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나희덕 / 귀뚜라미

조용한ㅁ 2010. 8. 31. 10:11

 




 

 

 

나희덕 / 귀뚜라미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 



노래 안치환 - 귀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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