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나도 바람이고 싶다/여행2

그곳에 가고 싶다 순천만

조용한ㅁ 2010. 4. 3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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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고랑에 스미는  순천만의 서러운 노을 속으로

바람이 데려다 주리라




[ 무채색 개펄을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인 칠면초 군락 ]

《전남 여수와 고흥 사이 순천만, 장흥과 해남 사이 강진만. 땅에 갇힌 좁은 물, 만(灣)을
끼고 있는 두 고을. 개펄 크고 들녘 넓어 먹을 것이 많고 인심도 넉넉한 남도의 ‘징’한 땅
이요 바다. 그곳에 풍성한 가을이 영글었으니 세상 길손 두루 그리로 발길 돌림에 무슨 이유
가 필요할까. 》

○ 하늘을 거역하지 않는 사람들의 땅 순천

아직 순천만을 보지 못한 그대. 이 땅의 아름다움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

키 넘긴 무성한 갈대숲, 그 안에 둥지 틀고 새끼 돌보는 물새, 바람 한 숨에도 일렁대는 은
빛 갈대의 유려한 물결. 혹시 석양의 황금빛에 물들라치면 무정한 남정네의 무쇠 솥 같은 무
심함도 그 갈대꽃 솜털 끝에 찬란히 부서지는 햇빛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데…. 그래서
순천만 갈대숲에서는 모두가 아름다워진다.






무채색 개펄을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인 칠면초 군락, 동그랗게 원형의 군락을 이룬 기하학
적 구도의 갈대밭, S자로 휜 갯골 물길의 수면에 작은 고깃배가 만드는 유려한 무늬의 아름
다운 파형, 그리고 하늘만큼 너른 바다와 땅만큼 거대한 개펄. 그 땅과 하늘을 동시에 물들

이는 찬란한 노을과 석양. 순천만에서 자연을 노래하지 않는 자, 그 자연을 즐길 자격도 없다.




[800만 평의 광대한 개펄에 70만 평이나 되는 갈대 군락지가 있는 자연생태의 보고 순천만.]

가을이 깊어 갈수록 푸른 갈대는 금빛으로 다시 피어난다.

갈대숲 속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는 나무판자 길. 그 길로 걷는 이는 행복하다. 바람에 이
는 갈대소리는 노래로 다가오고 하늘과 맞닿은 갈대숲 지평선이 그림처럼 펼쳐지기 때문이
다. 스님 두 분이 훠이훠이 갈대숲을 지난다. 운수납자의 비운 마음에도 순천만 갈대숲은 욕
심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순천에서 바다를 등지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용기 내어 등을 돌리면 또 다른 풍광이 나
그네의 눈 허기를 채워준다. 사방팔방이 산에 둘러싸여 마치 속세와 절단된 세상인 듯 자처
한 낙안읍성 마을의 고즈넉한 가을 풍경이 그것이다.




읍성의 성벽 위로 난 이 길. 세상 어디에 이만큼 내 발과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길이
또 있을까. 밤톨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지붕에는 호박이 누워있고 뒷마당 늙은 감나무
에는 까치밥으로 남긴 땡감 몇 개가 대롱거린다. 도회지에서 놀러 온 초등학생 아이들은 새
처럼 재잘대며 키 낮은 돌담 골목을 떼 지어 몰려다니고 관광객의 시선에는 이미 무뎌진 촌
로 몇몇은 집 앞 텃밭에서 무심히 땅을 고른다.




소슬한 바람에 가을이 깊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대. 더 늦기 전에 순천만으로 떠나라.
깊어가는 정취 속에 가을이 영그는 소리도 들을지 모를 일이니 더 늦기 전에 서두르자.

○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강진

강진에서 바다를 떼고는 하늘도 땅도 사람도 볼 수 없다. 그리 넓지도, 그리 깊지도 않은 바
다. 그래도 강진만의 개펄과 물은 이 바다 에두른 땅과 하늘, 사람을 두루 적시고 또 적신다.



[ 강진만 ]

그 바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흑산도로 유배 간 둘째형 약전(1758∼1816)을 그리워하
며 초당 옆 천일각에서 애타게 바라보던 그 바다다. 초당에 머물던 다산에게 차(茶)를 가르
쳐 주고 그와 경학을 논했던 만덕산 백련사의 혜장(1772∼1811) 스님이 달빛 고고히 내려앉
는 절마당의 느티나무 가지 너머로 느긋이 관조하던 그 바다다.




[ 만덕산 백련사 ]

다산이 강진에 유배된 것은 1801년. 이후 다산은 18년간 강진에 갇힌다. 그러나 그 갇힘은
새로운 열림으로 반전된다. 그는 이곳에서 인생 후반을 꽃피우는 일체를 준비하고 실행한
다. 첫 번째는 차를 배움이요, 두 번째는 500여 권의 저술을 남김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혜
장과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추앙되는 초의(1786∼1866) 스님, 그리고 추사 김정희
(1786∼1856)와의 교우다.




[ 다산초당-동암 ]

강진에서 다산의 발자취를 더듬자면 순서를 따름이 옳다. 그 초입은 다산유물전시관이다.
다산의 가계는 물론 강진 거주 역사와 저술까지 모든 것이 전시돼 있다. 다음은 다산초당. 18
년 유배 중 후반 10년을 보냈던 곳으로 500여 권의 저술이 예서 이뤄졌다. 전시관에서 걸어
갈 수 있다.

초당은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숲 속에 있다. 마을에서 걷자면 10분 거리. 숲
그늘 속에는 동암 서암 등 건물 세 채가 약천(샘물) 연지석가산(연못) 다조(차를 끓이던 바
위) 등의 유적과 함께 보존돼 있다.




[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 ]

강진만이 잘 보이는 누정 천일각은 여기서 스무 걸음 거리. 그 옆으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800m)이 열린다. 백련사(주지 법상 스님)는 다산에게 차를 가르쳐 준 혜장 스님이 주석
한 고찰. 만덕산 아래 깊은 차나무 숲이 절의 배후고, 그 산자락이 살며시 잦아드는 강진만
이 정면에 펼쳐진 풍광 멋진 사찰이다.




[ 둥지식당의 상차림 ]

다산도 좋지만 강진에서 한정식 한 상차림을 거덜내지 않으면 그 여행 역시 무효다. 누구나
군침 흘리는 남도 한정식 가운데서도 강진의 상차림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강진만
큼 땅과 바다에서 나는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강진세무서 건너
편 골목 안에는 한정식 식당이 즐비한데 둥지식당의 2만 원(1인당)짜리 정식상은 평생 기억
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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