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비
그 한 페이지는 하늘의 넓이와 같고 그 내용은 신이 태초에 써놓은 말씀이라고 한다 벌레의 시간과 우화의 비밀이 다 그 안에 있으나 장주莊周도 그것이 꿈엣 것인지 생시엣 것인지 알지 못하고 갔다 한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더 보태어 말하랴... 꽃과 더불어 놀고 꿀과 이슬을 먹고 산다 하는 전설도 있다 지금 내 앞에 페이지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저 책을 보고 천박하게도 내 곁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 한 여자의 생을 떠올리고 어깨를 들먹이며 잠시 흐느꼈으니 필시 저 책이 나를 들었다 놓은 것이다 책이 나를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저 책이 얼마나 크고 두꺼운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 복효근 - |
어느날 장자는 제자를 불러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내가 어젯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철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불현듯 꿈에서 깨었다.
깨고보니 나는 나비가 아니라 내가 아닌가?
그래 생각하기를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때는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꿈에서 깨고보니 분명 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알쏭달쏭한 스스의 이야기를 들은 제자가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의 이야기는 실로 그럴듯하지만 너무나 크고 황당하여 현실세계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자 장자가 말하기를,
"너는 쓸모있음과 없음을 구분하는 구나. 그러면 네가 서있는 땅을 한번 내려다보아라. 너에게 쓸모 있는 땅은 지금 네 발이 딛고 서 있는 발바닥 크기만큼의 땅이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너에게 쓸모가 없다. 그러나 만약 네가 딛고 선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땅을 없애버린다면 과연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작은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겠느냐?"
제자가 아무말도 못하고 발끝만 내려다보고 있자 장자는 힘주어 말했다.
"너에게 정말 필요한 땅은 네가 디디고 있는 그 땅이 아니라 너를 떠받쳐주고있는, 바로 네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나머지 부분이다."
장자의 꿈이야기와 장자의 사상을 같이 살펴보면,
장자는 꿈도 현실도, 삶도 죽음도 구별이 없는 세계를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생각하는 것도 한낱 만물의 변화상에 불과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즉, 외물과 자아의 구별이 없는 세계를 강조함을 뜻합니다.
오늘날에는 이 꿈을 인생의 덧없음에 비유하여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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