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 종 환

조용한ㅁ 2009. 2. 3. 10:42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 종 환
강으로 오라 하셔서 
강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수천 개 햇살을 찬란하게 하시더니
산그늘로 모조리 거두시고
바람이 가리키는 
아무도 없는 강 끝으로 따라오라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숲으로 오라 하셔서 
숲속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자 하시던 자리엔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를 대신 보내곤
몇 날 몇 밤을 
붉은 나뭇잎과 함께 새우게 하시는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고개를 넘으라 하셔서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갯마루에 
한무리 기러기떼를 먼저 보내시곤 
그 중 한마리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시며 
하늘 저편으로 보내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저를 오솔길에서 
세상 속으로 불러내시곤 
세상의 거리 가득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단 사라지고 떠오르다간 잠겨가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상처와 고통을 더 먼저 주셨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씻을 한접시의 소금과 빈 갯벌 앞에 놓고
당신은 어둠 속에서 
이 세상에 의미없이 오는 고통은 없다고 
그렇게 써놓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당신이 붙이신 불이라 온몸을 태우고 있으나
제 작은 영혼의 일만팔천 갑절 
더 많은 어둠을 함께 보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림 / 오진국
음악 / Poeme - Secret Garden  
* JUL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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