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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그림들/한국의화가 작품

황 주 리

 

 

 

 

 


 

 

 

자화상199953×46Acrylic on canvas

 





자화상 / 2000 / 91×117 / Acrylic on canvas




자화상 / 1993 / 53×46 / Acrylic on canvas

 

 

삶은 어딘가 다른곳에200091×117Acrylic on canvas




자화상 / 1999 / 53×46 / Acrylic on canvas




삶은 어딘가 다른곳에 / 2000 / 91×73 / Acrylic on canvas




삶은 어딘가 다른곳에 / 2000 / 91×117 / Acrylic on canvas




삶은 어딘가 다른곳에 / 1992 / 131×162 / Acrylic on canvas




땅에서…/ 1992 / 130×130 / Acrylic on canvas




땅에서…/ 1992 / 131×162 / Acrylic on canvas




땅에서…/ 1990 / 131×162 / Acrylic on canvas




땅에서…/ 1997 / 97x111.7 / Acrylic on canvas




참을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1992 /131×162 Acrylic on canvas




삶은 어딘가 다른곳에 / 1992 / 131×162 / Acrylic on canvas




두 사람 / 1995 / 116.8×91 / Acrylic on canvas




두 사람 / 1999 / 91×73 / Acrylic on canvas




두 사람 / 1999 / 91×73 / Acrylic on canvas




가족 / 1997 / 131×162 / Acrylic on canvas




식물학 / 1997 / 131×162 / Acrylic on canvas




식물학(Detail) / 1996-1997 / 227×362 / Acrylic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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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서양화가 황주리의 그림에서는 피리 소리가 들린다. 어떤 피리 소리인가? 피리로 마을의 쥐떼를 없애주었으나 배척당한 뒤 어린이들을 이끌고 사라져버린 동화 속 피리쟁이의 피리 소리이다. 또 성경 속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시대를 탓한, 사람의 아들 예수의 피리 소리이다. 황주리는 소통의 단절을 시대의 현실로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그림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피리 소리를 수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때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일까지는 나의 일이나, 그 편지의 겉봉에 수신인으로 적힌 사람의 마음에 가 닿는 일은 이미 나의 몫이 아니다. 그 편지가 비에 젖어 거리의 모퉁이에 버려지거나, 늘 그렇듯이 우리들의 마음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보내는 사람의 애정이 듬뿍 담긴 그런 편지를 쓰고 싶다."


그의 캔버스 위에는 사람들이 늘 북적댄다. 그러나 그들은 개성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다. 생김새도 행동거지도 다 단순화되고 정형화된 무명의 존재들이다. 게다가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이리저리 막히고 파편화된 '한계 공간'이다. 이 같은 한계 상황은 사회가 개인들의 이용가치를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조장한 것이다. 그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사회는 그들을 벌레 털듯 떨궈 내버릴 것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들은 꼬물꼬물 자신의 행위에만 열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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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 1985 / 202 x 249 / Acrylic on canvas

 

우리는 분명 '언어적 동물'이다. 하지만 이제는 언어가 없다. '언어=소통'이 전제돼야 인간이 사고하는 존재라는 것도 사회적 존재라는 것도 의미를 갖는다. 또 도구를 사용해 삶을 확장하고 창조하는 행위도 그 합목적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구슬을 꿰는 줄' 같은, '언어적 동물'로서의 정체성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존재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황주리는 줄기차게 그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언어를 상실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 그림 저 그림 사이를 맴도는 그의 그림 속 현상들은 때로 현실에 대한 직설법적인 고발이다. 황주리 그림은 그 특유의 노골적인 상징에 의지해 우리에게 그 어떤 형식보다도 절실한 방식으로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안타까운 피리 소리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피리 소리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들릴 날이 오기는 올 것인가? 비록 이렇게 허무한 세상 속에 산다고 해도 그는 결코 허무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같은 소통의 한계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들어주는 이가 얼마나 되든 어쨌든 그는 계속 발언할 기회를 얻고 있고, 그것은 그에게 분명 고마운 일이다. 비록 '시 없는 시대'의 '시인'이긴 하지만, 그 역시 시인으로서의 특권을 모두 행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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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1992 / 131×162 / Acrylic on canvas
 
미술 평론가 이주헌 선생님의 '내 마음의 그림' 에서 발췌한 서양화가 황주리의 그림세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주헌씨의 글을 좋아하고 예전 현대 갤러리 전시를 시작으로 황주리란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사실상 그녀의 작품들을 많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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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 1992 / 131×162  Acrylic on canvas
 
흔히 그녀의 그림을 가르켜서 마드 로드코 같은 화가들의 그림과 비교하곤 합니다. 화면 가득하게 매우는 그래서 전혀 여백이란 보이지 않는 그러한 추상화의 방식으로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고 제 자신에게 사실상 물어본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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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안의 풍경 / 1993 / 181×225 / Acrylic on canvas
 
그녀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몽환적인 세계와 수많은 오브제들을 봅니다. 그리움과 풍경속에 어우러진 작가 자신의 외로움일수도 있고 모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에서의 작가적 정체성을 그마나 답보해주고 있던 예전의 기억들의 덩어리일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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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 블루스 / 1993-1994 / 183×230 / Acrylic on paper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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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 블루스 / 1995 / 183×230 / Acrylic on paper on canvas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림이 좋은 것은 언제나 그녀의 그림속에서 나타나는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저 눈빛과 소통을 위한 노력이 비록 화면은 꽉차게 구성되어 있지만 내면적인 응시의 우물속에서 조금씩 푸르른 세상의 상처를 향해 비집고 들어오는 마음의 여백 때문입니다





식물학 / 1999 / 182×227 / Acrylic on canvas




25시 / 1984 / 202 x 249 / Acrylic on canvas




우리들의 천국 / 1985 / 202 x 249 / Acrylic on canvas




추억제 / 1988 / 200 x 260 / Acrylic on canvas



 

 

1957 서울 生
1980 이화여자대학 미술대학 서양화과졸업
1983 홍익대학 대학원 미학과 졸업
1991 뉴욕대학 대학원 졸업

 

 

 
 
             

                                                                           

그림은, 한장의 엽서처럼 그리운 이들을 불러낸다
황주리, 오늘부터 갤러리현대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회고전


황주리의 ‘자화상’.

황주리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눈사람, 나무벤치, 휴지통, 전등, 개의 사진이나 다양한 색과 이미지의 엽서에 눈, 코, 입이나 안경을 그려 넣은 ‘자화상’. 그리고 엽서그림을 가로 세로로 7~9개씩 빼곡히 모아놓은 작품은 ‘여행에 관한 명상’이란 제목을 달았다. 자화상 외에 도시남녀의 일상을 옴니버스나 단편소설집처럼 화면에 펼쳐온 황주리(51)씨.

이야기가 그려지는 친근한 작품으로 대중적으로도 인기 높은 황씨가 1980년 이후 최근까지 30년여 대표작을 한데 모은 개인전을 23일부터 2월13일까지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연다. 2000년대 들어 캔버스그림 외에 ‘안경그림’, ‘돌그림’을 선보였던 작가는 연초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전을 통해 ‘엽서그림’을 발표한다.

그림이란…:‘내게 있어 낚시꾼의 고기잡이며, 우울한 날의 마음다스리기며, 뜨개질하는 여인의 조용한 인내며, 득도하는 스님의 오랜 침묵이며,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을 불러내는 신비의 마법이다.’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TV,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사랑을 나누는 남녀, 드라이브하고 술 마시며 머릿속으로 뭔가를 저울질하는 사람…. 작가가 노랑 빨강 바탕 위에 검은 선으로 그린 사람들은 어제, 오늘에 이어 내일도 계속 이어질 우리의 일상이다. 화려한 원색뿐만 아니라 무채색 화면 위로 만나고 헤어지는 삶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대 안의 풍경’,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 ‘식물학’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황씨의 그림은 도시남녀가 주인공인 영화나 소설 같다.

여행과 독서:‘여행은 어떤 면에서 독서와 많이 닮아 있다. 한번 읽은 책의 내용이 거의 생각나는 구절이 없이 처음 보는 듯 생경할 때가 있듯, 여행도 그렇다.’

문화일보 ‘푸른광장’ 필자인 황주리씨는 그림만큼 독서와 글쓰기, 여행을 즐긴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읽던 책을 덮으며 “내일은 기차를 타야지”하고 생각할 정도다. 지난해 실크로드, 중국 윈난(雲南)성 등지를 찾았고 올해엔 중국 내륙 고원지대를 달리는 티베트 라싸행 ‘칭짱열차(하늘열차)’여행을 꿈꾼다.

신작 ‘여행에 관한 명상’시리즈는 여행과 여행지의 추억이 깃든 엽서에 그린 그림을 한데 모은 작품. 여행지에서 사모은 엽서와 직접 찍은 현장사진, 혹은 누군가 보내온 그림엽서에 일기쓰듯 낙서하듯 색칠한 ‘엽서그림’을 통해 작가는 시간여행의 흔적을 담아낸다.

눈과 안경:‘나이가 들면서 일그러지거나 비뚤어지게 사물을 바라보는 난시 현상이 사라져가는지도 모른다.’

1980년대 초반 황씨가 원고지에 그린 그림에도 무언가를 응시하는 ‘황주리표 눈’이 등장한다.

2000년대 들어선 의도적으로 눈을 그려넣었지만 그전에 의식하지 못한 채 그렸던 그림 속 눈에서 작가는 어디선가 우리를 바라보는 눈, 때로 감시하는 눈의 의미를 짚어낸다. 대학 졸업 후 1980년대 초반, 하지 말라는 것이 많던 그 시절, 황씨는 역설적으로 밝은 형광색의 인물군상을 통해 어두운 시대를 담아냈다.

출판사를 경영하던 아버지, 문학도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집에 수북하던 책을 탐독하며 원고지에도 그림을 그렸다. 중학시절부터 착용해온 안경을 비롯해 수집한 돌, 엽서와 사진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여온 황씨는 이상의 시, 뉴욕 생활, 영화 ‘동사서독’, 쇼팽 피아노음악의 감흥을 화폭에 실험하는 진행형 작가다.

 

                                                                              

                                                                          

 

 

                

                                                                 데드마스크82 x 98Oil on canvas

 



 

 

 

“아버지가 출판사를 경영하시던 시절 출판사에는 누런 이백자 원고지들이 놓여 있었다…원고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갖고 놀았던 탓인지 자연스럽게 친숙한 원고지로 작업을 하게 됐다”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작가 황주리(51).

그가 밝힌 작품의 변이다.

그의 작품세계와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관람객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작가 황주리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인생을 그리는 그의 소담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따뜻한 공간속 그의 그림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착각이 든다. 그림이 따뜻하다 사람도 따뜻하다.

서울 사간동에 위치한 갤러리 ‘현대’가 23일부터 내달 13일까지 황주리 회고전을 연다.

1980년대 초기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작품 50여점이 그의 작품인생 30여년을 수놓는다.

초기작은 200자 원고지 한 장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사용해 여러장의 원고지로 붙여 작품을 구성한 것들이다.

최근작 ‘그림엽서’는 20여 년 동안 여행을 통해 모은 그림엽서와 직접 찍은 사진, 지인에게서 받은 엽서 등을 모아 만든 작품이며 ‘여행에 관한 명상’이 눈에 띈다.
 

작품의 형식은 그가 밝혔듯이 원고지에 그린 80년대 초기작의 연장선상.

각각의 프레임 안에는 마오쩌둥의 얼굴, 작가의 애견, 눈사람이나 쓰레기통 등을 찍은 대형 사진위에 사람의 눈 등을 그려 넣은 최근 자화상 시리즈 등 재미있고 엉뚱한 생각들이 담겨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처럼 화려한 원색과 흑과 백의 세계를 넘나든다.

황주리씨 개인전 "돌에 관한 명상'

 

황주리의 작품 흐름..갤러리 현대서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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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문화의 거리인 인사동. 정작 붐비는 곳은 찻집과 호떡집뿐이라지만, 요즘 사람들이 유독 발걸음을 멈추고 쉬 자리를 뜨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황주리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 아트사이트 앞이다. 전시장 바닥에 올망졸망 놓인 100여 개의 돌멩이가 저마다 아기자기한 그림을 품고 있으니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황주리의 25번째 개인전 ‘세월’ 출품작 중 ‘돌에 관한 명상’ 연작을 만나본다.

흔히 입체작품은 높은 좌대 위에 올려져 전시되기 마련이지만, 황주리의 돌 그림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 소박하게 바닥에 놓여있다. 미술작품이 갖는 권위를 벗어던지고, 흔연스럽게 바닥에 철퍼덕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돌멩이 그림들은 오손도손 정겹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도 파란만장한 우리네 인생처럼 각양각색이다. 크게는 사람 머리만한 것부터 작게는 어른 손바닥만한 것까지, 무엇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 포옹하는 사람, 길 떠나는 사람, 꿈꾸는 사람, 외로운 사람…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묘사된 인간 군상은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삶과 꿈을 모자이크 하듯 보여준다.

그런데 돌 위에 그려진 그림의 세부에서 시선을 돌려 돌 전체를 바라보면, 알록달록한 그림 사이로 사람 얼굴 형상이 보인다. 살포시 감은 눈, 도톰한 입술이 그림 사이로 숨은그림찾기 하듯 그려져 있다. 하나의 돌이 한 폭의 캔버스인 동시에 한 사람의 얼굴이 되는 것이다.

작가가 정형화된 캔버스를 벗어나 독특한 재료에 그림을 그린 것이 처음은 아니다. 1986년 작 ‘가면무도회’에서는 원고지에 얼굴 그림을 그려 다닥다닥 이어 붙였다. 2003년 열린 ‘안경에 관한 명상’ 전에서는 10여 년 간 모은 수백 개의 안경에 그려 전시장 벽면을 뒤덮었다. 그리고 이번에 화폭 대신 선택한 것은 돌멩이다.

원고지, 안경, 돌멩이라니 전혀 무관해보이지만, 모두 긴 세월과 인생을 상징하는 재료들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흔히 “내 인생을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나올 것”이라 눙치듯, 한 사람의 얼굴은 그의 삶을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원고지와도 같다.

또한 세상을 보는 창 역할을 하는 안경은 신체의 일부분과 동일시되어온 사물로, 무한대를 표시하는 기호 ∞와도 닮아 있어, 세월에 대한 작가의 주제의식을 반영하는 데 적합한 재료였다.

‘세월’을 명제로 한 이번 전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돌멩이 역시 무한한 시간을 상징한다. 처음엔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녔을 돌멩이가, 물에 깎이고 바람에 풍화되어 둥글둥글 원만한 모습으로 바뀌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작가는 그 무한한 시간이 응축된 정수로서의 돌멩이에 주목하고, 유한한 인간의 삶을 그려 넣어 대비 효과를 극대화했다.

세월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되, 마치 엄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속닥속닥 털어놓는 친구의 귀엣말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 황주리 그림의 매력이다. 이는 전시장 밖 쇼윈도에 삼삼오오 몰려들어 떠날 줄 모르는 일반 관람객의 모습에서도 증명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돌에 관한 명상’ 연작 외에도 4년째 동고동락해온 불독 ‘베티’를 의인화한 자화상 연작을 비롯한 모노톤의 평면 회화가 함께 전시된다. 작가가 개인전에 맞춰 펴낸 그림에세이집 ‘세월’(이레)에서도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을 다시 볼 수 있다.

 

황주리는 “지나가는 모든 순간들은 꿈처럼 덧없고, 아무 의미도 없는 듯한 똑같은 일상은 기억나지 않는 꿈속의 장면을 닮아 있다. 나는 그 꿈을 찍는 사진사가 되고 싶다”고 썼다. 그의 말을 가장 잘 압축한 작품이다.

 

식물학’ 연작에서 펼쳐보였던, 꽃 모양 프레임에 이야기를 담은 형식이 돌멩이 그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우리네 인생 담은 올망졸망 돌멩이그림-황주리 ‘세월’전  

 

화가 황주리의 25번째 전시 '세월(The Years)展'이 인사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9월13일까지 열린다. 그녀는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강렬한 색채와 독특한 도시적 감각을 담은 신구상주의, 뉴페인팅 회화로 주목받았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이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니 파노라마처럼 '인간사'가 새겨진 '돌에 새긴 명상'이 눈에 들어온다. 길에서도 볼 수 있는 일종의 설치 미술로 관객과 거리감을 주지 않아 좋다. 거리를 스치던 사람들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여유가 넘쳐 보인다. 사람들이 전시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뭔가 수군거리더니 급기야 호기심이 발동하여 전시장으로 들어온다.

▲ '돌에 대한 명상' 돌에 그린 아크릴 물감 2003-2005
ⓒ 황주리

 

자연 예술품에 손길 닿아

돌은 자연친화적 오브제로 자연과 세월이 만든 예술품이다. 자연이 만든 예술품에 작가의 손길이 닿아 또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작가의 그런 착상이 참 신선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갈수록 더 둥글어지는 돌, 그 모양이 하나도 같지 않은 것이 또한 신기하다. 이 돌은 다년간 제천, 단양 등에서 주워 온 것이란다.

인간은 정신 건강의 측면에서 재미있고 신나는 자극을 받아야 뇌가 활발해지고 영혼이 풍요로워진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는 바로 그런 미덕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개구쟁이 시절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뛰놀던 그 시절의 추억으로 우리를 내몰고 삶의 활력을 되찾아 주는 것 같아 즐겁다.

▲ '가면무도회' 수제품 종이에 그린 아크릴 물감 270×435cm 1986 80년대 대형 작품
ⓒ 황주리
황주리의 주제는 무엇보다 '인간'이다. 사람 표정에 우리들의 삶이 농축되어 있기에 그녀의 기록은 소중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80년 혼란기에, 시대의 어둠만큼 인간에 대한 고찰과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 같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초대형 작품 '데스마스크'는 한 연대기를 읽을 수 있다는 면에서 유용하다.

작가는 스스로 자신을 '꿈을 찍는 사진사'라는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리한 작가의 눈 카메라에 사람들의 모든 표정이나 몸짓이 다 찍힌다는 얘긴데, 한 번 찍히면 영영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상상 안에서 자랐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다시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양이다.

▲ '얼굴'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244×368cm 1997-2000
ⓒ 황주리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이 주는 무거움과 가벼움, 괴로움과 즐거움, 고단함과 유쾌함이 뒤섞인 소리가 변주되어 들리는 것 같고, 오랜 세월의 강물에 걸러진 고운 모래처럼 여행에서 얻은 추억이나 사랑의 흔적과 무늬들 삶의 파편들과 작가의 몸과 마음 속에 숨어 있다가 다시 그림이 되어 떠오르는 것 같다.

'얼굴'이라는 제목이 붙은 위의 32개 세트 그림은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주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표정들을 담은 거란다. 다시 보니 그렇다. 난처한 일로 얼굴을 가릴 때나, 화가 나 목청을 돋울 때, 말하기 싫을 때, 언짢은 표정이 다양하게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작가의 특이한 유머와 풍자도 곁들여져 오히려 유쾌하다.

▲ '자화상 내 이름은 베티' 46×61cm 2003-2005
ⓒ 황주리
불독 '베티'는 또 다른 자화상

이번 전시회의 색다름은 2층 전시장을 꽉 채운 불독 '베티' 시리즈에 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 '안경을 쓴 베티'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이밖에도 '술잔을 기울이는 베티', '턱 괴고 생각에 빠진 베티', '바이올린 연주에 심취한 베티', '립스틱 바르고 있는 베티' 등 다양한 베티가 보인다. 작가 자화상의 연장선상에 보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이 정도의 불독이라면 견공이라는 해도 맞을 것 같다. 이런 엉뚱하고 유쾌한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는 이번이 처음 아니다. 이런 기질은 그녀의 작품 곳곳에 배여 있다. 그녀의 그림에는 줄거리가 담겨 있어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엉뚱하고 그로테스크한 그녀의 연출력은 영화 <25시> 마지막 정면에서처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한다.

▲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182×227cm 2005
ⓒ 황주리
황주리가 시리즈물로 오랫동안 작업해 온 '식물학'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성실히 작업하는가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주변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한 것들을 이야기꽃으로 피워내면서 그녀만의 인간 드라마를 끊임없이 쏟아 놓는 것이다.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노동자라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많은 표정과 동작과 모습을 일일이 다 그릴 수 있다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나이가 지극히 드신 한 어른은 그녀의 작품에 압도되어 "작가 선생님은 힘도 좋으시네요!"라는 다소 어색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인터뷰를 통해서 알았지만 그녀의 하루 작업 시간은 8시간 정도이다.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8시간 일하는 것과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 8시간 일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가늠이 되는지 모르지만 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이를 스스로 '즐거운 노동'이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182×227cm 2001-2003 부분화
ⓒ 황주리
사랑의 황홀경

3층 전시장에서 보는 인간의 내면과 살아가는 풍경을 16개 세트 그림으로 결합한 '흑백화'는 정말 경이롭다. 이 갤러리 큐레이터 이진명씨도 이 그림에 반해 소름이 끼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의 '흑백화'는 일기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이런 작품은 작가가 5살부터 시작하여 40년간 공들인 노력의 결과인지 모른다.

작가란 타인을 관찰하면서 자신을 찾기 위해 애쓰는 자임을 알 수 있다. 황주리의 '자화상' 시리즈도 바로 이를 증명한다. 작가는 자신을 통해서도 자신을 보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본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본다. 자신의 자화상 범위가 점점 더 커져 바로 우리들 자화상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황주리 그림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애틋한 청춘 남녀의 열렬한 사랑 표현이다. 격렬한 입맞춤과 뜨거운 포옹 그리고 애틋한 분위기 연출, 작가의 예리한 눈 카메라에 선남선녀의 그림 같은 풍경이 포착되지 않을 리가 없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두근거리고 설레는 미세한 파동까지 다 포착한다.

▲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182×227cm 2001-2003

ⓒ 황주리

 

불통 시대, 틈새 찾기

황주리만큼 소통의 문제를 은근히 혹은 심각하게 제기하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불통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이는 모든 사람이 직면하는 큰 고통 중 하나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즘 대통령과 국민이 소통이 안 된다고 답답해 하기도 하고 부모 자녀, 상관과 직원 사이에 소통을 잘 안 되어 힘들어 하지 않는가!

첨단 IT시대의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아이러니인가! 풍요 속에 빈곤이라 할까! 프랑스의 부조리 작가 이오네스코는 "사람들은 진정한 대화(의사소통)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껄이고 있을 뿐이다"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그의 연극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은 이런 소통의 단절을 꼬집었기 때문이리라.

황주리의 그림은 현실을 그리면서 꿈을 담고 있고, 일상을 말하면서도 축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실에 바탕을 둔 꿈이라 더욱 감동스럽고, 노동을 한 후에 누리는 축제라 더욱 달콤하고 감미롭다. 때로 산다는 것이 지루하고 슬프고 덧없지만 그러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기에 꿈은 현실이 되고 축제는 일상이 된다.

▲ '어느 개인 날'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73×91cm 2005
ⓒ 황주리
순간에서 영원을 낚는 마술사

"내게 그림 그리는 일은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기 위한 소박한 밥상이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세월을 저 가득 쌓인 그림들과 바꿨다는 생각이 가끔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성장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들 마음처럼."

황주리의 신작 산문집 <세월>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다. 놓칠 수 없는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 보려는 것이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가 아닌가 싶다. "유한한 삶 앞에서 우리 모두는 쓸쓸하다"라고 작가의 절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작품은 작가가 남길 영원한 분신이다. 파스칼의 '팡세'나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윤동주의 '서시'가 쉽게 사라지겠는가!

▲ '인생은 아름다워라'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73×91cm 2005
ⓒ 황주리

"인생은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아름답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괴로움이 없으면 즐거움이 없고 즐거움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지만 그러나 아름다움만큼은 절대적인 것이다. 그녀의 근작 중 최고 결작인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그래서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 크다. 후회 없는 삶을 더욱 동경하게 만든다.

5살에 그림과 인연을 맺고 이제 40여년 그녀의 삶은 온통 그림뿐이다. 그렇게 하나만 붙들고 정진하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그녀는 지금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순간순간 섬광처럼 번득이는 아름다움을 은행 통장에 저축하듯 쌓아 큰 물줄기를 이루는 작가, 그래서 우리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작가,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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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우리네 인생 담은 올망졸망한 돌멩이들, 황주리 세월展

 


▲ 작가 황주리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선이다.

즉, 나로 부터 발산되는 너그러움.

컬러든 흑백이든, 단 한번 뿐인 삶에 대한 너그러움이 그의 그림에 담겨있는 것이다.

또 전시 일정에 맞춰 화집 ‘앤드 라이프 고스 온’과 산문집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흑이 묻었다’도 펴내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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