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 귀뚜라미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
노래 안치환 - 귀뚜라미
'아름다운글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의 시...문병란 (0) | 2010.09.07 |
---|---|
이 슬·1 (0) | 2010.09.07 |
시월 / 황동규 (0) | 2010.08.31 |
어처구니 사랑 - 조동례 (0) | 2010.08.30 |
가시나무새의 슬픈 사랑이야기 - 나태주 (0) | 2010.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