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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그림들/외국의화가의 작품

도미에

'가르강튀아'란 풍자 문학가인 프랑수와 라블레가 중세 말기의 봉건주의와 가톨릭 교회를 풍자하기 위해 창조해낸 거인이자 대식가로서 식욕뿐만 아니라 체력·지식욕이 뛰어난 괴물과 같은 사람이다. 도미에는 프랑스의 왕인 루이 필립을 탐욕스런 가르강튀아로 비유했다. 당시 왕의 얼굴을 그릴 수 없었기에 왕의 얼굴을 닮은 '서양 배(배는 바보·멍청이·얼간이를 뜻했다)'로 왕을 대체하였고, 가르강튀아의 혀는 민중을 착취해 제 배를 채우기 위한 '컨베이어 벨트'처럼 묘사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르 카르카티르>‘紙는 폐간되고 도미에는 6개월간 투옥된다.

 

 

 

오른편에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는 삼색기가 펄럭이지만 외발의 한 남성은 그의 삶을 마감하려한다. 1830년 7월 혁명의 결과 루이 필립이 시민의 왕, 평등왕을 사칭하며 또다시 왕위에 오르지만 그 역시 민중이 바라던 정치를 하지는 않는다. 정당포 선전지로 만든 외투를 걸치고 ‘최후의 수단’이라 쓰여진 돌을 매달고 세느 강에 뛰어들려는 남자의 모습은 당시 민중들의 절망적인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같은 해 들라크르와가 발표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루이 필립이 구입했다고 한다.

 

 

 

 

도미에는 해학적 표현으로 인물의 성격을 포착한 소형 초상조각들을 여러 점 제작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샤를 필리퐁은 당대에 이름을 떨치던 풍자화가다. 오베르 출판사를 열고 1831년 주간지<라 카르카튀르>誌를 창간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잡지에 가르강튀아를 게재했던 도미에는 500프랑의 벌금을 물었고 잡지도 폐간되고 만다. 하지만 역시 그가 창간한 일간지〈샤리바리 La Charivari>를 통해 도미에는 끈질기게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게재해 나간다.

 

 

 

도미에는 보수당의 지도적인 대의원들 45명의 모습을 채색 테라코타로 제작했다. 그중

37점이 남아 1925년 브론즈로 전환시켰다. 기욤 귀조(1797~1874)는 하원의원을 지내다 후에 7년 동안 각료회의의 의장을 맡았던 정치인이다. 잠깐 동안 주물럭거려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타고난 뎃생력은 대상의 성격을 마치 그의 캐리커쳐처럼 순식간에 점토 위로 옮겨놓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청동으로도 복제되어 있다.

 

 

이 판화는 1834년, 4열의 반원형 의회석에 앉은 프랑스 입법의회 의원 35명의 의원들 모두를 담고 있다. 극장과도 같은 공간에 거만하고 탐욕스럽게 모여 앉은 의원들은 그들이 대변해야할 시민들의 문제에는 아랑곳 않고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야합할 뿐이었다. 당시<La Tribune>紙의 편집장 아르말 마라는 “우리가 얼나나 이 매음굴에 속아왔고 조롱당해왔는가”라고 기고하여 의원들로부터 제소 당한 결과 패소하였다. <르 샤리바리>지의 발행인 샤를 필리퐁은 이 작품을 <입법부의 배 , Ventre legislatif>라 불렀다.

 

 

 

프랑스 리용에서 파업을 일으킨 견직공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들이 리용의 트랑스노냉 거리를 비롯하여 리용 시내 세 곳을 점령하였다. 이어 정부군들의 학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살상을 당했으며, 도미에는 아침 햇살이 닫힌 덧문 사이로 방바닥에 얼룩진 핏자국을 비추고 있는 장면을 그려 <이 달의 석판화 모음집>에 실었다. <입법부의 배>와 함께 새로운 사실주의를 예시하는 초기작품으로 간주된다.

 

 

 

도미에의 그림에서 배는 루이 필립을 나타낸다. 왼편의 모습은 집권 이전으로 유순한 듯 보였지만 막상 집권하자 찌푸리고 있고, 미래로 가면 더 이상하게 변한다. 루이 필립은 공화주의자들의 지지로 왕위에 올랐지만 상층 부르주아지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등 앙시엥리즘으로 복귀는 민중들의 마음을 떠나게 했다. 결국 하층 부르주아지와 노동자들은 폭동과 테러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고 이에 가혹한 폭력으로 억누르며 독재자로 변해갔다. 결국 1848년 2월 혁명으로 75세의 루이 필립은 왕위에서 쫒겨난다. 183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루이 필립의 운명을 예견한 듯하다.

 

 

 

 

 

1848년 2월 혁명의 결과 루이 필립의 18년 통치가 막을 내렸지만 혁명 중 치러진 보통선거에서 온건공화파가 의회를 독점한다. 루이 필립의 퇴위와 제 2공화정의 출범에 고무된 도미에는 공화국을 어린 자식들에게 수유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법.. 어이없게도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공화정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그는 3년 만에 입법의회를 해산하고 삼촌이 했던 대로 스스로 황제가 된다. 아직 프랑스 국민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2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고 도미에의 운명은 그들의 등불이 되는 것이었다.

 

 

 

 

 

 

 

 

 

어떤 비극도 반복되면 비장함을 잃어버린다. 연극무대 아래에 마련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반복되는 무대 위의 비극에 이미 식상한지 오래다. 어떤 이는 졸고 있고 어떤 이는 무료함에 하품을 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혁명의 열기.. 언제나 그 열매를 가로채는 파렴치한 지배집단.... 48년 집권한 나폴레옹 3세는 급기야 제정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놓았지만 무기력한 프랑스인들은 그저 바라만 볼뿐...

당시의 상황을 판화로 풍자한 도미에의 감각이 절묘하다.

 

 

 

은퇴시기를 넘긴 듯한 레슬러가 휘장 뒤에서 경기 중인 선수들을 바라다본다. 아주 오랫동안 저 경기장에서 청춘을 보냈다. 때로 가슴 아픈 패배가 있었고 전율을 느끼게 했던 승리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뿐. 언제나 결과를 알 수 없는 새로운 경기들이 그 앞에 다시금 나타났다. 다시 저 경기장으로 나가야하겠지.. 하지만 내키지 않는 이유는 뭘까?

도미에의 경기는 이후로도 26년간 더 지속된다.

 

 

 

 

 

 

 

 

 

1860년대의 비좁고 열악한 열차 한켠을 묘사한 그림으로 당시 사회의 갈등구조가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에게 공통된 것은 서로가 같은 열차로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점일 뿐.. 몸은 섞여 있으면서도 서로 남을 의식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생각 속에 빠져있다. 평생 프랑스 근대사회의 모순에 대해서 비판의 시각을 놓지 않았던 도미에는 사회적 사실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등열차>의 승객들은 사생활을 고려한 듯 공간이 나뉜 열차 안의 사람들은 행색부터 다르다. 혹여 있을지 모를 서로에 대한 접촉을 염두에 둔 사람들은 전부 장갑을 끼고 있다. 쾌적한 일등열차이지만 막연히 느껴지는 결핍감은 지울 수 없다. 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유대감도 인간적인 관계를 찾아볼 수 없다. 무심하게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창가의 승객과 읽을거리에 몰두한 여성 그리고 할 일 없이 앉아있는 노신사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을 뿐, 모두 고독한 개인이다.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시선의 각도를.....

 

 

 

 

도미에에게 법조인들이란 지배권력에 기생하는 직업인으로 밖에는 달리 판단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최초의 성문헌법인 함무라비 법전조차도 계급간 불평등 조항으로 이루어졌으니... 공의와 원칙에 기반한다면 그들이 밀담을 나눌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얄궂은 법복을 입히고 법관이란 성스런 이름을 달아주었지만 역사의 대부분에서 그들은 권력에 기생하는 악이었다.

 

 

 

 

 

 

도미에가 자주 극장을 화제로 한 것은, 우선 인간적 흥미 때문으로서, 그것은 배우와 관객의 표정이라든가 몸동작을 썩 잘 파악하여서 나타내고 있다. 또, 극장 안의 조명 효과는, 윤곽을 단순화한다는 점에서도 도미에의 흥미를 돋우는 것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 그림에서는, 인공조명에 비추어지는 무대 위의 채색과 음영을 정확하게 가려서 칠한 연후에, 힘센 선에 의해서 떠오르게 하는 수법에 툴루즈 로트레크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의 사회가 단 한번이라도 부조리하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 돈 키호테가, 도미에가 분노한 것은 부조리한 사회 그 자체라기보다는 부조리에 익숙한 인간 군상들이었을 것이다. 60대에 이른 도미에는 돈키호테를 소재로 한 그림을 여러 장 제작하는데.. 근경의 시종 산쵸 판자는 그늘 속의 안위를 벗어나 광야로 나아가기를 별로 내켜하지 않는 듯하다. 창을 곧추 세운 키호테는 로시난테의 고삐를 단단히 잡고 허리를 세운 채 먼지 날리는 광야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어느 시대든 돈키호테와 도미에와 같은 귀인들이 있어 역사를 읽는 자들에게 오아시스가 된다.

 

 

 

 

해변에서 남자와 여자가 아이를 안고 빠르게 걸어가고 가고 있고 남자의 팔에 안겨 있는 아이의 신체는 축 늘어져 있다. 아이의 신체는 해변에서 물놀이를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회색빛의 어두운 하늘과 요동치는 구름은 익사 사고의 공포심을 암시한다. 남자와 여자의 다리의 자세는 구출한 아이를 살리기 위한 부부의 급한 마음을 나타낸다. 흐릿하고 빠른 붓질은 사고의 긴박한 효과를 창출했다. 드가는 도미에를 들라크르와와 동일하게 평가했고 들라크르와 또한 “도미에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존경한 사람은 없다.” 고 얘기할 만큼 그는 당대의 작가들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그가 사망할 때까지 세상의 평가는 냉랭하기만 했다.

 

 

 

어두운 작업실에서 유령같이 붓을 든 화가는 망아탈혼의 상태로 그림을 그린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았지만 그 능력을 공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사용한 작가는 흔치 않다. 그것도 도미에와 같이 평생을 한결같이...

포연 가득한 전장의 용맹스러운 전사와도 같이 굳건히 두발을 지면에 디딘 늙은 화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사악한 세력을 해치우기 위해 캔버스를 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