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시월 / 황동규

조용한ㅁ 2010. 8. 31. 10:08

 




 
시월 / 황동규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
가 뿌려와서 ……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1958년 <시월><즐거운 편지> 현대문학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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