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세심(洗心) / 具 常

조용한ㅁ 2010. 1. 10. 10:14

 



 

 

세심(洗心) / 具 常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걸레처럼 더럽고 추레한 내 마음을
그 물에 헹구고 빨아 보지만
절고 찌들은 땟국은 빠지지 않는다.

흐려진 내 눈으로 보아도 내 마음은
아직도 名利에 연연할 뿐만 아니라
음란의 불씨도 어느 구석에 남아있고
늙음과 病弱과 無事를 핑계로 삼아
태만과 안일과 허위에 차있다.

더구나 나는 이렇듯 강에 나와서도
세상살이 일체에서 벗어나기는커녕
俗情의 밧줄에 칭칭 감겨 있으니
어찌 그리스도 폴처럼 이 강에서
사랑의 화신을 만날 수 있으며
싯달타처럼 깨우침을 얻겠는가?

끝내 나는 僧도 俗도 못 되고
엉거주춤 이 꼬라지란 말인가?
오 오, 저 흐름 위에 어른거리는
천국의 계단과 지옥의 수렁!


 

'아름다운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감도/이상  (0) 2010.01.13
임종고백/구상  (0) 2010.01.10
저녁연기 같은 것  (0) 2010.01.07
눈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0) 2010.01.06
1월 - 오세영  (0) 2010.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