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찬비 내리고 - 나희덕

조용한ㅁ 2010. 9. 13. 00:29

 


찬비 내리고 - 나희덕 
- 편지1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붙잡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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