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국화잎 베개/조 용미

조용한ㅁ 2009. 3. 17. 15:36

국화잎 베개/조 용미

 

 

국화잎 베개를 베고 누웠더니

몸에서 얼핏얼핏 산국 향내가 난다

 

지리산 자락 어느 유허지 바람과 햇빛의 기운으로 핀

노란 산국을 누가 뜯어주었다

그늘에 곱게 펴서 그걸 말리는 동안

아주 고운 잠을 자고 싶었다

 

하얀 속을 싸서 만든 베개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아픈 머릴 누이고 국화잎 잠을 잔다

 

한 생각을 죽이면 다른 한 생각이 또 일어나

산국 마른 향을

그 생각 위에 또 얹는다

 

몸에서 자꾸 산국 향내가 난다

나는 한 생각을 끌어 안는다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