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io Campanile
Over The Edge Limited Edition Print
구름의 운명 유하
푸른 보리밭을 뒤흔들며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처럼 만져지지 않는 사랑이 나를 흔들고 지나갔다
지나간 바람은 길을 만들지 않으므로 상처는 늘
송사리 눈에 비친 오후의 마지막 햇살
그 짧은 머뭇거림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탱자나무꽃은 온통 세상을 하얗게 터뜨리고
산다는 것은 매순간 얼마나 황홀한 몰락인가
육체와 허공이 한 몸인 구름,
사랑이 내 푸른빛을 흔들지 않았다면
난 껍데기에 싸인 보리 알갱이처럼
끝내 구름의 운명을 알지 못했으리라
Thinking Of You Limited Edition Print
여름 이시영
은어가 익는 철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수박이 익는 철이었다.
통통하게 알을 밴 섬진강 은어들이 더운 몸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찬물을 찾아 상류로 상류로 은빛 등을 파닥이며 거슬러오를 때였다.
그러면 거기 간전면 동방천 아이들이나 마산면 냉천리 아이들은
메기 입을 한 채 바께쓰를 들고 여울에 걸터앉아 한나절이면 수백마리
알 밴 은어들을 생으로 훑어가곤 하였으니, 그런 밤이면 더운 우리
온몸에서도 마구 수박내가 나고 우리도 하늘의 어딘가를 향해 은하수처럼
끝없이 하얗게 거슬러오르는 꿈을 꾸었다.
Garden Of The Gods Limited Edition Print
참치죽이 있는 LG 25시의 풍경 유하
편의점이 생기고 나서부터 한밤중에도
나의 육신이 불을 환히 밝히게 되었다는,
쉴줄 모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24시의 일상, 그 끄트머리엔
25시라는 상상의 편의점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난 24시의 일상을 탈영한, 떠도는 자이므로
박쥐처럼 익숙하게 그곳으로 스며든다
24시의 편의를 위해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은 손으로
뇌수의 냉장고 문을 열고, 오늘은
그랑부르를 잃어버린 참치의 고독을
하나 꺼낸다, 가격은 영혼의 살점 한 덩어리
편의점 사장에게 시집간 한 여자를 기억한다
멸치 대가리들이 다물어지지 않은 아가리로, 사랑했니?
묻는다, 과연 LG 트윈스가 코리안 시리즈에 직행할까요
참치는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죽 그릇 속에 완봉당한 채 누워있다
난 밀봉된 인스탄트 식품처럼 사랑에 대해 침묵한다
그때 난 끝없는 삶의 그랑부르를 부르짖었지만
그녀는 용케도 내 표정 뒤에 숨은 참치죽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도 참치는 편의를 위해 헤엄치지는 않았으리라
그래도 참치는 생을 죽쒀서 내 허기의 그랑부르를 달래주리라
죽으로 요약되는 허망함을 딛고,
꿈속에서도 참치는 계속 헤엄쳐 간다
육신의 내부를 밝히는 심장의 불빛이 꺼질 때까지,
난 25시 편의점처럼 쉴 줄 모르고
참치에게 푸른 바다를 제공할 것이다
24시간의 일상, 그 끄트머리엔
25시라는 상상의 편의점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영혼의 살점을 지불할 수 있는 자만이
박쥐처럼 익숙하게 스며들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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