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삶이 하찮아 보이는 날 / 장 남제

조용한ㅁ 2009. 1. 23. 09:55



< 삶이 하찮아 보이는 날은 >



살다가
삶이 하찮아 보이는 날은
오대산 월정사에
일주문 숲길을 걸어볼 일이더라

숲은 죽은 자를
땅에 묻지도
불에 태우지도 않아
주검을 그대로 두고보는 까닭인지
모두들 억척스레 살아

주검은
딱따구리의 박수이고
다람쥐의 화장실
하이에나 같은 버섯의 포식일 뿐이라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삶보다는 못해

전나무처럼 웅대하지는 못해도
소나무처럼 잘 생기지는 못해도
기고 오르고 감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청가지덩굴을
탓 할 일이 아니더라

살다가
삶이 하찮아 보이는 날은
월정사 일주문 숲길에
청가지덩쿨을 만나볼 일이더라

-장남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