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화

이수동님 그림에 詩를 붙이다

조용한ㅁ 2011. 2. 5. 10:43

이수동님 그림에 詩를 붙이다

 

 
살아온 날들이 지나갑니다 아! 산다는 것
사는 일이 참 꿈만 같지요 살아오는 동안 당신은
늘 내 편이었습니다 내가 내 편이 아닐 때에도 당신은
내 편이었지요 어디에서 그대를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는데
이제, 어디에서 기다려도 그대가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용택...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흰 꽃 곁을 그냥 지나쳤네 한참을 가다 생각하니

매화였다네 돌아가서 볼까 하다 그냥 가네

너는 지금도 거기 생생하게 피어있을지니

내 생의 한 때 환한 흔적이로다.

(김용택...生生)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나무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강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산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질 때 나무와 산과 강에게로 걸어가는 일은 아름답다
해가 질 때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다
(김용택...연애 1)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마종기...전화)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겨울같이 단순해지기로 했다
창밖의 나무는 잠들고 형상의 눈은
헤매는 자의 뼈 속에 쌓인다
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빈 들판같이 살기로 했다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썩어서 목마른 자의 술이 되게 하고
자라지 않는 사랑의 풀을 위해 어둡고 긴 내면의 길을
핥기 시작했다
(마종기...그림 그리기)
 
 
슬픔의 사랑스러움 예감의 사랑스러움
귓속에 가득차는 소리의 사랑스러움
발정의 사랑스러움
사원의 호수와 요리, 혹은 십년전 명륜동 목욕탕 수증기
종소리와 숲의 전경, 혹은 서울근교의 은행나무 이끼
정경의 아름다움 환청의 아름다움
밤늦게 끝까지 들리는 발정의 아름다움
(마종기...피아니스트 페라이어)
 
 
겨우내 돌보지 않던 뜰에서
튤립 줄기가 자란다
오래 잊고 지내던 여인이
싱싱한 풀향기로 내게 온다
(마종기...봄)
 
 
흰 배경으로 두마리 흰 새가 날아올랐다
새는 보이지 않고 날개 소리만 들렸다
너는 아니라고 고개를 젓지만
나도 보이지 않게 한 길로만 살고 싶었다
이 깊고 어려운 시절에는
말하지 않아도 귀는 듣고
서로 붙잡지 않아도 손은 젖는다
(마종기...피아니스트 폴리니 연주회)
 
 
내가 한 십 년
아무것도 안하고 단지 시만 읽고 쓴다면 즐겁겠지
내가 겨울이 긴 산속 통나무 집에서 장작이나 태우며
노래나 부른다면 즐겁겠지
당신에게 쌓이고 쌓인 모든 발걸음이
이제는 다만 아픈으로 남을지라도 즐겁겠지
십 년쯤 후에는 그 흙이 여물어
내가 만약 질 좋은 시인이 된다면
(마종기...내가 만약 시인이 된다면)
 
 
비가 그치면서 시가는 안개로 덮였다
길고 어두운 우리들의 중년이
방향 없이 그 속을 날고 있었다
- 소소한 것은 잊으세요
- 중년의 긴 꿈은 무서워요
-멀리 보지 마세요
-중년의 절망은 무서워요
(마종기...중년의 안개)
 
 
하얀 탱자꽃 꽃잎은 하나 둘 셋 넷 다섯 장입니다
푸른 보리밭에 아침 이슬이 반짝입니다
밭 언덕에 물싸리꽃은 오래된 무명 적삼처럼 하얗게 피었습니다
세상을 한참이나 벗어 나온 내 빈 마음 가장자리 부근에
꿈같이 환한 산벚꽃 한 그루 서늘합니다
산이랑 마주 앉을까요 돌아서서 물을 볼까요...
(김용택...그대 생각1)
 
 
꽃이 필 때까지 꽃이 한 송이도 남김없이 다 필 때까지
꽃이 질 때까지 꽃이 한 송이도 남김없이 다 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꽃잎이 날아갑니다
그대 생각으로 세월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깊어질 대로 깊어진 그 세월 속을 날아가던 꽃잎들이
그대에게 닿았다는 소식 여태 듣지 못했습니다
(김용택...그대생각2)
 
 
내 안에 이렇게 눈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이에요 당신에게 나는
이 세상 처음으로 한송이 꽃입니다
(김용택...당신의 꽃)
 
 
그대 없이는 나 없는지 그대 없을 때 알았습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바람이 불고
새가 울었습니다 바람이 부는 그 길고 긴 시간
그대를 기다리는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달이 뜨고 꽃이 피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그 길고 긴 시간
그대 없이 나 없는지 그대 없을 때 알았습니다
(김용택...그대 없을 때)
 
 
저기 저 꽃 피는 것 보니 당신이 오시는 줄 알겠습니다
저기 저 꽃 지는 것 보니 당신이 가시는 줄 알겠습니다
한 세월 꽃을 보며 즐거웠던 날들 당신이 가고 오지 않아도
이제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줄 알겠습니다
(김용택...세월이 갔습니다)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김용택...꽃 한 송이)
 
 
이 세상에 당신이 있어 내가 행복한 것처럼
당신에게 나도 행복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아무리 돌아서도 당신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당신이 아무리 돌아서도 나는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김용택...당신의 앞)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숲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
차곡차곡 솔잎 쌓인 고요한 그 숲길에서
오래 이룬 단하나 단 한번의 사랑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랑입니다
(김용택...단 한번의 사랑)
 
 
검은 산 하얀 달
저 달은 가며 날 보라 하고
어둔 산 하얀 꽃 저 꽃은 지면서
이 적막을 견뎌보라 하네
나 혼자 견뎌보라 하네
(김용택...이 적막에)
 
 
강가에 보라색 붓꽃이 피었습니다
산그늘 내린 강길을 걸어 집으로 갑니다
나는 푸른 어둠 속에 피어 있는 붓꽃을 꺾습니다
아 서늘한 이 꽃 그대 이마 같은 이 꽃 나를 바라보던
그대 눈 속 같은 이 꽃 내 입술에 닿던 그대 첫입술 같던 이 꽃
물 묻은 손 치마에 닦으며 그대는 꽃같이 웃으며
꽃을 받아듭니다
(김용택...집)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왔는지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로 갈른지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사랑에는 길이 없다
나는 너에게 눈 멀고
꽃이 지는 나무 아래서 하루해가 저물었다
(김용택...그 나무)
 
 
어느 봄 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해도
참.좋.은.당.신
(김용택...참 좋은 당신)
 
 
당신...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보다 더 따뜻할 수 있는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이 있을 리 없겠지요
당신...
(김용택...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김용택...빗장)
 
 
사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요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내 사랑을 이끌어낼 사람
어디 있을라구요
(김용택...내게 당신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말과 당신의 글이
내 마음과 내 말과 나의 글입니다
(김용택...편지)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 나무 한 잎 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말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오규원...한 잎의 女子)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병신 같은 女子, 시집 같은 女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오규원...한 잎의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女子.
(오규원...한 잎의 女子)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 이름을 불러 보리라
(황동규...즐거운 편지)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짝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즐거운 편지)
 
 
분홍지우개로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웁니다
설레이다 써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씩 조금씩 지워나갑니다 그래도 지운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생각 분홍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그 생각의 끝을 없애려고 눈을 감아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습니다
(이하석...분홍지우개)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이성복...서시)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몸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
(이문재...노독)
 
 
오늘 밤에는 네 꿈을 꾸고 싶다
절대로 안된다고 떼쓰지 마라
정말 꿈이란 어딜 가나 지름길이다
꿈만 꾸고서도 하늘까지 갔다 온 기쁨
내일 밤에도 네 꿈을 꾸고 싶다
(이생진...꿈을 꾸고 싶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에게 길고 긴 머리카락이 있다면
저 산안개처럼 넉넉히 풀어헤쳐
당신을 감싸리라
(류시화...산안개)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류시화...나무)
 
 
내 몸에서 마지막 피 한방울
마음의 여백까지 있는대로
휘몰아 너에게 마구잡이로
쏟아져 흘러가는
이 난감한
생.명.이.동
(신달자...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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