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비
그 한 페이지는 하늘의 넓이와 같고 그 내용은 신이 태초에 써놓은 말씀이라고 한다 벌레의 시간과 우화의 비밀이 다 그 안에 있으나 장주莊周도 그것이 꿈엣 것인지 생시엣 것인지 알지 못하고 갔다 한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더 보태어 말하랴... 꽃과 더불어 놀고 꿀과 이슬을 먹고 산다 하는 전설도 있다 지금 내 앞에 페이지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저 책을 보고 천박하게도 내 곁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 한 여자의 생을 떠올리고 어깨를 들먹이며 잠시 흐느꼈으니 필시 저 책이 나를 들었다 놓은 것이다 책이 나를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저 책이 얼마나 크고 두꺼운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 복효근 |
<蝴蝶之夢(호접지몽):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되다>
昔者(석자) 莊周夢爲蝴蝶(장주몽위호접)
어느 날 장주(莊周)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栩栩然蝴蝶也(허허연호접야)
훨훨 날아 다니는 나비가 되어 즐거울 뿐,
自喩適志與(자유적지여) 不知周也(부지주야)
자기가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다.
俄然覺(아연각) 則蘧蘧然周也(즉거거연주야)
얼마 후 문득 꿈에서 깨어보니, 자신은 틀림없는 장주였다.
不知周之夢爲蝴蝶與(부지주지몽위호접여)
그러니 장주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蝴蝶之夢爲周與(호접지몽위주여)
아니면 그 나비가 꿈을 꾸면서 장주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周與蝴蝶(주여호접) 則必有分矣(즉필유분의)
하지만, 장주와 나비는 분명히 뚜렷한 구별이 있다.
此之謂物化(차지위물화)
이를 일러 사물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다.
*꿈 속의 나비와 깨어난 후의 장주는 분명히 별개의 존재이다. 그러나 장주는 꿈과 깨어있음의 구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만물유전의 이치상 현실과 꿈, 나비와 나 사이에 절대적인 선을 그을 수 없다고 본다. 만일 우리가 이런 점을 깨닫게 된다면 괴로움의 근원인 자아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이 나비의 꿈은 후세 문학인과 예술인들에게 꺼질 줄 모르는 영감(靈感)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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