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블러 로스의 저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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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블러 로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Facing Death> |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어가는 환자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간병인들을 돕고자 여러 책들을 썼는데 그 가운데 두 권이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곧, <인간의 죽음>(성염 옮김, 분도출판사, 1979)과 <죽음과 임종에 관한 의문과 해답>(이인복 옮김, 홍익제, 1983)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박사는 이른바 죽었다가 되살아난 임사체험(臨死體驗) 환자들의 체험을 수집하여 죽음 이후의 저승을 궁구(窮究)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를 대중에게 알리고자 1991년에 미국에서 펴낸 강연집이 <사후생>(최준식 옮김, 대화출판사, 1996)이다. 박사는 이 강연집에서 저승행을 세 단계로 나누어 기술한다.
제1단계 :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간다. “뇌에 손상이 생겨서 호흡도 할 수 없고 맥박도 뛰지 않으며 뇌파도 측정되지 않는 상태가 될 때, 당신의 나비는 고치를 떠나버린다.”(18~19쪽) 박사는 영육이원론을 따르는 서구 그리스도인이라,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이 육신을 떠난다고 풀이했다. 비유하여 나비가 고치를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동방의 성인 다석 유영모의 표현을 빌린다면 '몸-나'는 죽고 '얼-나'로 거듭난다 하겠다. 나는 사후존재를 하느님께서 당신 영능으로 새로 창조하시는 새 조물로 보기에 그것을 영체(靈體)라고 이름 짓겠다.
제2단계 : 영체는 자신의 주검과 죽음을 관찰한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자신이 죽은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죄다 기억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충돌한 차에서 당신을 구해내기 위해 어떤 기구가 사용되었나 하는 것을 나중에 깨어난 다음에 상세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충돌한 차의 번호판이나 뺑소니 친 운전사의 얼굴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19쪽)
이밖에도 영체는 다음과 같은 초능력을 지닌다. 영체는 생전의 온갖 장애를 벗어나 온전한 영체로 탈바꿈한다. “시각장애자였던 사람은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듣거나 말할 수 없었던 사람은 다시 듣고 말할 수 있게 된다. ······ 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작은 소녀가 그런 사건을 겪은 후 내게 말했다. ‘저는 다시 멋진 머리카락을 가졌답니다.’ 유방암 치료로 유방이 없어진 여자들은 유방을 다시 갖게 된다.”(20~21쪽)
아울러 영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이승의 어느 누구든 마음대로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한평생 살아가면서 인연을 맺은 저세상 분들을 만나 뵙게 되는데, 예를 들면 수호천사, 예수, 마리아 또는 조상들이다.
드디어 영체는 저승으로 옮겨가서 하느님을 만난다. 터널을 통과하거나 문을 통과하거나 다리를 건너거나 산길을 가로지르는 것 같은 체험을 한다. 터널, 문, 다리 또는 산길을 지나면 “빛에 에워싸인다. 이 빛은 흰색보다도 더욱 하얗다. 이 빛은 말할 수 없이 장엄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당신을 감쌀 것이다. ····· 당신은 이 빛으로부터 당신을 심판하지 않고 이해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한다. 많은 이들이 예수, 하느님 또는 사랑에 비유하고 있는 이 엄청난 빛의 출현을 통해 당신은 이승에서의 당신의 모든 삶이 어떤 시험을 통과하거나 특별한 교훈을 배우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학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배워야 할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것을 배우고 실행했다면 당신은 모든 교과과정을 마친 것이다.”(24~25쪽, 71~72쪽 참조)
제3단계 : 영체는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본다. "당신은 순식간에 이승에서 사는 동안 있었던 순간순간의 모든 생각을 자세하게 알게 된다. 모든 행동을 기억하게 되고 당신이 내뱉은 모든 말을 알게 될 것이다. ····· 하느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승에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동안, 당신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하느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무시해버린 당신 자신을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최악의 적이 바로 당신 자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26쪽)
이상 퀴블러 로스 박사의 저승행 서술은 독일에서의 임사체험 연구결과와 대체로 일치한다. 함페 교수는 저승행 구조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여러 가지 임사체험들을 살펴보면 그 구조가 같은데 놀라게 된다. 저승행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이제 망자는 몸을 벗어나서 사람들이 자기 몸을 다루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망자는 흔히 불쾌한 소음을 들으면서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망자는 이승에서 지녔던 몸과는 아주 다른 몸을 지닌다고 여긴다. 터널 저 끝에 빛이 비치고 그 빛 속에서 친구들과 친척 등 빛나는 이들이 마중 나온다. 이들 가운데 하나가 망자를 떠맡는다. 그는 망자의 일생을 자연풍경처럼 환히 보여주면서 심판하듯 따진다. 망자는 초현세적인 색상과 형상을 보고 이승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엄청난 기쁨과 평온을 누린다.”
해석학적 반성
종교마다 철학마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심초사했다. 석존은 해탈로 생로병사를 넘어서려 했고, 장자는 삶과 죽음을 원기(元氣)의 변화 작용으로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영혼불멸설을 내세웠는데 이 사상이 그리스도교로 유입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본래의 신념은 영혼불멸 신앙이 아니고 부활 신앙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부활 신앙에 견주어 자신들도 부활할 것을 확신한다. 다만, 유대인 묵시 문학이 성행하던 시절에 그리스도교가 창교된 까닭에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신양은 묵시 문학의 영향을 듬뿍 받았다.
따라서 부활 신앙의 그리스도적 진수와 묵시 문학적 잔재를 식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나는 묵시문학적 발상 두 가지를 물리치고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인류가 역사의 종말에 부활한다는 묵시 문학적 발상을 물리치고 각자 죽은 순간에 부활한다고 본다.
둘째, 이승의 육신조차 부활한다는 묵시 문학적 발상(에제 37; 마르 12,18-27 참조)을 물리치고 육신은 소멸하되 인격만은 하느님의 영능으로 부활한다고 본다. 이를 부활 인격 또는 부활 영체(1코린 15,44 ; 필립 3,21 참조)라 하겠다. 나의 육신, 나의 정신, 나의 마음 가운데서 ‘나’가 부활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나는 묵시 문학적 상상 · 공상 · 망상 대신에 퀴블러 로스 박사가 임사체험을 바탕으로 제시한 저승관을 수용하고 싶다. 박사의 저승관은 프랑스 빈자들의 대부로서 솔직담백하기로 정평이 난 아베 피에르(1912년생)의 견해와도 거의 일치한다(아베 피에르 · 베르나르 쿠슈네 대담, 김주경 · 박경희 옮김, <신과 인간들>, 장락 1995). 피에르 신부님의 말씀 두 단락만을 옮겨 적는다.
영원하신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네. 그분은 우리가 영원한 사랑과 만나게 되도록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 죽음은 바로 하느님과의 눈부신 만남일세(위의 책 271쪽).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정의한 요한 1서 4장 8·16절과 어쩜 그렇게도 잘 어울릴까!
영벌(永罰)이 존재한다면 법정에서와 같은 심판이나 판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닐 걸세. …… 내가 생각하는 영복이나 영벌은 바로 이 그림자, 시간의 그림자로부터 빠져나가는 순간에 우리가 그 동안 세상에서 무엇을 했느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일세. ‘너는 너 자신으로 만족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너 자신으로 만족하라!’ 이것이 영벌의 선고일세. 자아도취에 빠진 자기 모습을 영원토록 거울 속에서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영벌이라고 생각하네(75~76쪽).
전혀 뜻밖에 부인이 말기 자궁암 환자라는 선고를 들은 어느 남편의 회고담이 생각난다. 의사의 암 선고를 듣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가운데 결혼 생활 동안 자신이 부인에게 잘못한 일들이 한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후회 막급이었다고 한다. 사랑의 기회를 놓친 것을 두고 후회하는 것, 이것을 묵시 문학에서는 최후 심판과 지옥으로 표상했다.
그런가 하면 12세기 유럽에서 중산층이 한창 형성될 무렵 저승에도 천당과 지옥 사이에 연옥을 설정했는데, 연옥 신앙도 지옥 신앙에 준하여 이해하면 무난할 것이다(자크 르 고프 지음, 최애리 옮김, <연옥의 탄생>, 문학과 지성사, 1995 참조). 하느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여 지옥으로 또는 연옥으로 보내시는 게 아니고, 지옥이나 연옥은 인간이 사랑을 저버린 이승의 삶을 스스로 뉘우치는 것이라는 말이다.
정양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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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유학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70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지냈다. 2005년부터는 다석학회 회장을 맡아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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