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모래여자

조용한ㅁ 2008. 8. 28. 01:42

모래여자

 

-김혜순

 

 

모래 속에서 여자를 들어 올렸다

여자는 머리털 하나 상한 데가 없었다

 

여자는 그가 떠난 후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고 전해졌다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숨을 쉬지도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와서 여자를 데려갔다

옷을 벗기고 소금물에 담그고 가랑이를 벌리고

머리털을 자르고 가슴을 열었다고 했다

 

여자의 그가 전장에서 죽고

나라마저 멀리멀리 떠나버렸다고 했건만

여자는 목숨을 삼킨 채

세상에다 제 숨을 풀어놓진 않았다

몸속으로 칼날이 들락거려도 감은 눈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자를 다시 꿰매 유리관 속에 뉘었다

기다리는 그는 오지 않고 사방에서 손가락들이 몰려왔다

 

모래 속에 숨은 여자를 끌어올려

종이 위에 부려놓은 두 손을 날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낙타를 타고 이곳을 떠나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꿈마다 여자가 따라와서

감은 눈 번쩍 떴다

여자의 눈꺼풀 속이 사막의 밤하늘보다 깊고 넓었다

 

 

-2006년 미당문학상 수상작

 

 

~~~~~~~~~~~~~~~~~~~~~~~~~~~~~~

<심사평>

'미라같은 "여성의 삶'"깊고 조용히 응시'

 

.......'모래여자'는 차분하게 정제된 언어를 보여주는 시다. 미라의 발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마치 미라의 발굴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모래 여자의 존재를 조금씩 펼쳐 보여준다. 독자들은 숨을 죽이고 모래 여자가 어떻게 존재했고 어떤 취급을 받았으며 이제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를 비밀의 베일을 펼치듯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 모든 모습이 드러났을 때 독자들은 그 모래여자가 결국은 갖은 소외와 수모의 삶을 조용히 견뎌온 한 여성의 삶의 환유임을 알게 된다

......심사위원들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것은 다채로움보다는 조용함이라는 생각에서 '모래여자'쪽을 조용히 선택했다. <심사위원=정현종.황현산.최승호.이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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