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화

이수동의 그림 이야기

조용한ㅁ 2010. 8. 29. 07:42

 

이수동 화가


이수동의 그림 이야기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나무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강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산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질 때 나무와 산과 강에게로 걸어가는 일은 아름답다 
해가 질 때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다 
김용택.. 연애 1 


이수동의 그림 이야기



슬픔의 사랑스러움 예감의 사랑스러움 
귓속에 가득차는 소리의 사랑스러움 
발정의 사랑스러움 
사원의 호수와 요리, 혹은 십년전 명륜동 목욕탕 수증기 
종소리와 숲의 전경, 혹은 서울근교의 은행나무 이끼 
정경의 아름다움 환청의 아름다움 
밤늦게 끝까지 들리는 발정의 아름다움 
마종기.. 피아니스트 페라이어 


이수동의 그림 이야기



흰 배경으로 두마리 흰 새가 날아올랐다 
새는 보이지 않고 날개 소리만 들렸다 
너는 아니라고 고개를 젓지만 
나도 보이지 않게 한 길로만 살고 싶었다 
이 깊고 어려운 시절에는 
말하지 않아도 귀는 듣고 
서로 붙잡지 않아도 손은 젖는다 
마종기.. 피아니스트 폴리니 연주회 


이수동의 그림 이야기



내가 한 십 년 
아무것도 안하고 단지 시만 읽고 쓴다면 즐겁겠지 
내가 겨울이 긴 산속 통나무 집에서 장작이나 태우며 
노래나 부른다면 즐겁겠지 
당신에게 쌓이고 쌓인 모든 발걸음이 
이제는 다만 아픈으로 남을지라도 즐겁겠지 
십 년쯤 후에는 그 흙이 여물어 
내가 만약 질 좋은 시인이 된다면 
마종기.. 내가 만약 시인이 된다면 


이수동의 그림 이야기



비가 그치면서 시가는 안개로 덮였다 
길고 어두운 우리들의 중년이 
방향 없이 그 속을 날고 있었다 
- 소소한 것은 잊으세요 
- 중년의 긴 꿈은 무서워요 
- 멀리 보지 마세요 
- 중년의 절망은 무서워요 
마종기.. 중년의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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