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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心(무심)
1972 / 7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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瑞日(서일)
1970 / 72 x 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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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
1970년대 / 65 x 73cm / 종이에 수묵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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猫 (묘)
1974 / 72 x 80cm
雄 (웅)
1975 / 72 x 80cm
候鳥 (후조)
1975 / 63 x 50cm
正午 (정오)
1959 / 180 x 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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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1985 / 164 x 2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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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1986 / 164 x 260cm / 종이에 수묵
사람들
1986 / 260 x 164cm
사람
1987 / 90.5 x 87.5cm / 종이에 수묵
![](http://kr.img.blog.yahoo.com/ybi/1/cc/54/wanupark/folder/1896953/img_1896953_1143267_11?1097123760.jpg)
사람들
1987 / 132 x 163cm
![](http://kr.img.blog.yahoo.com/ybi/1/cc/54/wanupark/folder/1896953/img_1896953_1143267_7?1097123760.jpg)
군무
1987 / 164 x 260cm
산
1989 / 100 x 81cm / 종이에 수묵
![](http://kr.img.blog.yahoo.com/ybi/1/cc/54/wanupark/folder/1896953/img_1896953_1143267_15?1097123760.jpg)
두 마리 새
1989 / 132 x 163cm / 종이에 수묵담채
사람
1989 / 101 x 87
山丁 徐世玉,1929~
산정은 월전의 제자로 서울미대를 나와
서울대 미대 교수와 학장을 지내면서
후학 양성에 공을 세웠다.
서울 미대가 실력파로 많은 작가를 배출하면서
홍익대학의 한국화 독점을 깨뜨렸다.
산정을 가리켜 ‘현대 한국화의 구심점’,
‘수묵의 품격 높은 추상’ 으로 평가되는 등
우리화단의 보배스런 존재다.
그의 작품세계는 화론(畵論)으로까지 정립돼 있으니
확실한 일가(一家)를 이룬 셈이다.
산정은 수묵만을 고집하고 있다.
화선지에 먹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흑백이 조화스럽게에 빚어낸 하모니다.
산정은 수묵만의 고집을 ‘색을 버린게 아니고
더 좋은 색을 찾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전통적인 묘법들인 감필(減筆)과 발묵, 파묵을 활용한
산정의 회화 언어는 다변의 웅변이 아니고
탄성의 감탄사란 표현이 어울린다.
화면이 그만큼 팽팽한 절제미를 보이기 때문이다.
산정의 파격적인 추상은 국전에서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누는
원동력이 됐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산정은 1929년 대구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대 1회 졸업생이다.
1949년 제1회 국전 국무총리상과
3회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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