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자운영의 우포늪에서_
내 메마른 정원에 비를 몰고 우연처럼 당신이 왔었네.
그 때 난 당신을 알아 보지 못하고
빗줄기에 내 정원이 맑게 씻기는 것만 바라보았네.
당신이 다시 우연으로 떠난 후였을까 어느 날인가부터
내 가슴 한켠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네.
비가 그칠 무렵, 나무들이 푸른 눈을 뜰 무렵
나는 알았네 당신이 내 가슴에
녹슨 그네 하나를 걸어 두고 갔다는 걸
나는 그네 타는 법을 알지 못하는 아이처럼
그네 줄을 움켜쥐고 바르르 떨면서
작은 흔들림에도 겁먹은 채 이렇게 매달려 있네.
그네줄이 흔들리는 폭만큼, 그 속도와 깊이로
내 위태로운 시간도 깊어 가네.
당신에게 닿을 수 없는 이 그리움의 거리.
나는 그네 위에서 발을 한 번 굴러 보네.
웃는 것 같고 또한 우는 것 같은 이 생(生)의 삐걱임 소리.
당신이 내 가슴에 걸어 두고 간 이 길고 긴 침묵의 소리.
그네줄이 닿지 못하는 당신과 나 사이 꼭 그만큼의 거리에
오늘은 서늘한 조각달 하나 물음표처럼 걸려 있네.
서쪽으로 서쪽으로 천천히 흐르더니
어느새 내 정원의 푸른 나무 한 그루
당신 쪽으로 옮겨 놓고 있었네.
내 가슴의 그네 하나, 위태롭게 매달려
녹슨 시간을 바라보고 있네.
'아름다운글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의 종착역/ 이 효녕 (0) | 2006.12.20 |
---|---|
칵테일 불랙 러시안을 마시고 싶다. (0) | 2006.12.19 |
걸으며 눈치챈 것 /신 광철 (0) | 2006.12.15 |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0) | 2006.12.13 |
시월의 마지막 밤 (0) | 2006.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