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사과
신화에서는 파리스 왕자가 내리는 월계관으로 황금사과를 이용했고
성서에서는 유혹의 사과로 이용하여 인간을 낙원에서 내쫓았고
물리학자에게는 만유인력을 발견하도록 그 실마리로 내비쳤고
화가에게는 자기를 통하여 입체의 관렴을 표현하도록 요구했으며
요술마귀할멈에게는 자기에게 독약을 넣어 백설공주를 죽이도록 인도했으나
프랑스 초등학교 셈본선생은 분수 " 2분의 1" 을 가르켜야 했을때
사과 한알을 학생들 앞에서
반으로 뚝 잘라보이며
이것이 " 2분의 1 이다" 했습니다.
사과와 오렌지 (1895~1900)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역사상 세 번째로 유명한 세잔의 사과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에와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다.
이브는 인류 최초의 ‘팜 파탈’이다. 남자를 유혹하고 파괴하는 요부(妖婦) ‘팜 파탈’ 이미지는 성서의 ‘창세기’에서 비롯된다. 뱀의 꾐에 넘어가 사과를 따 먹은 이브는 아담에게도 권한다. 아담은 사과를 든 채 망설인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에덴동산의 금기를 깨고 선악과를 먹은 두 사람은 알몸의 수치감과 선과 악, 삶과 죽음의 차이도 알게 된다. 인식의 분별력과 원죄설(原罪說)이 눈뜨는 순간이다.
▷사과는 지중해 문명사에서도 중요한 상징이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제우스에게 사과를 던져 주며 ‘최고의 미인에게 주라’고 주문한다. 당황한 제우스는 트로이 왕의 아들 파리스에게 사과를 건네며 책임을 회피한다. 아프로디테가 ‘그 사과를 주면 최고의 미인 헬레나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를 납치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그리스 함대가 트로이와 싸운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다. 그리스가 지중해상에서 절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서양의 교통요지였던 트로이를 함락했기 때문이다.
▷‘사과’ 하면 뉴턴의 사과도 빼놓을 수 없다. 우주를 거대한 기계라고 생각했던 그는 떨어지는 사과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한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힘이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힘, 인간이 우주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 것이 모두 만유인력 때문이라는 학설이다. 우주가 신성이 아닌 만유인력으로 가득 찬 곳이라니. 신에 대한 회의는 인간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단지 생각하는 기계란 말인가.
▷세잔은 뉴턴의 사과를 부정한다. 그는 사과가 있는 정물화를 통해 불확실성에 의한 다층적 시간과 공간을 표출해 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보다 15년이나 앞서 무질서하게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세잔의 사과가 상징하는 혼돈과 불확실성은 21세기에도 유효한 화두(話頭)다. 인류의 문명사를 바꾼 사과. 사과는 배설작용에 좋고 고혈압을 막아 주는 과일이기도 하다.
미술사상 중요한 세잔느의 사과는 과일을 그렸다기보다 세잔느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평범한 과일을 통해 그가 찾고자 했던 건 화가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다.
그에게 사과는 성취할 수 있는 도구이면서 진실한 우정을 상징한다.
세잔과 작가 에밀 졸라와의 우정은 사과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녔다. 지금 같으면 동급생들에게 왕따를 당할 만큼
병약한 졸라를 키가 크고 힘이 센 세잔느가 친구들로부터 보호해 준 것이다.
고마움에 졸라는 세잔느에게 사과 하나를 선물한다.
이를 계기로 평소 소극적이었던 세잔은 에밀 졸라와 더욱 친해지면서 활발하게 시와 예술을 논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법률가로 성공을 원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1861년 세잔은 파리로 나와 모네, 드가, 르느와르 등과 사귀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인생을 살게 된다. C.피사로의 영향으로 1872년 경부터 인상주의 회화에 관심을 갖게 되나, 70년대 말에는 오히려 인상주의 화가들이 몰두 했던 광선과 색채 변화에 대한 추구가 형태와 구성을 말살 시키는 행위로 간주 하였고, 결국 인상파와 멀어지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이러한 전향은 그를 인상주의를 뛰어넘어 후기 인상주의의 탄생을 주도하게 하였고, 야수파와 입체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20세기 회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원천을 제공하게 된다.
당시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사과는 찰나의 빛과 그에 따라 변하는 외관을 쫓는 구성으로만 그려졌다. 하지만 세잔의 사과에는 그러한 순간적인 구성은 없어 보인다. 대신 그의 가슴속에 있는 불타는 색채 감각을 가는 필촉으로 여러 번 덧칠하여 화폭에 새로운 질서를 성립해 냈으며, 소재가 왜곡되더라 할지라도 순간순간 변화하는 현실의 사과와는 다른 영원히 변치 않는 매우 훌륭한 또 다른 사과를 그림으로 창조해 내었다.
즉, 세잔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림은 결코 실제의 사과를 그릴 수 없다는 점"이라는 명제가 필요한 것이다. 세잔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물의 형태를 그리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색을 그대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색을 이루는 많은 조각들을 수없이 계산된 부분 부분에 적용해서 입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또한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그는 전통적인 명암법을 포기하고 인위적인 명암을 만들었다. 더구나 세잔은 형태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이를 왜곡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세잔의 작품에 나타나는 사물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세잔의 사과가 딱딱하고 맛없어 보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세잔은 사물이 갖는 실제적인 명암이나 색채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폭 위에 나타나는 이 소재들은 실재감과 완벽한 형태감을 자랑한다. 이는 현대 회화의 발전을 예고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고, 세잔을 20세기 회화의 선구자로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어.'
사과그림에서 그는 다양한 색채와 배열을 통해 관조적인 것에서
감각적이고 황홀한 것까지 보다 광범위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정물을 가지고 이처럼 표현력 강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했다는
사실은 세잔의 유년에 어떤 고착된 아이디어가 무의식에 뿌리내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는 말에서 우리는 사과에 대한
세잔의 집착이 유별난 것임을 알 수 있다. / 마이어 샤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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