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와온에서

조용한ㅁ 2010. 4. 3. 13:06

 

 

 

 

 

 와온에서*
                 도 종환

내 안에도 출렁이는 물결이 있다
밀물이 있고 썰물이 있다
수만 개 햇살의 꽃잎을 반짝이며
배를 밀어 보내는 아침바다가 있고
저녁이면 바닥이 다 드러난 채 쓰러져
누워 있는 질척한 뻘흙과 갯벌이 있다
한 마장쯤 되는 고요를 수평선까지 밀고 가는
청안한 호심이 있고
제 안에서 제 기슭을 때리는 파도에
어쩌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래성이 있다
내 안에 야속한 파도가 있다
파도를 잠재우려고
바다를 다 퍼낼 수도 없어**
망연히 바라보는 밀물 들고 썰물 지는 바다
갯비린내 가득한 바다가





* 와온은 전라남도 순천만의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 ‘파도를 전부 퍼내고 바다를 편안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말은 보명사 성문스님 법문 중의 한 대목이다.

 

와온에서 / 나희덕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넣을 때,
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
지는 해를 품을 때,
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

해는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

도솔가를 부르던 월명노인아,
여기에 해가 셋이나 떴으니 노래를 불러다오.
뻘 속에 든 해를 조금만 더 머물게 해다오

저녁마다 일몰을 보고 살아온
와온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떨기꽃을 꺾어 바치지 않아도
세 개의 해가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찬란한 해도 하루에 한 번은
짠물과 뻘흙에 몸을 담근다는 것을 알기에

쪼개져도 둥근 수레바퀴,
짜디짠 내 눈동자에도 들어와 있다
마침내 수레가 삐걱거리며 굴러가기 시작한다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