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왔다. 비를 맞으며
신문지처럼 접혀서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배추흰나비가 보고 싶어
그가 말했다.
문을 열자
옥양목 빨래 같은 그의 영혼이
서늘하게
가슴을 지나갔다.
어느 날은 속삭이듯
배꽃나무 그늘로
스미고 싶다던 그대여.
스며 그에게로
가닿을 수 있다면.
터진 꽃망울의 속살로
피어날 수 있다면.
한 꽃나무에서 다른 꽃나무로
흐를 수만 있다면.
벽에 검둥산 하나
그려넣고
밤마다 入山하는 그대를
적멸이라 부르랴.
샘밭에 가면
남루한 옷차림의
노을이,
남루한 사랑이
펼쳐진다. 공복인 그대가
어루만지던 원고지의
빈 칸처럼.
그리움도 사랑도 시든 지
오래.
옛사랑은 노래가 되지 않는다
허공에 새 한 마리
그려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너무 쓸쓸하여
점 하나를 찍노니
세상 사는 이치가
한 점 안에 있구나.
오늘은 먹을 갈다가
맑은 달 하나
건졌습니다.
젖어 창호지에
걸었드니
지나가는 새가
발목을 적시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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