오르페우스가 태어났다고 했는데, 이는 ‘음악의 신’ 아폴론과 ‘음악의 아버지’ 오르페우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근대에 지어낸 이야기이다. 오르페우스는 전 그리스에서 음악성이 가장 뛰어난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와 칼리오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라는 점에 고대의 모든 전승이 일치한다.
시몬 부에, <무사이 여신 우라니아와 칼리오페>, 1634년경, 캔버스에 유채, 79.8x125cm, 워싱턴 국립미술관. 왼쪽 파란 옷의 우라니아는 천문을 맡은 터라 별을 장식한 관을 쓰고 지구의에 기대어 앉아 있고, 오르페우스의 어머니인 가운데 붉은 옷의 칼리오페는 서사시를 맡은 터라 책을 잡고 있다.
바위마저 감동시킨 최고의 연주자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의 산과 들을 노닐며 달콤한 노래를 부를 때면 세상 만물이 넋을 잃고 들었다. 야수들조차 흉포함을 갈무리하고 그에게 다가왔고, 초목들은 아름다운 선율을 더 잘 듣고자 줄기와 가지를 기울였다. 강은 자신보다 더 운율이 넘치는 그의 음악을 듣고자 흐르는 것을 멈추었고, 그가 리라로 건드린 바위는 자신만의 단단한 성질을 버렸다.
17세기경 북유럽 지역의 화가들은, 오르페우스가 동물과 나무와 바위에 둘러싸여 리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주요 소재로 삼았는데, 플랑드르 바로크 화가 세바스티안 브랑스가 그린 <오르페우스와 동물들>을 보자. 손으로 뜯는 리라가 아니라 활로 켜는 바이올린 모양의 악기를 연주하는 오르페우스 주위에 온갖 동물들이 모여 있다. 맹수인 사자와 표범은 포효를 멈추고 천상의 음악에 취해 있다. 맹금인 독수리는 날기를 그만두고 얌전히 땅 위에 발을 딛고 음악을 경청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브랑스, <오르페우스와 동물들>,1595년경, 패널에 유채, 55x69cm, 보르게세 미술관, 로마
이 그림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화면 왼쪽에 보이는 이마 한가운데에 뿔이 달린 말 비슷한 짐승이다. 상상 속의 동물 유니콘이다. 일각수(一角獸)라고도 불리는 유니콘은 실상 그리스 신화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지고지순한 상서로운 동물로 고대 그리스부터 민담으로 전해지다가 중세에 들어와 유니콘을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서 생각하게 되었다. 처녀에게 순종하는 유니콘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사람으로 태어난 예수를 가리킨다. 그런데 오르페우스가 등장하는 그림에 엉뚱하게도 유니콘을 그려 넣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독교적 상징을 떠나 그만큼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만물을 순종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화가의 의도가 아닐까.
세이렌(Seiren)들은 여자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님프이다. 세이렌들의 노래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력적이어서 그녀들이 사는 바위섬을 지나는 선원들은 난파되어 목숨을 잃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마는데, 그런 그녀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딱 두 번 실패한 적이 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국하던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고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낸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고 많은 미술 작품으로도 그려졌다.
귀스타브 모로, <세이렌>, 1872년, 캔버스에 유채,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오르페우스 또한 세이렌들의 유혹을 벗어난, 아니 그들을 굴복시킨 일이 있다. 그는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나는 이아손의 아르고 호 원정대(아르고나우타이)에 합류했다. 힘이 약해 노를 젓지는 않았지만 노잡이들을 위해 박자를 맞추어 주는 정조수 역할을 맡았다. 폭풍이 일 때는 그의 노래로 파도를 가라앉혔다. 이윽고 세이렌들이 사는 바위섬을 지날 때 달콤한 유혹의 노래가 들려왔다. 오르페우스가 벌떡 일어나 세이렌들의 노래보다 더 감미로운 노래로 맞대응하자 이에 굴복을 당한 세이렌들은 모욕감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바위가 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세이렌>, 1889년, 캔버스에 유채, 첸트랄슈파르카세 소장. 기원전 6세기경에 제작된 도기에 그려진 세이렌은 여자의 얼굴에 새의 몸통을 가진 반인반조(半人半鳥)였다. 그러다 중세 이후부터 여인과 새의 복합체에서 벗어나 인어의 모습으로 나타나다가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유혹과 파멸의 여인 ‘팜 파탈(femme fatale)’로 진화하게 된다.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 신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로마에서 만들어졌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절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가 그의 <농경시>에서 읊고, 오비디우스가 그의 <변신 이야기>에 담은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삶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음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었다. 숲의 님프 에우리디케(Eurydice)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무엇을 갈구하는지 알았고 사랑의 기쁨을 느꼈다. 오르페우스는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히멘’이라고도 한다)에게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복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손에 횃불을 든 모습으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결혼식장에 참석한 히메나이오스는 그러나 신랑과 신부가 잘살 것이라는 징조는 하나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말은 상서롭지도 않았고 불길하기까지 했다. 그가 든 횃불에서는 미래를 축복하는 환한 불꽃은커녕 검은 연기만 나는 바람에 신랑과 신부는 물론 하객들도 눈물을 흘려야 했다.
결혼식장에서 나타났던 이 불길한 징조는 혼인식을 올린 지 열흘도 못 되어 사실로 나타났다. 어느 날, 에우리디케는 다른 님프들과 함께 올림포스 산기슭의 템페 계곡으로 꽃을 꺾으러 갔다. 마침 그곳에서는 양치기 아리스타이오스가 꿀벌을 치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에우리디케를 본 이 젊은이는 그녀가 새색시인 줄 모르고 말을 붙이려 했다. 에우리디케는 느닷없는 낯선 사내의 등장에 몹시 놀라 달아나다가 그만 풀숲에 있던 뱀을 밟고 말았다. 화가 난 뱀은 에우리디케의 발뒤꿈치를 물었다. 그 즉시 에우리디케는 죽은 자만이 가는 지하세계로 떠나고 말았다. 신혼의 단꿈을 꾸던 한 쌍의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니콜라 푸생,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있는 풍경>, 1648년, 120x200cm, 루브르 박물관.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기 전, 신혼부부가 짧은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의 풍경으로 생각된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듣는 에우리디케의 표정이 평화롭다. 그런데 화면 왼쪽의 님프는 놀란 표정으로 어두운 숲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인물들의 색조는 밝은 데 비해 원경의 성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하늘의 구름 등 배경은 어두워 어딘지 불길한 느낌이 든다.
티치아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508년경, 39x53cm, 카라라 학술원, 베르가모. 뱀이 에우리디케의 발뒤꿈치를 무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뒤에서 현장으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남성이 오르페우스인지 아리스타이오스인지 불분명하다.
졸지에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신과 인간은 물론이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게 노래로 자신의 슬픔을 호소했다. 오르페우스가 어찌나 애절하게 노래했던지 들짐승들은 풀을 뜯으려 하지 않았고 풀과 나무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건 분명히 인간들이 불멸의 행복을 누리는 것을 질투하는 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친구들이 오르페우스의 슬픔을 달랬지만 헛일이었다. 영혼의 반쪽을 잃은 그가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아리 셰퍼, <에우리디케의 죽음>, 1814년, 캔버스에 유채, 340x452cm, 블루아 성 미술관
견딜 수 없는 슬픔에 괴로워하던 오르페우스는 이제껏 어떤 인간도 해보지 못한 일을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지하세계로 내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엘레우시스(Eleusis) 땅으로 갔다. 그곳에는 그 옛날 헤라클레스가 하계(下界)로 내려갈 때 지나간 동굴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캄캄한 동굴에서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는 통로를 찾아내고 점점 깊이 내려갔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어둠의 땅 에레보스(Erebos)가 있는데 이곳에는 다섯 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
첫 번째 강에 다다른 오르페우스가 배에 타려 하자 늙은 뱃사공 카론(Charon)이 그가 산 자임을 알아보고는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노를 들어 밀어내려고 했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뜯으며 노래를 부르자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은 저승에 가로누운 제 신세를 한탄했고, ‘통곡의 강’ 코키토스(Cocytos)는 머리를 풀며 울부짖었고, ‘불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은 불길을 헤쳐 길을 내주었으며, ‘망각의 강’ 레테(Lethe)는 자기 자신이 망각이라는 것조차 잊었다. 뱃사공 카론 영감은 ‘증오의 강’ 스틱스(Styx)까지 오르페우스를 건네준 뒤에도 너무도 감동한 나머지 한동안 되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알렉산데르 리토프셴코, <영혼들을 싣고 스틱스 강을 건너는 카론>, 1861년, 캔버스에 유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
저승의 입구에서 오르페우스는 맹렬하게 짖어대는 문지기 개 케르베로스(Cerberos)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 흉포한 삼두견(三頭犬)은 노랫소리가 들리자 이내 세 개의 머리를 떨구고는 곤히 잠이 들고 말았다. 그 옛날 헤라클레스가 힘으로 케르베로스를 굴복시켰다면 오르페우스는 노래로 굴복시킨 것이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뜯으며 길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죽은 자의 망령이 나타나 그를 끌어당겼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오르페우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음악으로 길을 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음악은 지상에서 저지른 죗값을 치르느라 영겁의 벌을 받는 영혼들에게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저편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대한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Sisyphos)가 있었다. 언덕 꼭대기 이르면 둥근 바위가 다시 굴러 내려왔기 때문에 시시포스는 영원히 그 바위와 씨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죽은 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를 꽁꽁 묶어 감금하는 바람에 저승이 텅 비게 되자 신을 속인 죄로 이러한 벌을 받게 된 것이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며 지나가자 굴러 내려오던 바위가 멈추었고 시시포스는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쉴 수 있었다.
시시포스를 감시하는 페르세포네, 기원전 530년경, 아티카 지방에서 출토된 흑회식 암포라(항아리)의 그림
아들을 죽여 신들에게 음식으로 대접하려 한 끔찍한 죄로 형벌을 받는 탄탈로스(Tantalos)는 조금 떨어진 웅덩이에 물이 목까지 찬 상태로 서 있었다. 그가 턱을 기울여 물을 마시려 하면 물은 아래로 내려갔고, 닿을 듯 가까이 있는 포도는 손을 뻗으면 달아났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며 지나가는 동안 물은 내려가지 않았고 포도는 달아나지 않았으며, 탄탈로스 역시 물을 마시거나 포도를 먹으려 하지 않고 잠시 헛된 노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범하려던 죄로 불 수레바퀴에 결박되어 영원히 도는 형벌을 받고 비명을 지르던 익시온(Ixion)과, 여신 레토를 겁탈하려던 죄로 두 손이 묶인 채 두 마리의 독수리에게 끊임없이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고 비명을 지르던 티티오스(Tityos)도, 오르페우스의 노랫소리에 불 수레바퀴가 멈추고 독수리가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지 않게 되었다.
아르고스 왕인 아버지 다나오스의 명에 따라 결혼 첫날밤에 남편을 단도로 찔러 죽인 죄로 밑 빠진 독에 영원히 물을 길어 부어야 하는 마흔아홉 명의 다나이드(Danaid, 복수는 Danaides)들도 보였다.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밑 빠진 독에서 물이 새지 않았고, 덕분에 다나이드들은 허리를 펴고 잠시 쉴 수 있었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Moirai) 세 자매가 쭈글쭈글한 얼굴을 편 것도, 복수의 여신 에리니예스(Erinyes) 세 자매와 천벌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가 눈물을 흘린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다나이데스>, 1903년, 캔버스에 유채, 111x154.3cm, 개인 소장
오귀스트 로댕, <다나이드>, 1889년, 대리석 조각, 36x53x71cm, 로댕 미술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다나이드를 표현한 이 작품은 본래 <지옥의 문>의 한 부분으로 구상되었던 것이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여인의 표정을 우리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하얗게 빛나는 그녀의 등 곡선을 통하여 그녀가 느끼고 있는 고통뿐 아니라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로댕의 친구였던 시인 릴케는 이 작품에 대하여 “무릎을 꿇고 엎드려 쏟아져 내리는 머리카락, 대리석을 따라 천천히, 길게 이어지는 등의 곡선, 흐느끼듯 돌 속에 파묻어버린 얼굴, 그리고 작은 소리로 생명을 꿈꾸는 꽃송이 같은 손”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하였다. 그러면서 가장 아름답게 여체를 표현한 로댕의 작품으로 꼽았다. 이 작품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를 돌아보지 마라”
이윽고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 앞에 섰다. 하데스의 전신에서 음산한 기운이 풍겨 나왔고, 여왕 페르세포네의 표정은 저승의 어둠만큼이나 어두웠다. 과연 망령들의 통치자인 신과 여신을 어떻게 설득하여 에우리디케를 되돌려 달라고 할 수 있을까.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뜯으며 혼신을 다해 노래했다.
“하계의 신들이시여! 산 것들은 어차피 당신들이 있는 곳으로 오게 마련입니다. 진실로 말씀드리오니, 저의 사연을 부디 들어주소서. 제가 이곳에 온 것은 타르타로스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해서도 아니요, 머리 셋 달린 문지기 개와 힘을 겨루자고 해서도 아닙니다. 저는 꽃다운 나이에 독사의 이빨에 빼앗긴 제 아내를 찾으러 왔습니다. 에로스가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에로스는 지상에 사는 저희들을 지배하는 전능하신 신입니다. 옛말이 그르지 않다면 이 하계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이 공포로 가득 찬 곳, 침묵과 망령의 나라에서 간청하오니, 부디 에우리디케의 생명줄을 다시 이어주십시오. 저희는 언젠가는 이 나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빠르냐 늦냐의 차이가 있을 뿐 오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가 이곳에 온 것은 때가 되어서가 아닙니다. 바라건대 신들이시여, 제 아내를 돌려주십시오. 돌려주시지 않는다면 저도 지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니, 저희 부부가 망령으로 떠도는 걸 보시면서 승리를 즐기게 될 터입니다.”
대 얀 브뤼헐, <하계에 간 오르페우스>, 1594년, 동판에 유채, 27x36cm, 피티 궁전, 피렌체. 꽃 정물화가로 유명한 플랑드르의 화가 대 얀 브뤼헐의 이 작품은 실감 나게 묘사한 지하세계를 배경으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설득하고 있는 오르페우스를 보여준다.
장 레스투 2세, <하계에 간 오르페우스>, 1763년, 캔버스에 유채, 35.5x57.5cm, 루브르 박물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서 리라를 뜯으며 아내 에우리디케를 돌려 달라고 호소하는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의 환영이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와 오르페우스 옆에 서 있다. 화면 왼쪽 아래 나란히 앉아 있는 세 여인은 실타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운명의 세 자매 여신 모이라이임에 틀림없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얼음처럼 차고 바위처럼 단단한 하데스의 마음마저 녹이고 말았다.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지하세계의 여왕이 된 페르세포네도 자신의 억울한 신세가 떠오른 듯 하데스의 귀에 속삭이며 애원했다. 사랑의 힘에 굴복한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오라고 명을 내렸다. 에우리디케는 독사에 물린 상처 때문에 절뚝거리며 혼령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오르페우스는 성급히 아내를 데리고 떠나려 했다. 그러나 하데스는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지상에 이를 때까지 쉬지 말아야 하고,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그림자에 숨어서 따라가야 하며, 오르페우스는 말을 해서도 뒤를 돌아보아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오르페우스는 조건을 수락했다.
에드먼드 덜락,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935년, 종이에 구아슈 수채화, 28.5x31.1cm. 백색의 혼령으로 나타난 에우리디케를 성급히 껴안으려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죽음의 냉기가 서린 어둡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났다. 탄탈로스가 갈증에 침을 삼키는 소리, 티티오스가 독수리에 간을 쪼여 비명을 지르는 소리, 익시온의 불 수레바퀴가 도는 소리, 다나이드들이 독에 물을 붓는 소리, 시시포스의 바위가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르페우스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뒤따라오는 에우리디케의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몸을 돌려 그녀가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그보다 더 강렬하게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욕망을 억누르고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저승에서 에우리디케를 이끌고 나오는 오르페우스>, 1861년, 캔버스에 유채, 12.3×137.1 cm, 휴스턴 미술관
어둠이 검은빛에서 잿빛으로 바뀌고 이윽고 밝은 빛이 들어왔다. 동굴 입구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오르페우스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에우리디케가 “안녕…”이라는 희미한 외침을 남긴 채 저승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오르페우스는 황급히 팔을 뻗었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차가운 바람뿐이었다. 오르페우스는 다시 하계로 내려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뱃사공 카론이 완강히 가로막았다. 오르페우스가 이레 동안이나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아케론 강 언덕에서 리라를 뜯으며 노래를 불렀으나 고집 센 카론 영감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조지 프레데릭 와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869-72년경, 캔버스에 유채, 70.49x90.81cm, 포그 미술관, 하버드 대학교. <희망>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와츠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두 번째 이별 순간을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피부색의 대비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경계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알렉상드르 세옹, <탄식하는 오르페우스>, 1896년, 캔버스에 유채, 73x116cm, 오르세 박물관, 파리. 에우리디케를 잃고 비탄에 잠겨 쓰러진 오르페우스의 모습이다.
오르페우스의 죽음
지상으로 올라온 오르페우스는 고향 트라키아로 돌아갔다. 트라키아의 여자들이 그의 마음을 잡으려고 온갖 수를 다 썼으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멀리한 오르페우스는 산 속 깊은 숲으로 들어가 야수들과 더불어 지냈다. 여전히 리라를 연주했지만, 호랑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거나 참나무와 바위를 감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날, 오르페우스 앞에 한 무리의 여자들이 나타나 그들의 축제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광적으로 추종하는 신도들이었다.
오르페우스가 요구를 거절하자, 그중 한 여인이 “여기, 우리 여성을 모욕하는 사내가 있다”고 외치고는 그를 향해 돌을 던졌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뜯자 돌은 그 소리에 힘을 잃고 그의 발치에 떨어졌다. 다른 여자들이 던진 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여자들은 일제히 큰 소리를 질러 리라 소리를 누른 후 창을 던졌다. 창에 맞은 오르페우스의 몸은 금방 피로 물들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여자들은 오르페우스의 몸을 갈가리 찢고, 떼어낸 머리를 리라에 박아 헤브로스 강에다 처넣었다.
그레고리오 라자리니, <오르페우스와 디오니소스 여신도들>, 1710년경, 캔버스에 유채, 베네치아 시립미술관. 광기에 사로잡힌 디오니소스의 여신도들이 잔인하게 오르페우스를 살해하는 장면이다.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리라가 함께 붙은 채 떠내려가며 머리는 노래를 하고 리라는 연주를 하자 이에 화답하여 강의 양 언덕도 노래를 불렀다. 오르페우스의 조각난 몸은 레스보스 섬의 해변으로 밀려갔는데, 무사이 여신들이 이를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때부터 레스보스 섬의 꾀꼬리들은 세상 어떤 곳의 꾀꼬리들보다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우스는 오르페우스의 리라를 거두어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는데 바로 거문고자리이다.
이 잔인하고도 비극적인 이야기는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중에서도 귀스타브 모로는 이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루는 한편 상상력을 발휘해 창의적으로 묘사하곤 했다. 그가 1865년경에 그린 <오르페우스>에는 한 여인이 레스보스 해안가로 떠밀려 온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리라를 거두어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표현되어 있다.
귀스타브 모로, <오르페우스>, 1895년. 패널에 유채, 154x99.5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그림 오른쪽 아래에 바다를 향해 기어가는 두 마리의 거북이 이채롭다.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던 리라는 거북의 등껍질로 울림통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리라가 거북으로 환생했다는 뜻일까?
장 델빌, <오르페우스>, 1893년, 캔버스에 유채, 79.3x99.2cm, 벨기에 왕립미술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발견하는 님프들>, 1900년, 캔버스에 유채, 99×149cm
오딜롱 르동, <오르페우스>, 1903-10년경, 캔버스에 유채, 68.8x56.8cm, 클리블랜드 미술관
마르크 샤갈, <오르페우스 신화>, 1977년, 캔버스에 유채, 97x146 cm, 개인 소장
글 : 라라와복래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위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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