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나도 바람이고 싶다/여행2

평화누리길

조용한ㅁ 2013. 1. 22. 11:08

연천의 '평화누리길'도 참 걷기 좋은 길이다. 평화누리길은 경기 북부 DMZ 인근 지역을 연결한 길이다. 김포와 파주, 연천에 각 코스가 조성돼 있고 전체 길이만 182.3㎞에 달한다

이 가운데 연천구간은 파주의 황포돛배에서 시작해 신탄리역까지 62.2㎞에 이르는 3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는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연천구간에서 가장 손꼽히는 길은 21.8㎞의 둘째길 코스다. 숭의전에서 출발해 고구려 보루 숲길, 군남홍수조절지까지 이어진다. 구석기 인류가 생활했던 임진강을 끼고 걷는 이 길은 먼 옛날 화산의 용암이 흘러내리며 조각해 놓은 멋드러진 주상절리를 따라 걷는다. 때로는 자연에 위대함을 감탄케 하고, 때로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길이다.

시작은 임진강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아미산 자락 숭의전이다. 숭의전은 조선 태조가 고려 태조 왕건과 현종, 문종, 원종 등 4명의 왕과 고려 충신 16명을 봉향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야트막한 언덕의 구릉에 위치해 있으며 수령 570년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사당을 포근하게 감싸며 지키고 있다.

이 길을 따라 20~30분정도 걷다보면 고려시대 당포성에 닿게 된다. 당포성은 임진강 본류 13m 높이의 주상절리 위에 쌓은 고구려 성곽이다. 사실 임진강과 한탄강은 전쟁으로 점철된 아픔의 강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했고, 거란과 몽골이 침입했으며 지금은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 연천에는 당포성외에도 은대리성, 호로고루 등 고구려 성곽유적이 곳곳에 있다.

당포성에서 조금만 가면 길가에 연천유엔군화장장시설을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중에 사망한 유엔군의 시신을 화장했던 곳으로 지금은 폐허가 돼 있지만 가장 중요한 화장장 굴뚝이 남아 있어 당시 한국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둘째길 코스 (21.8㎞ 6시간 가량 소요)
숭의전 → 당포성 → 동이리대대 → 주상절리 → 물새롬센터 → 무등리고구려보루길 → 허브빌리지 → 북삼교 → (겸재 정선 웅연계람 배경지) → 군남홍수조절지(두루미테마파크

 

 

◆30만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37번 국도를 타고 파주를 지나 연천에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는 게 연천군 전곡읍 선사로의 한탄강 관광지다. 한탄교와 사랑교 사이 1.5㎞ 구간에 펼쳐진 수변 관광지인 한탄강 관광지는 1970년대 서울 청량리에서 주말 임시열차를 띄웠을 만큼 인파가 몰렸던 곳. 지금은 캐러밴 25동, 캐빈하우스 16동, 캠핑 사이트 86개소를 갖춘 국제 규격의 캠핑 명소로 탈바꿈했다.

한탄강 관광지를 지나면 곧바로 전곡리 선사유적지(사적 제268호)를 만나게 된다.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4점의 석기를 우연히 발견해 김원용 서울대 교수에게 알리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유적지로 부상했다.

이곳에서 발굴된 구석기는 석기의 양면을 가공해 다듬음으로써 찍고 자르는 기능을 모두 갖춘 아슐리안 주먹도끼였다. 이는 구석기문화가 단순한 형태인 찍개를 사용한 동아시아 지역과 보다 발달된 형태인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사용한 유럽 및 아프리카 지역으로 구분된다는 미국 고고학자 모비우스 교수의 ‘구석기 이원론’을 뒤집었다.

◆강따라 펼쳐진 직벽의 주상절리

임진강 주상절리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는 길이 1.5㎞의 거대한 주상절리가 임진강을 따라 펼쳐져 있다. 한눈에 보이는 길이만 1.2㎞여서 국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주상절리 하면 제주 서귀포 주상절리를 떠올리기 쉽다. 서귀포 주상절리는 바다 위로 솟은 육각형 모양이 뚜렷한 데 비해 임진강 주상절리는 칼로 내리친 듯한 직벽이다.

조산 활동이 활발했던 신생대 4기(170만~1만년 전)에 철원에서 평강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 지방에는 현무암질의 용암이 분출해 용암대지를 이뤘다. 이후 하천에 의해 침식되면서 추가령에서 전곡리에 이르는 120㎞의 주상절리대가 형성됐다. 연천의 임진강과 한탄강~차탄천의 주상절리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몽글몽글한 돌이 끝도 없이 깔린 강변에서 거대한 성벽처럼 버티고 선 주상절리와 그 직벽에 돋아나는 푸른 잎들을 보니 자연의 위대한 창조활동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차탄천의 주상절리는 기둥모양이 부러지거나 닳아서 몽당연필을 묶어놓은 듯하다. 지금은 몽당연필 같은 주상절리 위를 밟고 다닐 수 있지만 보호구역을 설정해 보존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고구려성을 만나다

남한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유적 93개소 가운데 63개소가 임진강·한탄강 유역, 양주분지 일원, 아차산 일대 등 경기 북부 지역에 분포한다. 그중 임진강·한탄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은 덕진산성만 빼고는 모두 연천군에 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임진·한탄강 유역의 북안에 있는데 여울목, 나루터 등 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천은 서해의 뱃길을 이용하지 않고 육로를 통해 평양과 서울을 연결하는 최단거리상의 교통 요지다. 임진·한탄강을 따라 수십㎞에 걸쳐 15~20m의 강안 절벽이 형성돼 있어 강을 건널 수 있는 요충지를 장악하면 신라와 백제의 분진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모습을 짐작케 하는 유적이 미산면 동이리의 당포성과 장남면 원당리의 호로고루성, 전곡읍 은대리의 은대리성이다. 주상절리와 가까운 당포성은 6세기쯤 반도로 남진한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 맞서 세운 전술 성곽이다. 강 위로 불끈 솟은 높은 자연 지형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쌓은 천연 성곽으로 파주, 동두천 일대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는 형세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릉도 연천에 있다.

다음 목적지는 고려와 조선으로 흘러간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공양왕의 동생 왕우와 두 아들에게 경기도의 마전(지금의 연천 미산면 일대)을 내리고 태조 왕건,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 등 8대 왕의 위패를 모신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후 유교적 잣대에 따라 제례 대상이 축소돼 태조, 현종, 문종, 원종 4왕과 신숭겸, 정몽주 등 고려 충신 16인을 모신 제례를 지금껏 지내는 곳이 바로 숭의전(崇義殿)으로 임진강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미산면 산자락에 있다.

조선시대 황실 가옥인 염근당 역시 연천에 보존되어 있다. 고종의 영손인 황족 이근(李芹)의 고택인 염근당은 19세기 전통 황실 가옥으로 원래 서울 명륜동에 있던 것을 지난해 이곳 연천 자은산 기슭으로 이건했다. 건축양식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 목재와 기와, 주춧돌, 기단석, 토방돌까지도 그대로 사용해 지었다.

◆DMZ와 평화누리길

연천군은 경기도 최북단의 DMZ 인근 지역을 걸을 수 있는 평화누리길 3개 코스를 개발해 놓았다. 황포돛배~숭의전~군남홍수조절지~신탄리역을 잇는 코스다. 평화누리길을 걷노라면 임진강 주상절리와 당포성, 겸재 정선의 국보급 그림 ‘웅연계람’의 배경이 된 풍경까지 볼 수 있다. 연천군 문화관광과(031-839-2061)에 미리 신청하면 북한 땅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열쇠전망대를 기점으로 1㎞ 길이의 철책선을 따라 걷는 철책체험도 할 수 있다.

연천은 수도권에 속하면서도 전혀 수도권답지 않은 지역이다. 행정구역(696㎢)이 서울(605㎢)보다 넓지만 9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파주 포천 등 인근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덜 된 탓에 연천군민들은 불편하겠지만 자연을 음미하는 여행자에겐 다행이라고 할까.

2012-06-14 09:05 | 출처 : 본인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